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사람

글 입력 2018.07.25 11: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45.jpg
 

그 누구에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늘 역할에 둘러쌓여 있지만 실제 나라는 역할은 가장 등한시되고 있다. 누군가의 무언가로 사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무언가를 찾는 것은 늘 뒤로 밀린다.그런다고 내가 어디 가겠어, 싶은 안도감에 매일 나의 초상이 희미해진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때가 많다.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아니,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려면 나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빛나지 않는 순간에도 콩깍지조차 없으면서도 웃으며 머리를 헝클어뜨릴 수 있을 만큼 변함없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당신도 나도 싫다. 궁금하지 않다. 이유도 알고 싶지 않다. 사실은 이유를 대충 알고 있다. 때때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에, 때때로 당신 역시 나에게 상처를 주기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역시 알고 있다. 상처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상처받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가면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것. 행복은 늘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라는 것도.

당신은 겁에 질려 있다. 나 역시 겁이 난다.  우리는 다른 순간을 겁내고 있다. 당신의 상황에 놓였던 이들을 본 적 있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르지만 섣부른 조언을 할 수 없다. 말이나 정보는 줄 수 있어도 겪는 것은 다르니까.내가 힘들다고 얘기해도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당신이 모르게 준 힘이 있다. 별 뜻 없는 말로 나를 버티게 한 날이 있듯이 당신이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말을 한 마디 쯤은 해주고 싶다.

어쩌면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나를 이용하라고 종용했을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많은 것이 당연해질 때도 있다. 당신이 궁금했으니까 아껴주고 싶은 만큼 챙겨주고 싶었다. 물론 그 뒤에 찾아오는 허탈함 역시 나의 몫이다. 나는 사실 진심으로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로는 대가성이 없다고 하면서 당신이 그런 날 인정해주길, 기뻐해주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평생 당하고만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대체로는 이용하느니 혼자인 것을 택하려 했지만 누군가는 또 이용당했다며 씁쓸하게 목울대를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도움과 이용이란 그렇게 상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문제나 아픔이 더 많이, 더 크게, 더 깊이 보인다. 아직은 그런 무조건적인 존재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엄마처럼 당연하게 뭔가를 내주는 존재로, 아무 대가 없이 늘 필요할 때 찾아와도 되는 존재로, 남아있고 싶지 않다. 당연하고 싶지 않다. 당연해진다고 느낄 때, 따뜻하게 주는 대신 날 선 말을 한다.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더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가까워질수록 먹었던 마음이 약해지고, 나도 모르게 다시 당신에게 마음을 주게 될테니까. 어느 날 발견할 이 불균형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상처는 아물고 삶은 흘러갈테지만 마음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게 점점 쉬워진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보다 아프게 하는 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신이 낯설어서 설레는 순간은 지났다. 재미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당신 역시 뻔해졌고 뻔해질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역시 같은 절차를 밟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바라보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뻔해진 건 우리가 가까워진다는 어려운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치는 사이가 되는 게 훨씬 쉬웠을텐데.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사이를 유지했다. 그 뻔함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결과다. 어쩌면 평생 남이었던 당신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있다. 당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당신의 모습. 그렇게도 익숙한 당신이 당신에게 새로운 순간에 힘들어하고 있다. 당신이 내가 겪은 그 힘든 시간을 똑같이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나 힘겨울 때 당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일단 나란히 서 있다.

좋은 사람이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할 것이다. 강박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궁금하지 않은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장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