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믿음보다 의심으로 [문화 전반]

우리는 모두 자신을 의심할 용기가 필요하다.
글 입력 2018.07.2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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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큰 상영관에 걸리든지, 아니면 TV로 가든지, 난 상관없어. 이건 우리의 역사야. 훗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잖아. 거창한 영화일 필요도 없지.”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 당시 군 및 준군사조직 판카실라 청년조직은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를 학살했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40년이 지난 지금 반공 척결의 영웅 ‘안와르 콩고’를 비롯한 학살단의 주범들과 함께 당시의 학살을 재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로부터 제의를 받은 안와르 콩고와 그의 친구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유죄라고 판결이 내려지면 즉시 잡아다 죽여 버렸어요. 처음에는 때려서 죽였는데 피가 너무 많이 튀잖아요. 여기가 전부 피바다가 돼. 그래서 철사를 쓴 겁니다. 철사로 목을 졸라 죽였어요.”


액트 오브 킬링 2.jpg
 

도시 곳곳을 돌며 살인을, 아니 학살을 추억하는 그들에게 죄의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웃으며 자랑스러워한다. 스스로를 갱스터라 칭하는 그들은 믿는다. 갱스터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며, 자유로운 우리는 관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국가 전복 세력인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들이다. 우리는 떳떳하며 이미 죽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시, 우리는 떳떳하다.
 
그들의 믿음은 강하다. 제네바 협정에 의하면 국제법상 전범자에 해당된다는 감독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그런 국제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범죄는 승자들이 정의하는 것이며 나는 승리자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다.” 그들은 승리자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그들의 삶은 비난받아 마땅한 가해자의 그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윤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호화로우며, 국가를 수호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액트 오브 킬링 3.jpg
 

믿음도 하나의 감정과 같은 것이어서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공고해진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눈 감정은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의 믿음이 단단해질수록, 우리는 우리 밖의 사람들과 멀어진다.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나아가 서로를 적대시한다. 그렇게 세상은 하나의 울타리로 나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울타리는 높아지고 그 속의 사람들은 믿음의 노예가 된다. 감정에 불과했던 믿음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 다행히(?) 인도네시아는 하나의 믿음을 나눈 듯하다.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들의 화려한 삶이, 죄의식 하나 없는 표정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믿음의 노예들이 많이 보인다. 지난 6월 오랜만에 고향 대구에 내려갔다. 며칠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학생, 여기 서명 한 번 하고 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 서명.’ “기차 시간에 늦어서요. 죄송합니다.” 그 아저씨께서는 그 날 몇 명의 사람들을 붙잡으며 서명을 요청했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전 세계가 아니라 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럴 리 없다’,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우리의 우방국,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거리로 나온 그들의 눈빛은 강한 신념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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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에도 반전이 있을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안와르 콩고는 괴로워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죄의식이 그를 감싼다.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자랑스러워하며 손자들과 함께 보다가도 철사에 목 졸려 죽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린다.
 
“내 인격이 파괴되는 것만 같아요. 저 곳의 두려움. 공포감이 나를 감싸고 지배하는 것만 같았어요. 난 느낄 수 있었어요. 조쉬. 내가 죽인 사람들의 공포를. 내가 죄를 지은 걸까요? 이런 짓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한테 했어요. 이 모든 게 나한테 돌아오는 걸까요?”
 
콩고는 처음으로 자신을 의심했다. 공산주의자 학살은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 순간 그는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40년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안와르 콩고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믿음은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성공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심 없는 믿음은 위험하다. 여기서 의심이란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문. 그것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안와르 콩고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오늘도 거리에서, 광장에서, 휘날리는 성조기를 보며 생각한다. ‘부디 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심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굳건한 믿음에서 벗어나 자신을 한 번 의심해보기. 거기에 대화와 소통의 열쇠가 있다.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믿음은 사람을 흩어지게 하고 의심은 사람을 모은다고 하지 않던가.




[백광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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