[Opinion] 예술은 얼마만큼 착해야하는가? [문화 전반]

Artist? Fuck up!
글 입력 2018.07.19 23: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_레옹 포스터.jpg


외로운 살인청부업자와 아이답지 않은 소녀의 독특한 우정을 그린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은 내가 가장 아끼는 영화 중 하나이다.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거치는 과정인 '필사' 역시 이 작품으로 했으며, 아이유와 박명수의 음악 '레옹' 역시 3년이 지난 아직까지 흥얼거릴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런 나의 사랑 <레옹>이 재개봉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오던 것도 잠시, 이 작품을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심지어 #Me too운동과 관련해서 말이다.

 
크기변환_뤽 베송.jpeg


배우 상드 반 루아는 지난 5월, 파리의 한 호텔 방에서 <레옹>의 감독 뤽 베송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발언했다. 차를 마신 후 의식을 잃은 채 뤽 베송에게 성적학대를 당했으며, 이후 돈뭉치와 함께 남겨졌다는 것이다. 이에 뤽 베송은 몽상가의 주장일 뿐’이라며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내막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자신 역시 뤽 베송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나 사무실에서 저항하는 여성을 무작위로 추행하고, 그 강도를 지속적으로 높였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알 것이다.


크기변환_명작은 명작...jpg
 

하여 <레옹> 재개봉 논란의 요지는 이것이다. 이토록 많은 혼란을 야기한 작품을, 페미니즘 의식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재개봉을 하겠다고? 더군다나 <레옹>은 꽤 오래 전부터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스토리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전적이 있다.
 
사실 작품만 떼어놓고 봤을 때 <레옹>은 분명한 명작이다. 상극의 두 캐릭터가 만나 지지고 볶으며 성장해간다는 익숙한 전개 안에서 개성 있는 캐릭터와 고유한 분위기를 풀어놓으며 편안하게 와닿는 새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논란만 없었다면 세계인의 기억 속에 꽤 오래도록, 예쁘게 남았을 것이다.


크기변환_홍상수 김민희.jpg


창작자의 사생활 등과 같은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에 작품까지 격하된 사례는 이미 여럿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이다. 세계의 유수 영화제에서 앞 다투어 찾을 정도로 널리 인정받는 감독과 배우이지만, 둘의 뻔뻔하고 몰지각한 태도는 관객들이 작품에 온전히 빠지는 것을 방해한다. 주목받는 신인감독이었던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과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 또한 #Me too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은퇴, 혹은 활동 잠복기에 들어갔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수와 한효주 주연의 < 반창꼬 >를 연출한 정기훈 감독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도를 넘은 성적 발언으로 인해 따듯한 휴먼 로맨스의 가치를 퇴색시켰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과연 예술에 얼마만큼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는 항상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 감상해야 하는가? 혹은 창작자가 쓰레기라면 작품 역시 쓰레기인가? 일단 한국에서는 후자의 여론이 좀 더 우세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창작자들은 내 새끼같은 내 작품을 위해서라도 처신에 항상 주의를 기울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행실이 몇 년동안 뼈 빠지게 고생하며 낳아놓은 작품의 목숨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굳이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모든 창작자들은 인격적으로 건실해야한다. 그들 역시 그 놈의 ‘위대한 예술가’이기 이전에 그저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간에 관계없이, 일단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좋은 ‘영화인’이 되기에 앞서 좋은 ‘박민재’가 되어야 한다고.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은 딱히 아니지만, 저 말씀은 깊이 새겨져 나의 근간을 이루었다. 뤽 베송은, 홍상수와 김민희는, 이현주와 조현훈, 정기훈은 모두 좋은 영화인이다. 하지만 좋은 인간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재능을 이유삼아 종종 ‘예술인’의 탈을 쓴 파렴치한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 그러나 까놓고 말해보자. 그 파렴치한들이, 정말 예술가인가? 누군가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나몰라라 하는 그들이 과연 인간과 삶과 사랑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가? 예술가라면, 인간을 위로하고 깨우치기 위해 이 세상에 탄생한 ‘예술’이라는 놈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이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한낱 허울에 불과하다.
 
하여 이 사회 역시 제대로 된 예술가를 육성하고 싶다면 피해자가 가까스로 끄집어낸 작은 목소리를 도로 우겨넣어가며 ‘위대한 예술을 하는’ 가식투성이를 치켜세울 것이 아니라, 더더욱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대체 인간 없는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나.

 
크기변환_레옹과 마틸다.jpg
 

그런 의미에서 뤽 베송 감독 사건의 추이를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단 지금은 재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것으로 논란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이다. 하지만 그에게 여전히 ‘누벨바그 이마주를 대표하는 감독’라는 수식어가 붙을 자격이 있는지는 좀 더 두고봐야 알 것이다. 진실공방이 공정하게 진척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나의 시나리오로 단 한 사람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더욱 꾹꾹 눌러 새겨본다. 기억하자. 인간이 있기에 영화가 있는거다. 하여 앞으로 나는 비겁한 짓을 한 후 예술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드는 누군가를 본다면, 이렇게 외칠 것이다. “Artist? Fuck up!!”




에디터 박민재.jpg
 

[박민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