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리둥절. 이게 페미니즘이라고? [공연]

페미니즘아, 너의 진가를 몰라봐 미안하다.
글 입력 2018.08.0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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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직후 나의 느낌은 제목 그대로였다. 페리둥절? 이게 왜 페미니즘이지?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페미니즘에는 무조건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었다. 낮은 위치에 떨어져 있는 여성의 인권을 남성의 것과 동등하게 올려놓는 것. 내가 생각했을 때는 그게 페미니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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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연극은 ‘여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한국사회 속 경제적/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택난, 녹록치 못한 노동환경 등 연극에서 오간 사회적 문제들과 그로 인한 개인의 힘듦은 비단 여성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겪을 법한 문제였다. 하여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페미니즘이라고?’
 
Help me,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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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 feminism으로 검색했다. 그리고 위키백과가 말하길, 저게 페미니즘이란다. 전부 다 여성, 여성, 여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찰나, 관련 영화 카테고리 속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지영 감독의 < 카트 >. 부당해고를 당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기업에 맞서 인간다운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 영화이다. 예전에 한 번 본적이 있기에 전반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이 역시 내가 생각해온 페미니즘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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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볼 때 즈음에는 의문이 해결되었다. 아, 페미니즘이라는 게 꼭 성별의 문제가 아니구나. ‘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그게 페미니즘이구나. 생각해보니 이 연극, <이방연애>도 키워드가 여성이 아닌 ‘성적 소수자’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맞춰져있었다. 그러니 결국 이 연극은 러닝 타임 내내 ‘성적 소수자’라는, 혹은 ‘돈 없고 빽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약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방면에서 사회적 약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것. <이방연애>는 그런 공연이었다.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한국은 1%의 기득권을 위해 나머지 99%가 만들어진 사회는 아닐까? 1%는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 땅콩을 던져 비행기를 돌려 세울 수도 있고, 똑똑한 여승무원들을 기쁨조처럼 부릴 수도 있으며, 세금을 빼돌리기 위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금액을 해외에 숨길 수도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고, 사람을 짐승처럼 패놓고도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영장을 기각시킬 수 있으며, 언론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는? 그 1%가 짜놓은 판 안에서 자기들이 갇혀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열심히 노오-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허탈하다. 그 1%는 복닥복닥한 99%의 세상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여러분도 열심히 노력하면
정직원 될 수 있어요!”


5년 동안 벌점 1점 없이 성실히 근무한 주인공 선희. 하지만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윗사람들의 꼼수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그것도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는다. 계약사항을 위반한 것도 윗사람들, 파업 중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도 윗사람들, 폭력을 휘두른 것도 윗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윗사람들 편이다. 죄라고는 그저 말 잘 들으며 열심히 노오-력 했을 뿐인 99%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방법은 목숨을 걸고 가정을 등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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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약자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사회적 약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조차 못 받고, 당연히 하지 않아도 될 일조차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까 점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관에서 알바를 한다. 영화관 알바 복지가 좋다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 본인은 영화 무제한 무료에 매 달 다른 사람에게 양도가 가능한 6장의 영화초대권이 나온다. 매점 50% DC의 혜택까지 있으니 참으로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내가 했던 모든 알바 중에서 복지로만 따지면 이곳이 최고이지 않나 싶다. 그런데...
 

“여기서 파는 거 싹 다 내가 만들었는데
30%밖에 DC 안 해준다는 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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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연애> 극 중 프렌차이즈 빵집에서 알바를 한다는 배우님의 다음과 같은 대사에 순간 움찔했다. 물론 나는 30%가 아닌 50%의 할인을 누리니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이 혜택이, 기업이 나에게 하사하는 ‘복지’라고만 생각했지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따지고 보면 기자재를 마련한 기업이 반, 직접 만든 우리가 반 가져가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생전 이런 할인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우리 아르바이트생들은 역시 대기업 복지가 좋긴 좋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말이다. -를 찍는 조직이 너무 많기 때문에 0을 행할 뿐인 조직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세태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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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전에 남이 알아서 내 권리를 챙겨주는 세상이면 참 좋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성숙함까지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 하여 99%가 1%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온전하게 챙기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깨어있어야 한다. <카트>의 노조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조삼모사 식의 조련에 함몰되지 않도록 99%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불편한 마음가짐. 내가 생각했을 때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배척하며 양 극단으로 물러나 서로를 향해 날선 줄다리기를 벌일 만한 소재, 딱 그 정도로 남기엔 페미니즘은 너무나 범인류적인 개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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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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