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Episode 1.

고작, 잠든 애인의 등 때문에
글 입력 2018.07.2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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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연애를 한 지 844일째 되었다. 요즘은 이런 거 직접 안 세도 어플이 다 알려준다.

844일이 지나는 동안 먼저 잠든 애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나 돌아누운 등을 보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머리만 붙이면 곧잘 자는 체질과 몸을 동글게 말아 모로 눕는 자세를 선호하는 걸 알고 있다. 먼저 잠드는 일이나 등을 보이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꼭, 속으로 뭔가를 꾸준히 되뇌고 있더라. 하나, 둘, 셋 하면 내 쪽을 향해 돌아누울지도 모른다는 기적을 꿈꾸며 수를 세거나, 돌아누운 등을 빤히 쳐다보며 몸을 뒤집어라, 뒤집어라 주문을 건다거나. 아니면 잠든 그의 속눈썹을 간지럽힌다거나 손가락을 세워 애인의 콧대를 타고 내려온다거나. 애인이 잠을 자기 시작할 때, 내가 영영 알 수 없는 느낌들이 그를 휘감을 때, 너무 멀고 까마득하다. 다음 날 그가 꿈 얘기를 어지럽게 늘어놓아도 반응은 시원찮을 수밖에 없다. 그가 나를 떠나있었다는 생각에 괜히 서운하다. 즐거운 꿈을 꾸었다고 말하면 그냥 빼쭉거리고만 싶다.

언젠가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라는 글을 읽었다. 단편 소설 끝에 이어진 평론이었다. 몇 번이고 제목을 다시 읽어봐도 영 입에 붙질 않아서 ‘너는 잠들고 있는데, 나는 산책을 떠나네’라고 바꿔 읽기로 했다. 평론의 말미에는 ‘어쩌면 부부란 잠에 빠지는 일과 깨어나 산책하는 일을 한 명씩 교대로 맡을 때에만 유지되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부부라는 단어는 벌써 어색하고, 우리 둘을 대신 끼워 넣어 읽으니 꽤 위로가 될 만한 말인 듯싶었다. 둘 다 잠들어도 안 되지만 둘 다 깨어있어도 ‘격렬한 감정의 터널’을 함께 통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교대로 잠들고 산책을 떠나는 것이다. 둘 다 깨어있는 거, 어쩌면 그게 더욱 난처한 일일 수 있다. 한 사람은 자고, 한 사람은 깨어있다. 그리고 나는 매번 깨어있고 도무지 어느 길 위로 산책을 떠나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곤히 자던 애인이 때때로 숨을 크게 들이 쉴 때 이 지루한 산책길 위로는 뭉텅이의 바람이 휘영청 훑고 지나는 걸 그는 알 수 없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그 까마득한 그날에도, 산책하는 사람의 무성한 상념을 도맡아 감당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은 이상한 마음이다. 꼭 알지 않아도 된다 싶다가도 모르면 속상하고 이내 슬퍼진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때 아름다움의 모든 요소와 이유를 완전히 꿰뚫지 않아도 마음은 허전하지 않았다. 그걸 굳이 내가 다 알지 못해도 그만이고, 내가 아는 것들만으로도 그만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평생, 어쩌면 죽어서도 담담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걸로 그만일 수가 없다. 잠든 애인의 얼굴은 영원히 부질없는 질문을 떠오르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다. 애인의 등은 언제고 처음처럼 낯선 살갗이라서 하마터면 손끝이 델 것만 같다. 애인의 등은 어떤 이야기도 적어 두지 않는다. 까마득하다. 지겹게 이어지는 산책길을 따라 다리가 퉁퉁 부울 때까지 걸어야만 할 거 같다.

잠든 애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너무 익숙한 상념에 빠져드는 나는 이 미묘한 마음 어디쯤을 짚어 본다. 오늘의 산책길은 어디로 접어들까. 어쩌면 그가 도달한 그곳 어딘가를 향하는 길이 아닐까. 무한히 늘어진 애인의 잠결 한 가닥쯤은 건드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잠든 애인과 그 곁에 누운 나 사이에 한 뼘만큼 틈이 벌어질 때, 나는 눈을 꿈뻑이며 거리를 나누고 또 나눈다. 반, 반의반, 반의반의반으로 바짝 틈을 붙인다. 까만 밤 어디에서도 혼자 걷는 산책길이 무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르락내리락 애인의 등을 따라 호흡을 맞추고 그를 가만 끌어안으며. 그래도 엄청 슬프지만은 않고, 아주 외로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게 뭐야, 고작, 잠든 애인의 등 때문에’ 했다.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는, 그 불균형 안에서만 균형을 찾는다. 그러니 홀로 잠든 그/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_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 마지막 문장






* 로건 화이트의 사진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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