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로 떨어져있는, 또 연결되어 있는 방들의 이야기 [공연]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이방연애”
글 입력 2018.07.3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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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한여름날의 초저녁, 설렘을 안고 찾아 간 달빛극장에서 연극 ‘이방연애’를 보고 왔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 나는 왠지 조금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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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다

 
처음에 내가 이 연극이 기대됐던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보면 결국 ‘그들의 삶은 나와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극 ‘이방연애’를 보는 내내 이런 나의 호기심 역시 편견에 불과했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연극은 그걸 노린 듯했다.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의 일상과 연애는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똑같았다. 단지 하나의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만이 다를 뿐이었다.

어린 시절 드라마를 보며 어떤 한 인물에 끌림을 느끼고,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고백을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발버둥 치는 그 모든 모습이 그냥 나였다. 특히 파리바게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피닝 강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맨날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랑 정말 똑같아서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장에라도 무대로 뛰어들어가 나도 함께 수다 떨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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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연출

 
가상의 설정, 인물, 대사로 이루어진 연극의 형식을 예상했지만, 그것부터 빗나갔다. 이 연극의 내용은 ‘연극 이방연애’를 준비하기 위해 모인 세 명의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 독특하지 않나? ‘당신은 지금 연극을 보고 있지만 이건 연극이 아니다’라는 걸 명확히 컨셉으로 잡고 출발한 것이 정말 좋았다. 이 연극은 세 배우의 진짜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는 각본이 있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리얼했다.

그럼 이 연극이 자기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는 토크콘서트 같은 거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세연 배우의 노래, 자기 연애 프레젠테이션, 다른 퀴어 여성들이 보낸 편지들, 관객들이 그린 자신의 방과 연애 그리고 마지막 독백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장치들 덕분에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감정이 점점 쌓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연극을 본다면 아마 이러한 연출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나는 특히 연극을 자주 보지 않았던 터라 다채로우면서도 주제전달이 명확한 이런 연출이 너무 신기해서 푹 빠져들어 보았던 것 같다.

 

방에서 시작해 방으로 끝나다


그리고 이 연극이 ‘우리가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방’을 하나의 주인공으로 잡은 것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방에 들어가 있다. 그곳에서 연애하며 설레 하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기도, 상처를 받기도 하며 우리는 성장한다. 이렇듯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방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연극은 시작된다.

정확하진 않지만 ‘방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아름답게도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엔 편견들도 함께 있겠지요’라는 대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 때면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고,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를 떠올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사실만으로도 문지방을 넘어 세상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내가 어딘가에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소외감과 고독을 느낀다. 이건 어쩌면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절대적 고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도 결국 인간이다. 인간으로 인한 고독과 소외감마저 인간을 통해 해소된다는 아름다운 진리가 신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이방연애’라는 연극도 처음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세상에 나온 연극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일차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결국 우리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방안에서 혼자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나와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지금 우리가 웃고 박수 치는 것처럼 감정을 나누자고 연극은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연극이 꼭 퀴어들의 이야기여서 의미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이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연극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극이 끝나자마자 든 생각은 “내가 왜 다른 연극들을 안 봤을까”하는 후회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올린 모든 연극을 꼭 보고 싶다. 앞으로의 페미니즘 연극의 발걸음을 가슴 깊이 응원하며 리뷰를 끝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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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배우님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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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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