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주 보통의 사랑 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18.07.2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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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에 잠들기 어려운 여름밤이다. 그래서 오늘은 목마름을 해결해줄 사막의 오아시스 혹은 춥지만 아련한 겨울 바다와 같은 영화를 소개해보려 한다. 2002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제5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국제영화평론가 협회상을 수상하고, 한공주 역을 연기한 문소리 분은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2004년 일본에서 개봉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여러 영화제에 출품되었으며, 같은 해에 한국에서도 개봉하였다. 이 두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장애를 가졌고 서로 비슷하면서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아주 보통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누가 진정 비정상인가?-<오아시스>

남자 주인공인 홍종두(설경구 분)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전과자이다. 그는 사회가 기대하는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사회부적응자로 묘사된다. 사실 그는 가정이 있는 형을 대신해서 형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를 자신이 덮어쓰고 교도소에 갔다. 그럼에도 그의 형은 종두에게 ‘어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종두를 때린다. 진정으로 사회의 규범을 어긴 자가 누구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공주(문소리 분)는 중증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이다. 오빠와 그의 부인은 공주와 함께 산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복지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그녀와 같이 살지 않고 이웃집에 그녀를 맡긴다. 이들 부부 또한 어른답지 못하다.

공주는 종두의 형이 뺑소니 사고를 낸 피해자의 가족이다. 종두가 출소하여 공주의 집을 찾아가 처음 마주한 날 이후로, 종두가 적극적으로 공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은 공주가 종종 의지하고 있던 휠체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녀의 사랑에는 알아듣기 힘든 말투, 불편한 몸짓과 같은 그 어떤 신체적인 제약도 방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다른 연인들처럼 종두에게 투덜대고 그와 다투기도 하며, 그녀만의 방식대로 감정을 노래하고 춤춘다.




반면 사실 극중에 나온 거의 모든 인물이 이 연인에게 있어 가해자이다. 즉 비정상이다. 공주를 이용해 장애인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공주를 다른 곳에 방치하는 공주의 오빠 부부, 공주를 챙겨준다는 명목으로 공주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공주가 알지 못할 것이라며 애정행각을 하는 이웃 부부,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불량해 보이는 종두와 몸이 불편한 공주에게 나가라고 하는 식당 주인, 가족 모임 자리에 공주를 데려온 종두를 나무라는 종두의 가족들. 극중에서 이들이 두 연인을 바라보는 곱지 못한 시선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과 혐오에서 기인한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누가 진정한 어른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오아시스 포스터 수정.jpg


  
2. 당신을 채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오아시스>는 사회의 규범과 편견이 두 주인공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정상과 비정상의 간사한 경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였다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두 인물의 지독한 결핍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분)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이다. ‘조제’라는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인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자유로운 인물을 동경하여 쿠미코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 같은 것이다. 조제는 이름 모를 병에 의해 다리를 쓰지 못한다. 그녀는 혼자 걷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다. 사실 그녀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몸이 불편하면 더욱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할머니 때문에 더욱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 학교를 안 다니는 조제는 할머니가 주워오는 버려진 교과서과 책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한다. 세상이 낯설고 두렵지만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길 좋아한다. 그녀는 신체적 자유가 결핍되었다.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도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다. 그는 배가 고프면 조제의 집을 찾고, 두 명의 이성 친구를 두고 성욕을 해결한다. 원하는 것은 다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츠네오는 조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츠네오는 조제의 괴팍하고 엉뚱한 성격, 귀여운 호기심, 그녀의 아픔까지 모두 궁금하다. 잠깐의 이별 후 다시 만난 조제를 만난 츠네오는 그녀를 분명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조제의 유모차를 밀어주고, 업어줄 수 있는 자신의 다리와 자유의 가치를 깨우치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낭비와 같던 츠네오의 ‘자유’가 조제를 만나 온전히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렇게 둘은, 지독한 결핍을 서로의 존재를 통해 메꾸어 나간다.
 

조제 포스터.jpg

 
그렇다면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3. 함께였던 시간을 통한 그녀들의 홀로 서기

종두와 츠네오는 따가운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숨어 지내는 공주와 조제를 집 밖으로 이끌어준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그녀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변화한다. 공주는 그녀를 실질적으로 돌보지 않으면서 구속하고 과보호하는 오빠 부부로 인해 집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도, 누구를 집으로 들이지도 못한다. 종두에 대한 관심은 그 경계를 허물고 종두가 처음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종두는 공주의 손과 발이 되어 그녀가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집안일 하는 것을 도와준다. 더 나아가 둘의 사랑은 공주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였다. 대로변, 지하철역, 식당, 노래방과 같이, 일상적이지만 그동안 공주는 가보지 못한 장소의 재미를 알게 해준다. 뒤에 말하겠지만 종두가 또 한 번 수감되면서 두 연인은 잠깐의 이별을 겪는다. 영화는 종두가 없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혼자 빗자루질을 하는 공주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조제 또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지만 하반신 장애로 인해 할머니가 유모차로 끌어주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츠네오가 그녀의 집으로 처음 밥을 얻어먹은 이후로 그는 꾸준히 그녀의 집에 드나들고, 결국 할머니 없이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다. 그는 조제가 무서워하는 호랑이와 보고 싶었던 물고기까지 함께 봐준다. 세상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호기심을 채워준다. 영화의 스토리상 둘은 결국 헤어졌지만 조제는 츠네오를 사랑한 덕에 한층 성장하였다. 조제는 더 이상 누군가 끌어줘야 하는 유모차가 아닌 전동 휠체어를 타고 복지과 사람들이 아닌 스스로 장을 본다. 혼자 요리를 하며 의자에서 펄쩍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는 결국 사랑이 그녀들을 자유롭게 하였지만, 이 두 영화의 감독들은 보는 이에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이 그녀들을 홀로 서지 못하게 가둔 것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4.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두 영화는 이들의 사랑이 다른 연인들의 사랑과는 다르게 더욱 특별하거나 숭고할 것이라는 억지스럽고 무례한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 이들은 아주 보통의 사랑과 이별을 한다. <오아시스>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두 연인 모두 서로의 예쁜 모습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확인하며, 감정이 커진다. 특히 이들 영화에서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다른 작품에서 번번이 생략되어 버리고 마는 연인 간의 육체적 사랑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두 영화에서는 모두 연인들의 섹스가 묘사되는데 특히 <오아시스>에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오아시스>에서 종두와 공주는 여느 때와 같이 데이트를 즐긴 후, 종두가 공주를 집에 데려다 준다. 여기서 공주는 종두에게 확실한 의사를 표현하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다른 보통의 연인들에게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섹스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목격한 공주의 가족, 종두의 전과 사실을 아는 경찰, 종두의 형까지 그 누구도 둘을 연인관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이들 모두 종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공주를 강간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종두의 항변은 전과자라는 이유로 묵살되며,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공주의 진심 또한 반영되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던 담당 경찰은 종두의 형제에게 ‘피해자 보세요. 저런 애를 (강간했어요)’라고 설명하고, 종두에게 ‘솔직히 성욕이 생기대?’라며 비아냥거린다. 우리 사회는 일단 비정상이라고 낙인찍은 이들에게는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계인처럼 바라본다. 혹은 이들의 사랑은 자신이 하는 사랑과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왜 내 마음대로 한껏 애틋할 수 없는가. 종두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교도소에 간다. 결국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마저도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 의해 비정상이라고 낙인찍힌다. 교도소에서 공주에게 쓴 편지를 읽는 종두의 목소리로 영화는 끝이 나는데, 다행히도 둘이 아주 이별한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와 츠네오 또한 아주 보통의 사랑을 한다. 그들의 이별이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둘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막 키워나가고 있을 때즘, 츠네오가 어렵게 구해다 준 책의 한 구절을 읽는 조제의 목소리가 복선으로 깔린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둘은 이렇게 평범하게 헤어졌다. 츠네오는 자신의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조제를 데려가 소개할 겸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가족들의 달갑지 않은 반응이 걱정된 그는 가족들을 찾아가기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 길로 둘은 발걸음을 돌려 바다로 향한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둘은 조제가 좋아하는 ‘물고기의 성’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여행에서 돌아와 츠네오가 조제의 집을 나가면서 둘은 담담하게 헤어지고, 이 여행은 이별여행이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니,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라는 츠네오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앞서 말한 <오아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 또한 이들의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들도 연인 관계에서 오는 권태와 피로, 부담감이 커지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헤어지는 것이다. 츠네오는 조제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값싼 동정이나 희생정신 따위를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츠네오가 조제를 떠났다는 것은 그가 조제를 동정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는 조제를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던 울음을 토해낸다. 조제 또한 그녀가 살던 어두운 방에서 츠네오를 만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결국 그가 떠남으로써 다시 홀로 남겨진다. 앞서 언급한 대사처럼 줄곧 혼자여서 외로운 줄 모르고 살던 그녀는, 츠네오를 만났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에서 큰 공백을 느낄 것이다. 그녀에게도 이별은 역시 쓸쓸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 영원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들은 연인관계이기 때문에 사랑이 버거워지면 떠날 수 있다. 두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사랑도 충분히 뜨겁고 애틋하며, 이별은 언젠가 다가온다.

두 영화는 이렇게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공주와 종두, 조제와 츠네오가 겪은 따가운 시선을 통해 장애인과 그들의 사랑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꼬집는다. 또한 그들이 사랑을 채색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 영화를 통해 우리가 가진 사랑의 모양이 다르더라도 결국 사랑인 것을 감사하고 축복해줄 수 있길 바란다.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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