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사랑한 여름 : 그 찰나의 순간 [드라마]

단막극 "한여름의 추억", "연우의 여름"
글 입력 2018.07.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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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여름 : 그 찰나의 순간
단막극 <한여름의 추억>, <연우의 여름>


풍경 가득 푸른 잎이 출렁이고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진 뒤
찌는 듯한 더위
매미 소리 귀가 따가울 즈음
무너질 듯 폭풍우 오고 나면
어느새 코끝 찡한 바람이 솔솔
너는 나와 함께했던 시간 내내
어서 내가 지나가 주길
성큼 다른 계절이 다가와 주길
바라고 바랐겠지만
이것 봐 나는 그리 길지 않아

-한여름의 추억 中-


여름. 찌르는 햇빛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를 때면, 아 진짜 여름이 왔구나. 푹푹 찌는 무더위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싶다. 근데 이 계절 좀 밉다.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더위에 짜증이 솟구쳐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훠이~훠이 가서 얼른 가을이 오라 하는데, 또 곧 가버릴 걸 생각하니 아쉽기도 한 계절이다. 여름이 지나가면 시간이 확 와 닿아서. 벌써 달력이 반이나 넘어갔구나 나 또한 살 먹었구나 싶어서. 그래서 얼른 보내고 싶으면서도 보내기 싫다. 그 뜨거움이 찰나인 계절. 오묘한 자식 같으니라고.

그래서 이 여름에 생각나는 단막극 두 편을 가지고 와봤다.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을 테니.

여름과도 같은 찰나의 순간 속 우리들. 그래서 아껴주고 싶은 사랑, 청춘이 생각나는 단막극 드라마 <한여름의 추억>과 <연우의 여름>이다.

이 글을 읽는다면, 지금의 여름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찰나의 순간인 여름을.



<한여름의 추억>


찰나의 순간, 눈이 부시게 빛났던, 나의 지난 연애들


한여름포스터.jpg
 

<한여름의 추억>은 한여름이란 여자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37살, 여전히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평범한 라디오작가다. 이야기는, 한여름이란 여자의 지난 연애사로 이루어진다. 그녀의 입으로, 또는 그녀의 구 남친인 네 남자가 추억하는 한여름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네 남자의 연애에 영향을 주었다.


불같은 여자가 싫다 - 지운
솔직한 여자가 싫다. - 제훈
첫사랑을 잊지 않는다. - 현진
사랑을 믿지 않는다. 모두 - 해준


모두 한여름이란 한 사람을 회상하며 하는 말이다. 불같고 솔직한 여자. 첫사랑을 믿지 않게 되고 사랑을 믿지 않게 만든 여자.

남자들은 여름을 쌍년으로 기억할지 몰라도 여름은, 첫사랑에겐 내숭만 떨면 아무도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는 걸 배웠고, 스무 살 질리도록 싸웠던 남자친구에겐 헤어지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고,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에겐 자신의 욕심 때문에 남의 진심 짓밟으면 벌 받는 걸 배웠고, 간만 보고 도망간 남자들에겐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치는 울타리가 다른 사람한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모두 지난 그녀의 연애로 알게 된 사실이다. 연애의 좋았던 기억도, 안 좋았던 기억도 모든 연애가 한여름 자체였고, 지금의 한여름을 만들었다. 모두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 좋고 행복한 기억들만이 있어 빛났다는 게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빛나게 해준 순간들이었기에.

때론 초라하고, 별거 아닌 나를 잠시나마 빛나게 해주었던 순간이기에.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겨서 버린 편지 속에
두 갈래로 찢겨진 사진 속에
평생 열지 않을 상자 속에
서랍의 끝의 머리와 삭제된 메일함 속에
고함 한번 지르고 온 바닷속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그러니 그곳에서 내가 가끔 울고 있더라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진 말아요.

난 빛나고 아팠어.
모두 네 덕분이야


한여름의 구 남친들이 그녀를 회상한다고 했지만, 그녀를 애절히 그리워한 건 아니다.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한여름은 죽었다. 휴가차 떠난 LA의 사촌 언니의 집에서 어이없이 총을 맞고. 모든 구 남친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진 않는다. 그녀의 죽음을 현재 여자 친구와의 점심을 위한 반차로 쓰기도 하고, 최근까지 썸을 탄 게 무색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뭐 구 남친인데 평생 기릴 수도 없지. 남자들 모두 새로운 연애를 하고 있으며 시작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한여름은 그들의 기억에 살아있다. 그녀의 이름만은, 연애의 기억만은 살아있다. 그들은 한여름과의 연애의 기억을 성장판으로 삼는다. 그리고 처음에 나왔던 대사가 다시 나온다.

“불같은 여자가, 솔직한 여자가, 첫사랑을, 사랑을” 그리고 뒷말은 이어지고 끝나지 않지만 이젠 알 수 있다. 긍정적인 말일 것임을.


엄청 빛났던 것 같은데
단숨에 초라해졌어.
꼭 누가 불 끄고 가버린 것 같애
분명히 사방이 빛이었던 한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가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지금의 내가 초라하고 너무 거지같이 느껴질 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가장 빛났을 순간. 그때가 언제일까? 열심히 마음속을 뒤집어 놓다 나의 지난 연애를 찾아낸다. 지난 연애가 그리운 날.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의 젊고, 사랑받고 사랑해서 예뻤던 순간들이 그립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그렇게 생각하면 여름이란, 연애와 참 비슷하겠지. 찰나의 순간 뜨겁게 빛났다 지나가니까. 그래서 가슴이 조금 시리고 아쉽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사랑이 하고 싶은 건, 나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주고 빛나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때문일까.



<연우의 여름>

열병 같이 앓았던 여름을 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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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여름> 스틸컷


카페 '아르투르 도밍고'에서 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하는 연우. 빌딩청소부로 일하는 엄마가 다쳐 대신 청소 일을 나가게 된다.

일을 나간 첫날, 연우는 빌딩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 바빠 보이는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걸 바라보는 연우는 미소 지으며 신기해한다. 그런 연우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을 들어다 이곳에 놓은 것처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져 사는 그녀 같기도 하다. 그렇게 타의인지 고의인지 자신도 모를, 언젠가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던 연우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일어난다. 바로 윤환이라는 남자.

윤환은 연우의 소개팅남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완의 소개팅남이다.

지완은 연우의 초등학교 동창인데, 건물 사내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었고,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탁으로 이연우가 아닌 윤지완인 척 소개팅을 나가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윤환과의 첫 만남이었다. 차 한 잔만 할 생각이던 연우는 윤환에게 점점 끌린다. 그건 연우의 진실을 모르는 윤환도 마찬가지. 연우는 딱 잘라 접었어야 함에도 그가 좋음에 어찌어찌 만남을 이어간다. 그렇게 거짓말은 커지다 결국 펑, 청소부로 일하는 모습을 윤환에게 들키고서야 끝이 난다.


마치 사회 초년생이 겪는 성장통처럼,
사람들 틈에 섞인 연우는 잠시 갈피를 잃는다. 그 속에서 자신이 사는 방식이 틀린 것 같고, 부끄러움도 느낀다. 아나운서가 된 지완을 보며, 그리고 윤환에게 당당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동네를 떠났으면 달라졌을까. 공부를 좀 더 했을지 모르고 대학도 좋은 데 가서 졸업했을지도 모를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윤지완의 척을 하면 할수록, 비교할수록 이연우는 이연우인걸 깨닫는다. 윤지완이 되고 싶어 윤지완의 구두에 발을 넣을수록 발은 익기는커녕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아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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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여름> 스틸컷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따라가느라
조금 힘들거든요.

그냥 바람맞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쉬어요. 우리


소개팅 날, 미리 식당 예약을 못해 미안해하는 윤환에게 연우가 한 말이다. 근데 이 말, 연우 본인한테도 필요한 말이었다. 발에 익지 않은 구두를 신어 아팠던 발처럼, 애쓰지 말라고. 윤지완이 되고 싶어 애쓰지 말라고. 너는 이연우고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연우의 여름”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우에게 정감이 참 많이 갔다. 이제야 그건 연우의 얼굴에서 이 시대 청춘들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었겠다 생각한다. 흔들리고, 불안하고. 모든 게 처음인 이 세상에서 가끔 길을 잃고 헤매어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을 때도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연우를 통해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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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여름> 스틸컷


“편해지려고” 연우도 결국 윤환을 마주하고 진실을 말한다. 윤환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그래서 윤환이 뭐라 했는지 드라마상에선 나오지 않는다. 연우는 다시 돌아갔을 뿐이다. 연우 수리점의 딸로, 인디밴드 보컬로. 그녀일 때 가장 빛나고 가장 편한 자리로 말이다. 그렇게 연우는 열병 같이 앓았던 여름을 나는 중이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르투르 도밍고’에서 공연하는 날, 노래하는 중간에 카페 문이 열리고 연우는 그곳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다. 그곳에 윤환이 서 있었기를 바라본다.


제 이름은요

이따금 문득 내 이름을 중얼거리죠
빈 종이 한 장 가득히 끄적여도 보죠
내가 나라는 게 불쑥 겁인 날 땐
나도 모르게 종이를 구겨버리죠

할머닌 아빨 내 이름으로 부르시고
아빠는 엄말 내 이름으로 부르시고
내가 나라는 게 가끔 낯설을 땐
엄마가 불러주면 조금, 안심이 되죠

여름밤 골목길 산책하노라면
지겹던 풍경도 살갑기만 해
보기 좋게 낡은 것 같아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오늘도 문득 내 이름을 중얼거리죠
빈 종이 한 장 가득히 끄적여도 보죠
이게 나라는 게 좀 어색하지만
그대가 불러주면 조금, 나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마지막에 연우가 부른 자작곡>


*


단막극의 매력은 소소하다. 요즘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드라마는 재벌남, 재벌녀, 신데렐라라는 주인공 설정이 아니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남녀주인공 또는 서브남주 서브 여주 중 꼭 누구 한 명은 잘 살더라. 그런 드라마의 성공 법칙상 현실적이고 평범한 주인공들은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들러리가 되거나 밀려나고 만다. 그런데 실은 그들이 가장 나와 비슷할 텐데. 그게 내가 단막극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 같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현실을 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들의 고민과 삶과 사랑이 공감 가서다. 이 무더운 여름날 두 단막극이 생각난 것도 내가 울고 웃으며 봤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끼는 단막극이라 그렇다.





14기 김현지.jpg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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