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죄인인가 _ 연극 '낯선 사람'을 보고

'낯선' 국가의 익숙한 이야기를 듣고 와서
글 입력 2018.07.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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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필자가 하게 될 말이 너무 자극적일지도 틀리다고 지탄을 받을 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슈가르 파라디의 말대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하지 않나. 필자의 생각 또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비로소 시작된 여러갈래의 그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독자들 또한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다.

 
모두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죄인인가’라는 노래가 있었다. 연극 <영웅>이라는 작품의 안중근 역이 재판을 받으며 부르는 노래인데,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죄인은 누구인가, 나인가 아니면 당신인가 하며 되묻는, 설의법의 노래인 것이다.
 
<낯선 사람>이라는 연극은, 비록 피해, 가해의 나라들은 다르지만 꽤 우리나라의 역사와 닮아있다. <영웅>이 그려내고 고증해낸, 그 일제강점이라는 고통의 시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다른게 있다면 앞서 말했다시피, 그 주인공이 한국-일본이 아니라 중국-유럽이라는 것. ‘낯선’ 국가들이 등장하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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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 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천샤오보와 울리히이다. 각각은 중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 둘의 관계는 평생의 숙적과 원수에 가깝다. 연극이 가지고 가는 ‘천샤오보와 울리히가 참여한 전쟁’의 시기부터 그들이 늙어 ‘할아버지가 되고, 요양원에 들어가는’ 시기까지를 이어주는 것은 단연 둘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증오와 자책감이다. 둘은 짧지 않은 그 시기동안 서로를 미워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
천샤오보


천샤오보는 자신의 손녀와 그녀의 선배가 출연하는 오페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독립운동가와 그녀의 애인, 그리고 그 독립운동가의 애인을 사모하는 침략국의 경찰의 이야기인 이 오페라의 내용은 천샤오보에게 낯설지가 않다. 자신의 젊은 시절, 자신이 겪어왔던 상황들과 닮아있다. 낯선 점은, 이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릇이 자신이 그렇게나 피하고 싶어하고 증오했던 ‘서양의 예술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를 죽이지마!! 그를 절대 죽이지마!!”
 
오페라 이야기를 듣고, 한 장면을 관람하던 할아버지가 된 천샤오보는 이렇게 소리친다. 아마 그에게는 그 오페라 속, 죽음 문턱 앞에 서있는 주인공이 자신과 겹쳐보였을까. 모르는 일이다.
 

2.
울리히


반면 울리히는, 유럽의 장교로서 천샤오보보다는 강자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다. 그는 소녀를 죽였고, 또 수많은 중국의 운동가들을 죽였다. 그중 단 한 사람 죽이지 않은 이가 있었느니, 바로 천샤오보였다. 천샤오보에게 당신의 죽음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주러 간 울리히가 마주한 것은, 그 젊은 시절 천샤오보가 꼿꼿이 앉아 자신의 죽음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는 천샤오보와 몇마디를 주고받고는, 갑자기 흥분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천샤오보를 살려야한다’고 소리친다.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던 적은 처음입니다”
    
천샤오보에게 울리히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고고한 절개의 정신일까. 그는 그 하얀 정신을 보고 그를 살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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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샤오보는 자신의 과거와 예전의 일들을 떠올리고 괴로워하며 이런 말을 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죽기 1시간 전에 할 것이 책을 읽는 일 밖에 없다던 그가, 울리히에 의해 극적으로 받게 된 생명 연장의 시간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가 맑을 때, 할 일이 없을 때, 꽤 여유가 있을 때 책을 읽는다. 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순간은 언제나, 잡생각이 많고, 할 일이 많고, 또 여유가 없을 때였다. 천샤오보에게 자신의 사건 이후의 나머지의 삶들은 다 그런 것이었다. 여유가 없고, 할 생각이 많은 순간들이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정신이 맑던 그 천샤오보가, 평생에 가져온 생각은 아마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고고하고 깨끗하던 자신이, 결국 자신의 친구와 동료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목숨을 건지게 된 사실이, 그 더럽다고 여겨지던 권력의 손이 자신에게 여분의 시간들을 던져준 일들에 정신을 쏟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를 죽이지 마!”
 
그렇게 보면 이 대사에서 그는, 천샤오보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옆에서 같은 뜻을 외치다 죽어간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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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만세!”
 
연극의 끝에서, 결국 울리히는 죽는다. 옷가지를 벗고, 총을 머리에 겨누며 그가 외친 말은 결국, ‘조국 만세!’라는 것이었다. 한 개인의 죽음인데, 결국 그의 평생의 인생과 같게도 ‘국가’의 무언가가 들어와 있었다.
 
울리히는 조국의 개였다. 한 사람이었지만,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한 사람이었겠지만 결국엔 조국의 뜻을 이행하는, 그 속의 부품일 뿐이었다. 윗 사람이 맞다고 하는 것 하라고 하는 것을 행해왔고, 또 그런 삶으로 종국엔 윗사람의 칭찬의 뜻이 담긴 ‘메달’를 받았다. 그런 삶에 만족을 하며 잘 살던 울리히가, 돌연 천샤오보에게 무서운 무언가를 느끼고 그를 살려주어야만 한다고 절규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맞는 죽음 앞의 사람의 초연함이 그가 지금까지 행해온 ‘윤리’에 맞지 않는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엔 누가 죄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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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분해서 보는 것이다.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이분하고, 맞는 것과 틀린 것으로 이분하고, 흑과 백으로 이분하는 것이다. 분명 울리히는 가해자이고 천샤오보는 피해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그 둘을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사람으로 만들었냐는 것이다. 울리히와 천샤오보가 전쟁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평생에 마주칠 일이 있었을까? 정말 그 둘은 유럽과 중국 사이에 어떠한 마찰이 있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일이 있긴 했을 인연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세상엔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수많은 시간과 시대들의 산물이다.
그 시간과 시대들을 점철하고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수많은 투쟁이다.

 
역사엔 언제나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어느 가상 속의 ‘국가’라는 개념과 그 모양이 발전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어디가 공격을 하고 공격을 당하더라도 그 곳엔 결국엔 ‘가족을 버리고 모인’, ‘조국이 불러서 모인’, ‘개인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딘가에서 그들을 ‘참전용사’ 등 멋진 말로 부를지언정, 그들은 어쨌거나 시대와 시간 속에서, 역사를 위해 희생된 피해자이다.
 
필자의 이 단언에 히틀러의 이름 아래, 아래 수많은 유태인을 죽인 그의 군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운동가들을 죽였던 일본인들은 죄인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은 건, 그들의 시대와 주변에서는 그것이 윤리가 아니었을까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투쟁하리라’는 이 곳이나 저 곳이나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무엇이 착한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더라도 주변의, 그리고 시대의 윤리를 개인이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모든 시대의 윤리가 옳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살인자와 학살자를 면죄시켜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죄는, 히틀러의 명령 아래 수많은 유태인을 죽음으로 이끈 ‘아돌프 아이히만’이 받은 것과 같은 것인 “생각을 하지 않은 죄”일 것이다.
 
역사는 한 줄의 글자로 지나가지만, 그 시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홀로 외로워하고 괴로워할 뿐이다. 그 남겨진 4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지켜볼 수 있었어서 좋았다. 그 배경의 사건이, 피해자 집단 또한 민간인 살해, 윤간 등의 폭력성을 띄고 있는 마냥 옹호할 수는 없는 사건이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최윤정님의 사진과, 직접 찍은 사진을 첨부합니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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