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미니즘이 당연해질 때까지, 페미니즘 연극제

현시대 현모양처 이야기
글 입력 2018.07.2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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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페미니즘 연극제 <노라이즘>을 관람하러 혜화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열리는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에 관객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신청을 했다. 요즘 핫한 페미니즘 주제를 연극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것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번 연극제는 6월 20일부터 7월 29일까지 현시대 페미니즘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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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라이즘>을 관람했다. 곧 은행장이 될 진규는 최고의 현모양처를 찾는 TV프로그램에 자신의 아내 노라를 내보낸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노라의 사생활은 알려지고 평가받는다. 집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그녀는 오늘도 아이와 남편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끊임없이 책상을 정돈하고 바닥을 닦는다. 남편과 같이 갈 파티 의상과 구두를 고르고 아이들 장난감을 사고 또 남편에게 용돈을 받는 그녀의 시간은 가족으로 차있는 것 같다. 그 속에 노라는 없었다.

어느 날 노라에게 친구가 찾아온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관문에 방해꾼 같은 역할이다. 친구는 이혼한 상태였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노라에게 처지를 털어놓는다. 그 말을 들은 노라는 친구를 말없이 꽉 안아주며 괜찮냐고 묻는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노라와 달리 친구는 행복해보였다. 이제야 자신에게 투자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친구를 보며 노라는 부러움을 느낀다. 그게 시작이 되어 노라는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오게 된다.

무대 가운데에 사각형으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철 구조물이 설치되어있고 그 안에 노라가 있다. 남편과 노라의 관계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속이 비어있는, 수평적인 모습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 남편은 아내를 계속 가르치려 든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남편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집안의 권력자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아직도 노라와 같은 삶을 사는 여성들은 많을 것이고 현대에도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가족 문화에 대해선 더 그렇다. 당장 나의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나는 그렇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비혼 주의자가 되었다. 노라처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에 ‘나’는 존재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또 결혼과 임신에 대해 누구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이를 더 이상 낳기 싫어 낙태를 한 노라는 ‘임신이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잖아’라고 절규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숭고하고 대단하게만 여겨져왔지 그 이면에 대한 모습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다. 결혼함과 동시에 나는 지우고 아이와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삶, 그런 여성의 삶에 대해 모두들 의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주제를 연극에서 다루기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대에서 페미니즘을 외치고 현시대의 현모양처에 대해 메시지를 담아내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한국의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요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번 연극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해본 사람에 대해 조금의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이 110분이라고 되어있는데 70분 만에 끝나버렸다는 점과 페미니즘 연극제의 타이틀을 달고 많은 메시지들을 담으려 하니 그 깊이가 얕았다는 점이 아쉽다. 현모양처에 대한 현실 고발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극 후반에 가면서 낙태 이야기가 나온다. 잠시 스쳐가는 것처럼 낙태 이야기가 잠깐 등장하는데 중절수술을 한 노라가 자책을 하고 친구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끝이 난다. 이야기의 본질보다는 여러 문제점들을 70분 안에 짧게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노라가 왜 그렇게 영혼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지 노라의 삶을 중점적으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런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연극이 진행되고 있고 계속해서 많은 관객들이 찾아준다는 것이 좋았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까지, 연극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페미니즘이 당연해질 때까지, 이런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동시에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을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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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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