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상과 현실로 본 시대의 미학. 구석기부터 그리스 예술까지 [도서]

< 미학 오디세이 1 > 1편, 가상과 내세, 불변에 대한 갈망
글 입력 2018.07.2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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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1편


시대의 흐름을 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인간이 삶에서 중요시하는 가치가 어떻게 변모하였는지에 따라 오늘날 개인의 삶을 분석해볼 수도 있고, 권력의 움직임에 따른 사회 구조의 분석을 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무엇을 탐구의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우리는 인간사를 더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에 대한 가치관이 상이했음을 보여주며, 그들이 표방하는 진리관을 드러낸다. 지난 번 <모든 것은 빛난다>에 대한 오피니언에서도 언급했듯 예술은 패러다임으로써의 시대의 진리를 구현하는 기능을 한다. 진중권 교수가 < 미학 오디세이 >를 통해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온 예술의 역할을 조망하는 데 선택한 기준은 바로 가상과 현실이었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두 번에 걸쳐 <미학 오디세이 1>을 통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을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가상과 현실이라는 키워드로 사유해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문제의식이 제시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한다. 내용이 많아질 것 같아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구석기로부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다음 오피니언에서 중세와 근대, 그리고 세계의 구성과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 모리츠 에셔의 작품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



가상과 현실 관계에 대한 믿음. 구석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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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동굴 안 벽화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선사 시대의 그림은 놀랍게도 실제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오히려 '지적 능력이 개념적 사유를 할 수 있을만큼 발달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무엇이 개념적으로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낼 수 있는 지적 능력이 그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모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처럼 그들도 그리 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굴 벽에 큰 들소를 그리고 그것에 창을 꽂으면 실제로도 그 들소가 잡힌다고 생각했다. 이는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으로써, 그들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동굴 벽화나 수렵무 등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믿은 그들에게는 예술이 꼭 필요한 것이었고, 이는 곧 주술적 행위었다.

신석기에 들면서 인간은 복잡한 자연현상에서 규칙을 발견했고,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여러 상징물들을 창작해 그들만의 제사에 그것을 활용했다. 가상과 현실 간의 인과관계를 굳게 믿었던 그들은 젊은 남자를 신으로 지정하고 그가 늙거나 하면 목을 베어버리고 잡아먹는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풍년을 비는 축제를 즐겼다. 신을 잡아먹으면 그 영험함이 자신에게로 옮겨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잔혹한 행위의 대상은 젊은 남자로부터 곧 그의 아들로, 양으로, 인형으로 변모되어갔다. 후에 그리스 비극은 이러한 신의 상징물인 '산양의 노래'를 그 어원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을 향하는 추상적 행위가 더이상 주술의 역할로써 마술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가상이 현실에 대한 힘을 잃어버렸을 때 예술은 오늘날과 같이 힘을 잃은 예술이 되어갔다. 종교적 제의가 한낱 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이전과 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상과 현실의 관계가 끊긴 세상에서의 제의는 예술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술은 이렇게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순간에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변에 대한 갈망, 그리고 내세와 가상. 이집트와 그리스


이집트의 예술은 '정면성의 원리'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는 시각적으로 비슷하다고 여겨지게끔 그리는 것보다도 사물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 특성'이 잘 드러나게끔 그리는 것을 중시한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제시하는 것, 이것은 대상의 개별적, 개성적인 측면을 제거하는 '시각적 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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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연못, 벽화, 기원전 1400년경
각도와는 상관 없이,
사물의 형태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척박한 이집트의 환경에서는 인간의 내적 불안감이 추상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이것이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발달시켰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의 막연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반대로 분명한 본질, 영원한 내세와 같은 것들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집트 예술은 시각적 추상을 통해 개별적 특성을 제거한 보편적인 모습들을 그려냈고, 정면성의 원리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들이 추구한 추상과 내세는 어딘가 서로 닮은 모습이 있다. 모두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계와 동떨어져 있는, 인간 정신작용의 산물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이 추상과 내세에 대한 사유를 발달시킨 듯 하다.

그리스의 경우에도 초반에는 이집트의 영향으로 '아르케익'이라는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으로 시작했다. 이는 완벽한 대칭, 정확한 비례를 그 원칙으로 한다. 이집트 예술처럼 무언가 보편적이고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목적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곧 위대함을 표현하는 숭고 양식, 조금씩 비례를 벗어나는 우연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양식을 거쳐 < 라오콘 >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기점으로 몰락했다. 이후의 로마 예술은 그리스의 전성기를 모방하는, 빙켈만에 의하면 '보잘 것 없는'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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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조각, 기원전 150~50년 경
트로이의 제관이었던 라오콘은
목마를 트로이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였다가
천기누설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스 초기의 작품들에 비해 역동적인 묘사이다.


플라톤은 예술이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데아'라는 완전한 세계를 추구한 인물로, 이 세계는 이데아의 복사본일 뿐이니 이데아에 비해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한 세계를 한 번 더 모방한 것이 예술이니 예술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일시적인 감각경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영원 불변한 것, 완전한 진리를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있어 예술이란 이러한 보편적 법칙, 완벽한 비례, 수학적 규칙이 지배하는 기술적인 것(테크네)였다. 모두 완전한 것, 불변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미란 이성적으로 계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미의 기준은 지금과는 다르게 과거의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기에 합리적 제작 규칙이나 기술적이지 않은 예술, 다시 말해, 창작자의 영감에 의존하는 예술은 예술로써 인정되지 않고 배척되는 경향이 있었다.


*


이어서 ...

가상을 넘어 - 초월적 세계를 바라보는 중세 예술
미란 무엇인가 - 객관과 주관의 갈등. 근대
세계의 구성에 대하여 - 모리츠 에셔와 추상적 연역, < 그리는 손 >과 악마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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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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