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천강에 뜬 한(恨) [공연]

마당극은 타오르는 촛불이다
글 입력 2018.07.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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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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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시에서 ‘한(恨)의 정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에 한의 정서의 한이 ‘한국 한(韓)’ 자 인 줄 알았다. ‘한국의 고유한 정서’를 문자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한의 정서 속의 한은 몹시 억울하거나 원통하여 원망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 때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단순히 원망스러운 감정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민족 정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까? 소위 ‘냄비근성’이라 불리우는 ‘빠르게 끓어오르지만 그만큼 빠르게 식어버리는 강렬한 분노의 감정’ 수준에 머무는 것인가? 사전적 의미만이 전부라면, 한의 정서라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식민 시절 때에 일본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이라는 낭설이 돈 것도 이해가 된다. (낭설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진실이 존재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세영이 1982년 자신의 논문에서 언급한 바로는 한(恨)이란 복합적인 감정이다. 단순히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개인이 자신의 소원 성취 욕구를 단념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원망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부차적인 감정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즉, 이 감정은 체념으로 끝나지 않는, 그 상황을 탈피하려는 강한 집착이자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의지이다. 앞서 언급했던 진달래꽃에서 우리는 내가 아직 사랑하는 님이 나를 ‘버리고 떠나는’ 이별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화자가 이별의 상황 속에서 님을 단순히 원망하고 있을 뿐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화자는 원망과 체념으로만 끝날 수 있는 자신의 상황을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임을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며 오히려 그 의지로써 현실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시 속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만약 화자가 임의 귀환을 포기해버렸다면 그는 원망의 눈물을 흘리는 데에서 그쳤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님이 돌아올 것을 믿었기에 독하게 눈물조차 흘리지 않은 것이다. 이는 꽃을 뿌리며 님을 보냈듯이, 그가 곧바로 되돌아올 것을 바라는 화자의 간절한 소망이자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처럼 한국의 시는 대체로 이 ‘님’을 통해 한의 정서로 대표되는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현해왔다. 그리고 ‘님’은 시대에 따라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하늘의 신일수도 때로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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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떠나가는 님만큼이나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나라’에게도 한(恨)을 지니고 있어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마찬가지로 강한 현실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의 한의 정서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강렬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화병’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나라에만 있는 단어라고 한다. 정식 질병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전에 미국의 권위 서적 속에 한국 문화와 관련된 특수한 질환이라고 등재된 적은 있다. 화병은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생기는 병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주로 남주인공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 마음을 강요할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일 때, 말도 못하고 두통과 불면에 시달리는 모습을 화병으로 일축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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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계속되어 왔던 수많은 전쟁들, 식민 지배, IMF, 더 최근은 박근혜 퇴진까지 우리는 수 많은 힘들고 억울한 상황과 직면해 왔다. 만약 우리가 원망은 하지만 그 상황을 그냥 참고 넘기기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현재가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그 상황 속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강렬하게 자신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출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의 정서가 그 모든 결과의 뿌리가 되는 고유의 정서임이 틀림 없다.


마당극은 한의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계승했기에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사실 현대에 성립된 양식이다. 현대 연극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양식 이기도 하다. 진보적 연극 운동의 성격을 띠며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고 집회 현장에서 공연되거나 공연 자체가 집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마당극과 촛불 집회처럼 항상 평화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현실과 싸워 왔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조용하지만 큰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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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언제나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 마당극 ‘천강에 뜬 달’ 속에서도 그러하다. 세월호, 가습기, 비정규직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보다 보면 이게 마당극인지 아니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인지 장자의 나비 꿈처럼 헷갈릴 것만 같다. 마당극은 본래부터 운동의 성격이 강한 만큼 집회 현장에서 공연되거나 공연 자체가 집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강에 뜬 달’은 마치 하나의 촛불과 같다. 작다고 무시하다 손이 데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권력이 진실을 이기는 기막힌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체념하지 않고 그래도 바뀔 수 있다며 변화를 부르짖는 하나의 목소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의 정서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얼이란 그런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도 그와 타협하지 않고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그 강렬함.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였고 현재이며, 미래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김동수 (Dong - Soo Kim). 1986.
한국시가에 나타난 한의 정서에 대한 고찰
- 소월시를 중심으로 -. 국어교육, 57(0) : 291-309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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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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