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환상에 잠기어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글 입력 2018.07.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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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 이 한 단어는 무수히 뻗어나간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 연인, 자식, 크게 보아 인류, 더 나아가 생명 자체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앓고 또 기뻐하며 그 과정을 이야기로 남겼다. 시대마다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각자의 사랑을 보여주며 서로 공감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살하기도 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서울 소시민, 나의 사랑은 어땠을까? 과거 책으로 접한 사랑, 미디어에서 배운 사랑은 어딘가 멀고 아름다웠으며 숭고해보였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원했다.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사랑만큼은 확실하기를 바랐다.

“환상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20살의 나의 사랑관은 이러했고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에 꼭 맞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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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한 두 사람이 다시없을 사랑을 하고 한 사람이 죽자 남은 이는 그리움을 쭉 간직한다. 시간이 흘러 동성으로 환생한 연인에게 심리적 갈등을 느끼지만 결국 서로를 받아들인다.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끝내 자살한다.


비록 현실의 장벽에서 뛰어내리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협소한 가치관이 바뀌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깊게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 맺으며 이상적인 ‘사랑’에서 현실의 사랑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번지점프를 하다」는 그 변화를 감각하게 했다.



오직 사랑만 외치는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사랑하게 되겠구나.”

- 태희


불교의 운명관이 전생이라는 판을 깔아주고 주인공들은 현실이라는 팍팍한 공간에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첫눈에 반했다니, 정말 완벽한 첫사랑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영화 내내 인연이라는 코드는 계속 등장하며 사람들의 내적 갈망을 자극한다.


완벽한 나의 짝
꾸미기_미러링.jpg


살면서 내 잃어버린 영혼의 반쪽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혼자 살아가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타인의 체온에 부비며 살아갈 때 언제나 함께 해주는 한 사람은 큰 위안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도 유년기에 다들 꿈꾸어보았을 것이다.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나 역시도 그 사랑에 심취했었다. 아직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본다.

살아가는 데 몇 개쯤 가지는 환상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제는 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사랑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낭만이라는 무대 뒤에는


주인공 서인우는 오직 인태희 한 사람만 사랑한다. 그녀가 임현빈으로 다시 돌아오자 사랑하면 안 되는 수많은 조건을 뒤로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17년이라는 나이 차, 같은 성별, 선생과 제자라는 사회적 위치, 기혼자에게 요구되는 도덕, 2000년대에 더 부정적이었던 동성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는 오직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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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먹은 고등학생 임현빈은 담임선생님과의 소문 속에 괴로워한다. 치기 어린 장난을 치고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자신을 향한 수군거리는 목소리, 이상한 눈빛은 고통이다. 존경하는 선생님은 기억해내라고 멱살 잡고 친구들은 떠나간다. 영화는 오직 전생이라는 말로 임현빈을 침묵시키고 인태희를 불러온다.

오직 너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서인우의 행동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도 되는 것일까? 전생의 연인을 일방적으로 끌어내고 현생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것 하나에만 매몰되어 자신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는 것도 괜찮지 않다.



현실이 없다


우리는 오늘도 관계 속에서 부딪히며 깨진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배우고 그것을 수용하거나 거절한다. 서인우는 깨질 생각이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주위 지인 누구도 설득하지 않았다. 연인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이 눈 먼 자가 비극에 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비극을 향한 과정에 현실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오직 나와 그녀, 둘만 존재한다는 좁은 시각에 중요한 것들이 가려졌다. 가족과의 갈등은 제대로 풀지도 않았고 세상이 거부하는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도 없었다. 영화는 전생의 사랑을 풀어내느라 바쁜 나머지 임현빈조차 주변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사랑지상주의를 외치는 「번지점프를 하다」에는 정작 삶이 없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는 그려내는 사랑이 현실을 떠난 환상 같은 사랑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따지는 마음 내려놓고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사랑 자체에 잠겨 버리고 싶어서. 그러나 잠겨 죽은 이야기에 우리의 현실은 없다. 갈등도, 변화도, 성장도 없다. 서인우의 갈등, 임현빈의 변화는 그들 개인에게서 멈춘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사랑’이 가진 이미지에 휘둘렸던 지난날들이여, 안녕. 나는 지금-여기의 사랑을 선택했다. 반드시 당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기로 했다. 드라마처럼 멋있고 영화처럼 박진감 있는 사랑은 아닐지라도 서툰 나의 말로나마 다가가려 한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에게 나와의 만남에 대한 짧은 감사를 전한다. 엄청난 확률로 우리들은 만났고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그 이별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는 새롭게 시작할 사랑을 꿈꾸며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아침처럼 깨어나 다시 살아간다. 끊어지지 않은 줄에 기대어 번지점프 하듯 끝이 아닌 시작으로, 또 다른 사랑을 환영하자.




[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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