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이야기] 읽는 사람

문학을 읽는 일
글 입력 2018.08.0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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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

읽는 사람


하루 동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문장으로 나열해 본다면, 우리는 과연 몇가지 동사의 주어가 될 수 있을까. 먹다, 보다, 자다... 당장 떠오르는 일상적인 동사들 사이에서 '읽다'라는 동사를 생각해 본다. 매일 무언가를 읽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험생이나 독서광이 아니여도 된다. 아침에 눈을 떠서 휴대폰 액정을 보는 순간부터 다시 잠이 드는 밤까지 생활은 활자로 가득하다. 설사 글을 모른다고 해도 타인의 표정이나 생각 역시 '읽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를 기록하는 문장은 앞서 얘기한 일상적인 동사 못지않게 수많은 '읽다'로 가득찰 것이다.

'읽다'라는 동사가 '글자'나 '책' 뿐만이 아니라 '표정'이나 '실', '기분' 등 다양한 단어와 함께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읽는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어떤 기호를 보고 그 의미를 해석, 판단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마치 음식물을 씹어 그 안의 영양소를 흡수하는 과정인 '소화'와 비슷하다. 무언가를 소화함으로써 음식물이 피와 살로 몸의 일부가 되듯, 읽음으로써 얻은 새로운 정보는 뇌에 저장된다. 그런 맥락에서 무언가를 읽는다는 건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라면 당장 생활이나 현실에 적용 가능한 정보와는 거리가 먼 문학은, 왜 읽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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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Novel' by Winslow Homer, 1877


그런데 소설같은 건 왜 읽는 거예요?

언젠가 책을 꽤 많이 읽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그는 비문학 도서는 양질의 정보를 전해 주기에 읽지만 문학은 도무지 왜 읽는 건지 모르겠다며 궁금해했다. 독서의 8할이 소설인 나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름대로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질문이 오래 남았다. 궁금해졌다. 나를 포함해 문학을 읽는 사람들은 왜 문학을 읽을까. 진지하게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문학을 공부하거나 문학이 업이 아닌데도 문학을 읽는 주변 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제 상상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L: 이야기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제가 해 본 경험은 한정적이라 상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학의 도움을 받는 거 같아요. 작가의 새로운 표현이나 설정을 접하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돼요.


L은 왜 문학을 읽느냐는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며 곰곰이 생각해보던 끝에 나온 대답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는 이유로 늘 언급되곤 하는 '간접 경험'은 너무 정직한 모범답안처럼 들리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인도에 고립되고, 죽음 직전까지 가보는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절절한 사랑에 빠지지 않고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때는 종종 시 한편을 읽은 다음이다. 문학은 개인의 세계를 확장한다.



"재미있잖아요"



H: 취미 중 하나에요. 이미지로 보는 것보다 글로 읽는 게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어요. 특히 판타지 같은 장르소설을 좋아해요.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도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면서부터였어요. 처음 읽은 두꺼운 책이였죠.


'재미'라고, H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H처럼 판타지 소설을 즐기지는 않지만, 일단 소설이라면 재미있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밤을 꼬박 새워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그 재미를 알 것이다.



"영화로는 담아내지 못 하는 게 있죠"



K: 영화를 보고 나서도 소설 원작이 있으면 꼭 원작을 찾아 보는 편이에요.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다 표현되지 못하거나 생략되곤 하는데 소설에는 자세히 나오거든요. 둘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의무로 읽는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책을 좋아한다 그러면 '당연히 00은 읽었겠지?'와 같은 기대에 찬 눈빛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서요.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면 나는 책과 영화를 둘 다 보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K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책을 먼저 본 경우에는 내 상상이 깨지는 게 싫고, 영화를 먼저 본 경우에는 책을 읽을 때 영화 이미지에 방해받는 게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색다른 접근이었다. 더불어 끝에 한 이야기는 매우 공감이 되었다. 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시간을 내어 공부하듯 읽는 이미지가 있는 건지, '문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있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 이미지는 내가 문학을 읽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학을 읽는 일에 지적 허영심이 관여하고 있음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미지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읽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고전을 당연히 읽었으리라는 기대를 받으면 움츠러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뭐든 균형 맞추기가 어렵다.





왜 문학을 읽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된 부분은 '상상'과 '재미'에 있었다. 이미지가 아닌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100명의 사람이 같은 문장을 읽고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문장을 상상할 수 있고, 여기서 오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문학만이 갖고 있는 매력은 사람들이 문학을 읽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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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역사채널 e '낭독의 달인 전기수' 편 캡쳐


그 욕망은 특정 문학이 금지될 때 더욱 타올랐다. 17,18세기 무렵 소설은 허황된 이야기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금기시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기 소설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소설은 너무나 매혹적인 유희거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설을 암암리에 유통했고, 시장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소설을 읽어주는 직업인 '전기수'가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에도 문학은 다른 도서에 비해서 권장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학생들의 권장도서 목록 속 문학은 고전이 대부분이다. 학생이 자발적으로 읽는 문학은 '흥미 위주'라며 손쉽게 폄하된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도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들의 읽고자 하는 욕망은 문학이 계속지속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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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큰 이유중 하나였던 '재미'는 오늘날 문학보다 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다른 미디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제 책은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변한다. 읽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어쩌면 문학을 읽는 것 역시 구시대적인 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것' 대신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건 앞으로의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문학의 범위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에 발 붙이고 사는 나는 아직 문학의 본질이 읽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문학을 읽을 때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혀 끝에 달라붙는 특유의 감각은 중독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나열된 검은 글자들이지만 읽는 사람마다 타인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어떤 영화보다도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생략하자면 한 문장으로도 넘어갈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만이 품을 수 있는 무한함과 유연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문학 읽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읽다'라는 동사로 이루어진 문장 안에 '글'이나 '책', '표정', '감정' 같은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이 있기를 지금의 나는 바란다.





표지에 사용된 그림
'Young Girl Reading' by Jean-Honoré Fragonard,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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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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