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지닌 프레디 켐프의 리사이틀 후기

글 입력 2018.07.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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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피아노 연주회를 들으러, 회사를 쉬는 일요일 오후에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미술전시회를 보러 많이 갔었지만, 음악 공연을 들으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전시회는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가면 되지만 공연의 특성상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낯설었고 10분 지각하게 되었다. 목이 너무 말라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는데 음료는 반입금지라고 해서 10분만에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얼마나 피아노의 소리가 큰지 바깥까지도 다 울려 퍼졌고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늦은 사람들을 들어가게 해주었다. 2층의 빈 좌석에 급하게 앉아서 다음 곡을 기다렸다. 어쨌든 지각 때문에 아쉽게도 카푸스틴의 에튀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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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프레디 켐프가 정장을 입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쇼팽의 에튀드를 연달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왜 프레디 켐프가 첫 곡을 치고 나서 한참 동안 손을 풀었는지 몰랐다. 첫 번째는 연습곡이었고, 두 번째부터가 실전이기 때문인가?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손에 쥐가 내려서 풀고 있는 건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연주에 처음부터 집중하지 못했다.

“연습곡을 연습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완성되지 않은 곡들을 연달아 연주하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곡들이 완성되지 않은 에튀드들이기에 한 곡을 듣다 말다 듣다 말다 하는 느낌이었고 더욱더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중심부의 피아노와 손가락 근육을 움직이며 건반의 소리를 내는 프레디 켐프의 손가락을 보기도 하고, 예술의전당 내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도록 어떻게 공간을 설계했는지에 더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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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을 한다. 근육을 움직여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셀룰라이트를 없애기 위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 매일매일 내 한계에 부딪힌다. 다음날이면 근육통으로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근육을 아파서 더는 움직이는 게 불가능할 때까지 움직인다. 프레디 캠프는 음악을 한다. 그는 손가락 근육을 움직여서 한 공간에 소리를 채운다. 분명 근육의 움직임이라는 같은 ‘운동’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다른 행위를 하고 있다. 인간의 본연의 움직임은 그 부위가 어디이냐에 따라서, 목적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는구나.

그는 그저 손가락과 손과 기껏해야 어깨 근육 정도를 아주 짧은 거리를 움직일 뿐인데도 그 거대한 예술의전당을 가득 채울만한 멜로디를 낼 수 있다. 그의 손가락의 역동성에 감탄했다. 어떤 곡에서는 그는 한없이 축축 처지다가도 어떤 곡에서는 아주 강렬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그 속에서 관객들을 소리로 가득 차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작은 근육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대의, 한정된 영역 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한다. 나의 움직임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움직임은 나 자신에게만 한정되어 있지만, 십수 년 쌓인 셀룰라이트를 제거한다. 나 하나에만 영향을 끼치는 움직임이지만, 나의 시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다. 프레디 켐프와 나는 정말 다른 움직임의 행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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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튀드와 에튀드 사이에 잠시 쉬는 그 공백의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참았던 기침을 내뱉고 근질거리는 몸을 뒤틀어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몇 분 동안 피아노로 아무런 곡도 연주하지 않고 관객들이 내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자신의 연주라고 하던 게 떠오르기도 했다. 프레디 켐프도 미완성 에튀드와 에튀드 사이를 그렇게 채우면서 자신의 곡으로 완성하는 게 아닐까.

쇼팽의 에튀드가 연달아 끝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나도 뭣도 모르고 따라서 박수를 쳤다. 프레디 켐프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왼편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없이 박수를 쳤다. 다시 프레디 켐프가 무대 뒤편에서 나오더니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손뼉치기를 끝내지 않았고 프레디 캠프는 다시 한 번 더 나와서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왜 사람들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박수를 끝없이 치고 프레디 캠프는 인사를 이미 한번 했는데도 굳이 걸어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귀찮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인사를 계속하는 걸까? 그게 공연자와 관객, 서로 간의 예의이자 존경의 행위라는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와 추가적인 앙코르 3곡이 끝나고 나서야 혼자서 깨달았다.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하기까지는 프레디 켐프를 관찰하기 바빴다. 음악을 눈으로 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 왼손과 오른손의 빠르기와 강약의 조화를 보기에도 벅찼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로 넘어가자 드디어 귀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앞은 프레디 켐프를 보고 있는데도 그가 보이지 않고 음악이 들렸다. 저음과 고음이 조화롭게 귓속으로 들어오고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버릴 때쯤 내 뒤에 어떤 여자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곡을 마지막으로 끝낼 때 예술적으로 왼손으로 나선을 그리던 그 프레디 켐프의 손이 아직도 선명하다.

에튀드가 끝나고 프레디 캠프는 1부처럼 인사를 반복했다. 사람들의 끝없는 박수갈채로 쇼팽의 왈츠, 폴로네이즈, 베토벤 비창까지를 그렇게 왔다 갔다 3번의 앙코르를 들려주었다. ‘공연 자세가 좋다’라는 대중적인 평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관객과 프레디 캠프는 서로에게 예의를 잘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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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공연을 본 게 처음이라 갔다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앙코르를 세 번이나 했다고, 무대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다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원래 공연자는 그 정도까지 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가 설명을 이상하게 한 걸까? 그의 음악이 어땠는지보다 프레디 켐프라는 한 사람의 움직임에 반했던 하루였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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