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아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영화]

모아나와 함께 나를 찾아 떠나봅시다!
글 입력 2018.07.1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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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바다만이 있었다. 바다뿐인 세상에 갑자기 등장한 어머니 섬 '테 피티'. 그녀는 무한한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으로 모든 섬과 생명을 창조했다. 예나 지금이나 강한 힘은 모두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어서 테 피티가 가진 창조의 힘을 빼앗으려는 무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는 반(半)신 '마우이'는 이 대담한 계획을 행동에 옮겼고 테 피티의 심장을 손에 넣는다. 심장을 빼앗긴 테 피티는 힘을 잃었고, 생명의 근원을 잃은 바다에 조금씩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영화 <모아나>의 세계관이다.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게서 선택받은 아이 '모아나'는 홀로 여행을 떠난다. 모아나는 거대한 바다에서 마우이를 찾아, 그와 함께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 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그렇듯이, 모아나는 우여곡절 끝에 테 피티의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 놓고 세상을 구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별 다를 것 없던 평범한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나에게 이 영화가 그랬다. 생각 없이 본 영화 한 편이 내 안의 깊은 고민거리와 만나 번쩍 스파크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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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다로 못 나가요? 왜요??


모아나는 모투누이 섬 족장의 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섬 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한다. 정확히는 암초 너머의 바다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동경하는 모아나에게 족장인 아버지는 소리친다. "네가 살 곳은 모투누이 섬이야. 누구도 암초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 그렇게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모아나는 고민한다. "왜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거야."

첫 번째 불꽃의 순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모 대학 역사학과를 지원하려 했던 나는 가족들과 담임 선생님의 강한 반대에 다른 선택지를 고민해야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 끝에 다시 내린 나의 선택은 경영학과. 어릴 때부터 아들이 공직에 나가거나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은 흡족해 하셨다.

2013년 경영학과에 진학한 이후, 나는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전공보다는 밖으로 눈을 돌렸다. 섬마을 보다는 바다로 나가길 원했던 모아나처럼. 안타깝게도 모아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될 사람이었다. 마을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고민하고 무서워한다. 주위 친구들이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학회를 하고, 인턴을 시작하고, 로스쿨을 준비할 때 그들과 다른 길로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두려웠다. 몇 년의 고민 끝에 부모님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도, 부모님께서 반대하면 어쩌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하며 걱정했었다. 아버지의 반대에 고개를 떨구는 모아나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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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와 마우이


두 번째 감동의 순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마우이를 만난 모아나는 그와 함께 테 피티의 앞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막아선 땅과 불의 악마 '테 카'. 테 카와 맞서다 마법의 갈고리를 잃은 마우이는 모아나의 곁을 떠나고 모아나는 다시 한 번 좌절한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그 때 모아나는 바다의 속삭임을 듣고 다시 일어선다.

바다는 모아나에게 말한다.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줬구나. 괜찮아. 아주 멀리까지 왔잖아. 네가 누구인지만 잊지 않으면 돼." 마우이의 도움 없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가? 아니다. 모아나를 떠났던 마우이 역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갈고리 없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닌가? 아니다.

글을 쓰며 살겠다고 다짐한 이후 나는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제 인턴도 하고 회계사 자격증도 따니까 나도 뭐라도 해야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활동들, 수많은 지원서들 그 속에서 지쳐갔고 나를 잃어만 갔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다시 일어선 모아나.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를 증명할 활동이, 직함이, 증명서가 없으면 내가 아닌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를 잊지는 않았나.'

남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저는 25살이고, 고향은 대구이고,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외국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은 ㅇㅇㅇ 이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우선한다. 우리는 아직도 직함으로, 여러 마디 말보다는 명함으로 자기를 소개하지 않나. 그런 것에 집착하면 어느 순간 나를 잃을지 모른다.

희망찬 노랫말과 아름다운 이미지로 모아나는 우리에게 자신을 잃지 말라고 노래한다. 지금의 이 방황이 우습게 느껴질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한 수없이 많은 고민과 좌절이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모아나와 마우이의 모험을 떠올려야겠다. 뜬금없지만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대사로 글을 마친다.


"슈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네게 슈트를 줄 수 없어." 

스파이더맨 홈 커밍 중
스파이더맨에게



[백광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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