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노 연주 보러 가요!

이번 연주회를 시작으로 나는 또다시 피아노와 클래식 연주회에 방문할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그리고 피아노 연주를 보러 말이다.
글 입력 2018.07.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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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FREDDY KEMP PIANO RECITAL


프레디캠프_포스터.jpg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하나가 전부였다. 연주회가 시작되고, 피아니스트인 프레디 켐프가 등장했다. 피아노 한 대로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듣기에도, 보기에도 충분했다.



카푸스틴

 
N.Kapustin
8 Concert Etudes for Piano Op.40

I. Prelude
VII. Intermezzo
VIII. Finale


카푸스틴의 연습곡은 에튀드임에도 불구하고 곡이 비교적 대중적이고 우리의 귀에 익숙한 느낌이 강했다. 개인적으로 재즈 양식을 도입한 카푸스틴의 에튀드를 가장 기대했는데, 시작부터 감탄이 나오는 연주였다. 재즈풍의 곡이다 보니 독자적으로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가는 왼손 테크닉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프레디 켐프는 어렵지 않게 해냈다. 마지막 곡 8번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 리듬과 에너지는 피아노가 가진 세기와 악센트로도 이렇듯 강렬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음에 새삼 놀라웠다.
 


쇼팽


F.Chopin
Etudes Op.10

제 1번 C장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E장조
제 4번 c샤프 단조
제 5번 G플랫 장조
제 6번 e플랫 단조
제 7번 C장조
제 8번 F장조
제 9번 f단조
제 10번 A플랫 장조
제 11번 E플랫 장조
제 12번 c단조


에튀드로 유명한 쇼팽의 에튀드지만, 그 난도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엄청난 부담과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쇼팽의 1번 C장조를 마치고 한참이나 손가락을 풀며 멈춰 있던 프레디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내 귀에 들리는 것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3번, 6번, 11번 곡이 기억에 남는다. 3번 E장조의 곡은 처음에는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였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되다가 중반부에서는 분위기가 확연히 바뀐다. 다시 서정적인 멜로디로 돌아가면서 곡이 끝나는데, 하나의 곡에서 여러 가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6번 E플랫단조는 Op. 10중에서 가장 연주하기 쉬운 곡이라고 한다. 곡의 느낌은 우수에 가득 차 있고 애처로운 분위기인데 아무래도 연주가 편하다 보니, 듣는 나로서도 가장 편안하게 들으면서 곡의 분위기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었다. 끝날 때쯤에는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11번 곡은 반음계 선율이 매력적인 곡이었다. 11번쯤까지 들으니까, 내가 어떤 분위기의 멜로디를 좋아하는지 취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온음계보다는 반음계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더욱 매력적이고, 마냥 밝은 분위기보다는 서정적이고 애처롭고 어딘가 불안한 느낌의 반전이 있는 곡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쇼팽의 에튀드를 쭉 들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프레디의 손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에튀드가 연습용으로 쓰인 곡이다 보니, 각각의 곡에서 표현해야 하는 기술들이 있었고 이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나의 자리에서는 건반을 연주하는 프레디의 손을 볼 수는 없었다. 연주의 소리와 함께, 그가 뽐내는 건반 위의 손가락을 함께 보는 것이 에튀드를 더욱 즐길 방법이지 않을까.



라흐마니노프


S.Rachmaninov
Etudes-Tableaux Op.39

제 1번 c단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f샤프 단조
제 4번 b단조
제 5번 e플랫 단조
제 6번 a단조
제 7번 c단조
제 8번 d단조
제 9번 D장조


인터미션 후,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관객인 나도, 연주자인 프레디도 더욱 안정감 있고 더욱 집중해서 곡을 소화했던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2번 A 단조는 작곡가 자신이 바다와 갈매기를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텍스트를 접하고 2번 연주를 듣다 보니, 마치 나에게는 왼손은 하나의 바다처럼, 오른손은 하나의 갈매기처럼 느껴졌다. ‘A-B-A’의 구성으로 다시 오프닝이 반복되는데, 바다와 갈매기가 서로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7번 C단조를 듣기 전에 작곡가 본인이 이 곡을 ‘장례식 행진’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접했다. 매우 슬프고 암울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내 생각만큼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행진곡’이기는 했다. 연주를 들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분명 우울하고 슬픈 일이지만, 그 속에서 어딘가 모를 환희의 이미지가 보이는 듯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는 라흐마니노프의 색이 확실히 곳곳이 배어있었다. 어딘가 난해하고 매우 불안정하지만, 그 속에서 묘한 질서와 규칙이 있는 기분이었다.



앙코르


에튀드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환호의 표현이 박수가 전부라는 사실이 조금 슬플 정도로 멋진 연주였다. 앙코르 전에도 그는 몇 번의 입장을 통해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끌어냈다. 마음껏 박수를 치면서, 이 고마움이 프레디에게 닿기를 바랐다.

프레디는 앙코르곡으로 쇼팽의 왈츠, 폴로네이즈, 베토벤의 비창을 들려주었다. 에튀드보다는 훨씬 익숙하고 대중적인 곡을 프레디의 손을 통해서 들어보니, 프레디 켐프라는 피아니스트가 가진 매력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에튀드를 통해 기교와 기술을 보여주었다면, 앙코르곡을 통해 프레디가 곡을 해석하는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부드럽고 편안하면서 아주 매끄러운 연주였다.


13.jpg
 

클래식은 들으면 충분했고, 이 연주회 또한 들으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약 2시간에 걸쳐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아노는 연주자가 손으로 연주하고 나는 그것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건반 위를 돌아다니는 프레디의 손, 악센트를 줄 때의 팔, 페달을 밟아대는 그의 발까지. 피아노는 온몸으로 연주하는 악기였다.

이번 연주회를 시작으로 나는 또다시 피아노와 클래식 연주회에 방문할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그리고 피아노 연주를 보러 말이다.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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