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책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리뷰
글 입력 2018.07.2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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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다!

가끔 터무니 없는 상상에 빠진다. 생각할 자유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골치아플 일은 없지 않을까 하고. 물론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쏟아지는 정보들 사이에서 생각하지 않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면 삶의 주체인 '나'는 사라지고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생물로서의 나'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귀가 얇아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는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책은 총 다섯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Part 1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Part 2 합리적으로 의심하기

Part 3 도전적인 질문들

Part 4 관찰은 혁신을 낳는다

Part 5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법


책 표지만 보고 견고한 논리를 쌓아가는 방법론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책은 특정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흑백논리에 지친 회색인간을 위한 지침서'라는 제목의 머릿말을 시작으로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가지 논의거리를 보여준다. 발암물질에서 항암효과가 있는 첨가물로 사카린에 대한 인식이 변해온 과정, 농업생산량을 늘릴 목적으로 마오쩌둥이 시행한 '참새척결운동'이 오히려 흉작을 불러온 역사,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진 살충제 'DDT'가 환경 파괴의 주범인 사실이 드러나며 사용이 중단되자 모기가 일으키는 병으로 피해를 입는 중인 아프리카 국가의 사례 등이 그 예다.

파트1에서 여러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며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었다면 파트2,3,4는 어떤 자세로 논제를 다뤄야 할지를 보여준다. 책이 제시하는 내용은 합리적으로 의심할 것, 도전적인 질문을 던질 것, 세심하게 관찰할 것 이렇게 세 가지다. 파트1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각 장도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일화를 풍부하게 인용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파트는 갈대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즉, 오늘날에는 갈대처럼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고, 오늘날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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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부까지는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책은 분명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했을까?'라는 제목을 내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 같은데, 막상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가지 논제를 바라보자 읽을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모든 관점은 저마다의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는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답보다 더 많은 물음표가 뒤따랐다. 게다가 책의 시작과 끝에서 내세우는 '회색인간'과 '갈대'는 언뜻 보기에 전혀 중심이 없는 사람을 빗대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이쪽도, 저쪽도 옳으니 뚜렷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물론 책을 읽으며 들었던 혼란은 마지막 장을 덮으며 풀렸다. '그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하는 방법' 과 '갈대같이 사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 아니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고, 확신이 부족한 이유는 생각의 근거가 빈약하고, 그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의 끝에서 강조한 갈대의 이야기는 단순히 줏대 없는 사람을 빗대는 용도가 아니라 제목에 등장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사고하는 방식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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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까지 갈대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직은 한가지 주장을 고수하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쪽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다. 과거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지나왔다지만, 가끔은 정말로 그런가 반문하게 된다. 한가지 노선을 정해 놓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틀린 것'취급하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다. 알면 알수록 세상은 복잡하기 때문에 생각하기가 버거운 사람들이 더욱 더 한가지 노선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옳다고 믿는 생각이나 집단을 하나 정해 놓고 그 안에 자신을 안전하게 넣어 두는 것이다. 그러나 자의라고 생각했던 머무름은 언제든 감금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 생각이 굳어버려 다른 사람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본인만이 옳다고 믿는 '갇힌' 사람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워야 할 사람은 파트 4 '관찰은 혁신을 낳는다'에 등장하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다. 그는 20세기 초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중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공산주의자가 된다. 당시의 많은 공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사회체제를 지지하며 소련을 이상사회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기대를 품고 방문해 실제로 본 소련은 노동자에게 너무나 열악한 곳이었다. 실망한 지드는 소련의 실상을 <소련에서 돌아오다>라는 제목의 글로 가감없이 폭로하지만, 그 탓에 다른 공산주의자들에게 변절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지드는 굴하지 않았다. 그가 소련방문기에서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사물을 보는 데 중요한 것은, 그 사물이 이러했으면 하고 원하는대로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다."

 
소련을 다녀온 뒤 지드의 행보와 그로 인해 그가 동료들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떠올려 보면 '나의 생각'을 정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굳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다만 그 방법이 어떤 질문에 멋들어지게 대답하고 싶은 지적 허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책을 읽고 나니 알겠다.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나아갈 때 진정한 의미의 '자신만의 생각'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용기도 함께 말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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