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 알아가는 시간 - 은희경]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도서]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 - 책 '소년을 위로해줘'
글 입력 2018.07.2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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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은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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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런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늦은 밤 청소년들이 자동차를 몰고 나와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아찔한 행각인데요.” 그리고 밑에 자막으론 청소년들의 일탈, 비행소년 소녀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밥을 먹으며 보던 부모님과 나는 혀를 찼다. 뉴스 보도처럼 단지 그들의 위험천만한 일탈일 뿐이었을 텐데, 그때는 혀를 차 놓고 왜 난 지금에서야 불현듯 이름도 없고 자세한 내막도 나오지 않았던 그때 그 뉴스 보도가 생각이 난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의 마음이 궁금했던 건 아마 이 책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 네가 그럴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저 경찰이 예상한 대답을 할 수도 있었겠지. 비행이란 말의 조건들, 뻔하잖아. 하지만 아닐걸. 절대 아니야. 나는 알 수 있어. 뭔가 잘못돼버린 것 뿐이야. 떠밀려버린 거라구. 마지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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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 달라. 저 위의 문장은 책을 본 사람만 이해할 것이다. 그 내용은 책의 결말이기에 함구하도록 하겠다.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이 책이 단순히 청소년들의 범죄행위를 미화해 다루는 책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일탈을 용서해라. 아직 어리지 않냐.”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존재.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들에 대하여. 이 책은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어른들과 그저 ‘나’가 되고 싶은 아이들. 그 간극에서 외로운 소년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들 속 소년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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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박지르고 방치하고.
어른들이 우리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


책 속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유형은 두 가지다. 윽박지르거나 방치하거나. 그리고 그것이 모두 너를 위한 것이라 말한다. 고독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것도 널 위해서, 너의 말 보다 다수의 사람 말이 옳다 하는 것도 널 위해서. 그 속에서 그 무엇도 아닌 떠돌이가 된 아이들이 있다. 방치 속에서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연우, 질서라는 울타리 안에 서야 하는 독고태수와 채영. 셋은 저마다의 고독을 가졌다.

책의 화자, 연우는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17살 소년이다. 연우에게 엄마 신민아 씨란, 엄마보단 누나 같고, 어쩔 땐 연우가 더 엄마 같기도 하다. 신민아 씨의 교육법은 방관이 아니라 방목이라 한다. 고독은 혼자 처리하는 것이고, 가족이란 함께 있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라고. 그러니 자신 먼저 행복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뭔가 남다른 엄마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헛웃음이 나오게도 맞는 말이다. 그 덕에 연우는 혼자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다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게 문제다. 그 마음속에 어른이 한 명 들어있는 것처럼.

독고태수는 미국학교에서 사고를 쳐 한국으로 전학 온 아이다. 폭력성향이 강한 아이가 아니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편이라 사건에 휘말리고야 마는 성격이다. 까불까불하니 재밌지만, 가끔 그에게서 보이는 검은 정적은 상처 입은 짐승 같다. G 그리핀의 음악을 들려줘 연우를 힙합에 눈뜨게 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첫사랑의 대상 채영. 무표정은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릴 때 남들과 다른 행동과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지진아라며 소외당한 경험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봐 지레 겁먹은 아이였다. 이 셋은 서로를 알게 된 후부터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너는 날 미워하지 않는 것 같아”


채영이 연우에게 한 말처럼,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던 그들의 외로움을 서로가 발견해줬는지도 모른다. 연우와 독고태수, 채영은 서로가 지닌 고독과 외로움을 함께한다. 그것을 위로와 공유라고 해야 하나. 그냥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봤고 함께했다. 그래, 이들의 말로 우정과 사랑이라고 하면 좋겠다.


‘나’일 수 있는 것 : 달리기, 힙합


달리기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이 단어들의 연관성은,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는 것들.


아랫배에 힘을 준다. 어깨를 크게 들먹여서 흐느끼듯이 숨을 조절한다. 아, 더 달릴 수 있구나. 나 지금, 나라고 하는 전 존재, 나라고 하는 전 우주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채 달리고 있는 거야. 내가 팽개치는 순간 그것은 산산조각이 나고 내가 떠메고 나아가는 한 그것은 전진한다. 나는 나다. 어쩐지,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


연우는 첫사랑에 가슴이 두근거려 넘쳐흐르다 못해 벅차올라서도 달리고, 답답해서도 달린다. 바람을 스쳐 가며 속이 개운해지는 것도 있지만 온전히 내 감정에 충실해진다.

지금은 달리기를 매우 못하지만 달리기하면 중3 때 했던 지구력 체력테스트가 생각난다. 운동장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왔다 갔다를 수십 번 하며 그 개수가 높음에 따라 차등 점수 분배. 그것으로 수행을 가렸으니 중3이던 난 그걸로라도 점수를 따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문턱을 한 계단이라도 상승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을 먹었는데도 달리다 어느 순간 ‘와 진짜 더는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찰나 이상하게 ‘조금 더 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을 돌파하자 그때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A를 받았다. 얼굴이 터질 듯 빨개져서 들어오며 주저앉았다. 숨이 터져 죽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했다. 일주일 전에 뭐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A 받은 건 내 인생에 티끌의 영향이라도 주었을지 의문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분명한 건 내가 나를 넘었다는 뿌듯함인 것 같다. 그리고 몸의 신기함이었다.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구나.

달리기, 특히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마라톤 같은 경우는 내 몸에 대해 느끼게 된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여린 눈 밑이 덜덜 떨려오며 지금이 제정신인지조차 정신을 못 차리겠을 때 딱 그때 어떠한 경계를 지난다. 몸조차 두 손 두 발 드는 것이다.

그때야말로 몸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내 마음에 따른다. 무엇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강요되는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에 유일하게 내 것이 있는 것이다.


힙합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나를 전율시킨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건, 내 이야기잖아! 한순간 온몸이 굳는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나타나서 뻣뻣해진 내 몸을 낚아채 잡아끌기라도 한 듯이, 그대로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연우는 태수가 들려준 G 그리핀의 음악을 듣고 가슴이 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힙합에 빠져든다.

힙합이란 거, 소년이 끌리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네가 생각한 건 틀렸다고, 옳은 건 여기 있다고 이걸 따르라고 하는 세상에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소. 그 직설적이고 솔직한 것이 오히려 죄가 안 되는 유일한 세상.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공간. 점점 힙합을 향유하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청소년기에 힙합에 눈을 뜨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어째서 세상은 커서는 남들과 다름을 요구하면서 어릴 때는 같음을 요구하는 걸까.
그냥 바라만 봐도 예쁜 꽃처럼 하나하나 향기가 있는 아이들을 요렇게 저렇게 잘라서 한 다발로 묶어 버리는 걸까. 그러니 금방 죽지. 꽃병에 꽂아놓아도 금방 시들고 말지. 그렇게 청소년들을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성인이 되었을 때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걸 알까. 대학교에 가니 교수님들은 이제껏 배웠던 무조건 외우고 따르는 교육이 아니라 내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내 생각을 묻는 교육을 한다. ‘내 생각? 그건 예전에 접으라고 했잖아요.’ ‘내 생각보단 다수의 생각 안에서 공부해야 하고 다수가 따르는 것이 옳다고 가르쳤잖아요.’ 이거 원 가르침이랑은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무기력함을 가르쳐놓고 시스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해놓고 막상 성인이 되면 “자! 이제 네가 알아서 할 때야. 한 번 가봐.”하고 지팡이를 건네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크면서 자연스럽게 고독을 알아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쓴 고독을 혼자 삼키는 법도 알게 된다. 신민아 씨가 연우에게 한 말에 따르면, 고독은 혼자 처리하는 것. 몇 대 맞을 각오로 무시해버리는 것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날 위해서라도 그게 낫다. 근데 그건 성인을 전제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고독이란 것, 청소년들이 혼자 처리하기엔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어른들이 싫어하는 일탈의 뿌리는 고독이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 자식들이 나쁜 길로 새지 않게 울타리를 치고 지켜주는 거라고 하는데 실은 그 모든 행동이 아이들에게 고독을 심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생각을 무시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행동해야 하는, 그것이 옳은 거라고 말해 그것을 부정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되게 말이다. 그리고 그 고독을 “다 널 위해서야.”, “조금만 참아”라는 말로 타협하고자 하니 귀를 막고 문을 닫고 들어갈 수밖에.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 될 수밖에.

틀 안에 들어가 있어야 안전하다고 우리에게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정작 세상은 너무나 부주의하다. 우리가 깨지기 쉽다고 보호하다가도 상자 속에 넣은 다음에는 던져버린다. 어른들이 겉만 그럴 듯 포장하고 내면은 무시해버리는 행동에서 고독은 성장한다. 그 일탈의 뿌리는 고독일 것이다. 어른들은 자식이 망가지는 게 무섭다고 하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하는데. 성인이 되기 전에 내 고독의 씨앗이 커져서 슬픔을 위로할 기회를 주기도 전에 팡! 터져버리면 어떡할까. 고독이란 거, 몇 대 맞을 각오로 무시하기엔 그 씨앗이 너무도 무겁고 큰 것 같다.



어른들 속 소년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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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어른들의 모습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남들이 봤을 때 부족함 없을 재산과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가장인데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 텅 비어 보인다. 아니 뒤틀렸다.

태수의 엄마는 자신의 행복보다 가정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태수가 원하는 것보다 세상 모두가 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엄마다. 마치 모두가 원하는 것이 가정의 행복 지침서이자 정답인 것처럼 말이다.

채영의 아빠는 채영이 가출해도 채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찾으러 갈 데가 없는 사람. 가족 간의 대화는 외식이나 여행같이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만 하는 건 줄 아는 사람. 가정에선 점점 소외되어 갔고 직장에선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하지만 실은 다정하고 자상하면 한심한 놈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세대에서 자란 사람이다. 이기고 성취해 올라서는 것이 메이저인 세대였다. 그래서 지금은 남자도 섬세해도 되고 다정해도 된다는 것을 알지만 신민아 씨의 옷으로 비유하자면 그 옷을 너무나 오래 입어 벗을 수가 없는 사람.


앞만 보고 달려온 소년들에게


손바닥에 칼로 손금을 판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그렇게 감정은 물론이고 운명까지도 '개척'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익히며 성장했어요. 타고난 감성은 억눌러야 했죠.
(중략)
나는 이런 옷을 입어야 마음이 편해요. 이 옷이 내 정체성이나 역할을 모두 결정해주고, 나는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죠. 하지만 실은 이 옷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오래전 누군가가 입혀준 이후 오랜 세월 필사적으로 지키며 살아온 옷인데도 내 옷은 아니라 이겁니다. 이제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은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벗을 수가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이룰 산업화와 민주화를 3, 40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루어낸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건 곧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소년들을 의미한다. 무너지는 거, 뒤떨어지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까. 뒤떨어지면 무너지는 거였으니까. 그 속에서 ‘나’라는 거 내 개인을 생각한다는 거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외국 학자들이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를 예상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민주화까지 30, 40년 만에 이루어냈으니 견고하게 쌓아 올린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한국은 빠르게 지어 올린 만큼 부실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터져 나올 때가 되었다고. 시스템적인 오류일까. 아니면 세대의 붕괴일까.

아직도 많은 어른이 너도, 나도 아이들을 공부시킨다. 대기업을 위해 더 높은 대학교, 더 높은 고등학교, 더 높은 중학교.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기에 어린 나이에 공부시킨다. 그걸 위해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도 늘어만 간다. 그 늘어남 속에 아이들의 자유는 무시되고 ‘나’는 상실해간다. 연우의 엄마 신민아 씨처럼 ‘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중심을 잡고 있는 성공의 기준이라는 굳어진 시스템은 견고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향한 편견과 인식은 그들을 외롭게 만든다.

하지만 맘 편히 어른을 탓할 수 없는 문제다. 정해진 정답만 찾아야 했던 어른들. 그렇게 보아왔고, 가르침을 받아왔으니까. 그들 또한 맞지 않던 옷을 입어야 했던 소녀 소년이었으니까. 책 '소년을 위로해줘'는 이제는 시스템이 틀렸고 그것을 알지만 이미 내 살과 같아져 옷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어른들. 수많은 어른이 된 소년들을 위로한다. 괜찮다고. 이제 그만 그 옷을 벗으라고. 그리고 행복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방식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상처를 받았을 소년·소녀들을 위로한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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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은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사진출처 : Daum 인물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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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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