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튀드를 아시나요? [공연]

글 입력 2018.07.2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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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에튀드가 모든 작곡가에게 특별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들이 그 악기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에튀드를 쓰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죠.”

왜 에튀드였을까? 세계적인 무대들을 누비며 바흐,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슈만 등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소화해 온 그가 선택한 장르가 처음엔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아직 나에게 에튀드는 피아노 학원에서 들리던 다소 딱딱한 연습곡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렬한 악센트를 가진 카푸스틴의 에튀드로 시작한 프레디 캠프의 연주는, 결과적으로 이런 편견을 부수고자 하는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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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시작을 현대 작곡가 카푸스틴의 음악으로 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재즈 양식이 도입된 에튀드들은 확실히 항상 듣던 고전과는 차이가 있어서 귀를 더 활짝 열게 되었다. 프레디 캠프는 다른 두 작곡가들에 비해 곡의 수가 적은 점이 아쉬웠을 만큼 카푸스틴의 에튀드를 잘 소화했는데, 특히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하는 연주가 그의 강점이라고 느꼈다. 그의 손가락은 섬세하면서도 과감했고 재즈적 여유를 음미하면서도 정확성을 놓치지 않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캠프는 인터뷰에서 카푸스틴을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온 몸을 기울여 연주하는 모습에서 카푸스틴의 곡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에튀드에 대한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이번 공연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것 같다. 프레디 캠프가 ‘대부분의 피아니스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고 말한 쇼팽의 10번 에튀드의 1번 C장조는 그 악명만큼 화려했다. 그는 실제로 1번이 끝난 뒤 약 1분 정도 오른손의 통증을 해소하는 텀을 가졌는데, 무대 위에서 아티스트가 가만히 쉬는 것을 처음 본 나로서는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1번이 특히 심하다는 것이지 나머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를 온전히 연주한다는 것은 그로서도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쉬는 동안 그의 결연한 표정은 마치 끝까지 완벽함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프로다운 태도로 짧은 시간 동안 침착하게 체력을 회복하고는 바로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폭풍 같았던 쇼팽의 1번 에튀드 뒤로 이어진 2번은 여러 모로 1번과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빠르기는 비슷했지만 강약이라든지 소리의 결이 1번과 상호보완적이라 잠깐의 공백에도 자연스럽게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프레디 캠프는 특히 악센트 조절에 능해 보였는데, 속도감과 힘 조절이 요구되는 4번을 연주할 때에는 온 몸을 기울여 거의 건반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했다. 가늘고 약하게 치는 부분에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았으며, 미세한 발의 움직임과 몸의 떨림으로 보는 사람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한 곡에 몰두하면서도,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거장의 면모가 느껴졌다.

가장 고전인 만큼 정석적이고 균형 잡힌 느낌이 강했던 쇼팽의 에튀드와 달리 라흐마니노프 에튀드는 조금 더 무겁고 감정적이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곡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대답했던 프레디 캠프는 곡에 담긴 정서를 최대한으로 표현하려는 듯 했다. 여기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역량이 느껴졌던 부분은 곡에 담긴 아우라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아마추어 공연에서 느꼈던 재미는 없었지만 그 반대편을 달리는 치열함과 완벽주의가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5번은 장대하면서도 우울한 곡이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화음들이 모여 복합적인 감정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라흐마니노프 에튀드는 전반적으로 프레디 캠프의 섬세함이 더욱 빛나는 연주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무거운 저음과 가벼운 고음이 조화를 이루는 양상이 지속될 때 한 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 섬세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마치 음표로 쓰인 악보 외에도 감정이 적힌 악보가 하나 더 머릿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쇼팽의 곡에 비해 공백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 감정들이 자리를 채워서인지 딱히 더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8곡을 치는 동안 파도치던 감정의 흐름이 가장 아름답게 막을 내린 9번은 듣고 나서 가슴이 먹먹했다. 왠지 연주자의 신발을 눈 여겨 보게 되었는데, 곡이 노래하는 감정만큼이나 섬세한 움직임이 보여서 정말 온 몸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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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여태 보았던 클래식 공연들과 달리 앙코르를 세 번이나 했다는 점인데, 에튀드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매력의 곡을 연주해서 마치 ‘전 이렇게 다양한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프레디 캠프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곡은 차분하고 섬세한 손가락이 분위기를 살려 냈던 베토벤의 ‘비창’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리사이틀을 온전히 에튀드로만 구성한 것은 대중들이 에튀드의 매력을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었을까. 피아니스트들에게 에튀드란 수험생들에게 ‘수학의 정석’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공연 하나를 보고서 잘 알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적어도 에튀드 하나를 완벽히 연주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의 의지와 열정을 눈앞에서 봤을 때의 느낌만큼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에튀드에서 받은 좋은 에너지가 한 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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