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울나무 [기타]

겨울나무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글 입력 2018.07.2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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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겨울의 나무들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초라하게만 보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모습이야말로 온전한 제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머니는 봄, 여름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흙을 만지는 ‘프로 농사꾼’이다. 거름을 사고, 그 무거운 걸 밭까지 어떻게 옮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할머니의 한 해 농사는 시작된다. 할머니는 그 넓은 밭에 콩, 도라지, 오이, 그리고 양파나 파 등등, 모든 걸 혼자서 심고 또 일구신다. 그 계절들이면 할머니의 분주함은 집의 맨 바깥 대문을 종종 열려 있게도 하고, 거실이나 부엌 한 켠에 방금 묻어온, 흙이 채 떨어지지 않은 천가방이 자리하게 한다. 내가 학교에 들고 다니다 때가 타 더 이상 갖고 다니지 않는 몇몇 천가방들은, 어느새 파나 가지, 때론 배추 하나까지 거뜬하게 담아내는 할머니의 든든한 가방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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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할머니도 어느새 해가 길어져 겨울이 오게 되면, 집 안에서 ‘여름이 그래도 좋다’고 말하며, 집 안에 들어와 그 계절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게 될 뿐이었다. 할머니의 일궈내고 피워내는 생명력과, 그 움직임들이 사라진 계절에서, 나 역시 겨울이 되면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춥기만 한 그 계절은 이제 대학의 3학년이 된 내게, 지난 한 해 동안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냈으며, 또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떤 멋진 일을 해낼 계획인지 계속해서 물어오는 시간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나는 무(無)’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는 답을 던질 뿐이었다. 무언가 마음 속에서 피어 나려고는 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며, 또 내가 어떤 일을 해야만 가장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고 있지 않는 상태였다. 한 마디로 크게 이룬 것도,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걸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태였다.

스물 세번째의 나를 맞이하면서,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시간이 온다는 게 내 나름의 경험으로 깨달은 인생의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슬픔이나 화로 가득한 날들이 쉽사리 끝나지 않더라도, ‘이 다음에는 어떤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하며 그 시간들을 무던히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조금씩, 내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되자 나는 그 법칙을 의심하게 되었다. 어쩌면 힘든 시간은,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많은 것을 심고, 일구고 또 키워내는 할머니를 집 안에만 있게 하고, 또 괜히 내 마음까지 시리게 만드는 겨울이 빨리 지나 가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나는 당장 빛나지 않는 내 모습도, 겨울의 그 계절 자체도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특히 계절들 속에 그 존재가 가장 두드러지는 나무는, 나를 더욱이 초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한때의 꽃도, 푸르름도 시린 공기에 쓸어져 하나도 남아있질 않는 그 앙상한 모습에, 나는 겨울나무들을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거리에 꼿꼿이 서있는 그 마른 나무들을 쳐다보고 있자면, 그 앙상함에 괜히 뼛속까지 시리고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게 겨울나무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초라함을 대변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다시 겨울나무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건 겨울을 거의 다 지낸 할머니가 어느새 볕이 들기 시작한 거실 한 가운데에 앉아 ‘올 겨울도 참 잘 쉬었다, 아주 푹 쉬었다’고 말씀하신 순간이었다. 잘 쉬어서, 겨울을 오롯이 지내왔기 때문에 올해도 봄과 여름을 잘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에, 시선 밖으로 내쳐 두었던 앙상한 겨울나무가, 그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나무도, 그저 다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을 뿐이란 걸,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아니 어쩌면, 가지만 남은 그 모습이야 말로 사실 모든 걸 덜어낸 ‘진짜 나무’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본연의 모습으로 더욱 꼿꼿이 서서 그 겨울을 버텨내는,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모습인 채로 존재를 지켜내는 겨울의 나무들은 더 이상 초라하게 느껴지지 만은 않았다.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로 버텨 내길 주저하지 않는 마음을 받아들이자 내가 겨울내 지나온 ‘무(無)의 시간’도, 실은 그렇게 좌절 스럽거나 심각한 문제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어지는 힘든 시간과, 더없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들을 나는 내 인생에서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런 시간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항상 나 자신이 빛나는,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길 바랐다. 매번 무언가를 해내고 피워 내기만을 바라며, 그렇지 않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그리고 할머니는 무엇보다도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더없이 살아 숨쉬며 빛나는 존재였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듯한 겨울에도, 자신들의 또다른 계절을 오롯이 지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올 올해 겨울에는 나도 온전한 겨울나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건 초라한 게 아니라 열심히 피워낸 후에 마침내 비워낼 줄도 아는, 또다른 나의 모습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므로. 어느새 봄이 지났고, 여름은 그 계절의 중심에 있다.
 
무엇을 피워 낼지는, 겨울을 오롯이 견뎌낸 겨울나무의 몫이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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