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신사와 선비. 시대의 정신에 대하여

오늘날의 우리도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18.08.0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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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이 곧 힘이 되어버린 요즘은 무엇이 옳고 명예로운 일인지에 대한 기준도 불분명하고 대중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 도 넘은 일이어도 무분별하게 행해진다.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돈을 위해 못할 일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들에 중독되고 물들어간다. 우리에게 윤리라는 게 살아있는가?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내세워 사회의 여러 적폐들이랄까, 불공정한 관습 같은 것들을 타파하려 하지만 불편함은 언제나 다른 불편함과 만나 서로가 서로를 욕보이고 폄하하는 일로 번지기만 하고 많은 유의미한 시도들이 무의미한 일시적 반향처럼 퇴색된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피부로 느끼지만, 정작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살고 있다.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자세는 뻔뻔한 고자세로, 정직한 마음은 눈치없는 태도로, 약속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자세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받아들여지고는 하는 요즘 사회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신사와 선비>에서는 중세와 근대를 지배했던 유럽의 기사도와 신사도 정신, 그리고 조선의 선비 정신을 풍부한 예시와 함께 제시한다. 특히 조선 선비들의 태도와 정신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면서 저자는 우리 민족에게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올곧음과 본받을만한 정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우리에게 제시할 뿐, 우리가 과거의 찬란하고도 슬픈 역사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할 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선택에 맡기며 말을 아낀다.
 


유럽의 기사도와 신사도


책에서는 기사에 대해 먼저 다룬다. 원래 '기사도'라는 것이 신사도의 원형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사들은 사실상 폭도들이었지만, 로마 교황청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들에게 기독교 교리와 지배세력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고, 기사들은 이에 부응해 교황, 왕, 영주 등에게 복종했다. 그렇다고 해서 난폭한 기사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극소수의 모범적인 기사가 있으면 그들이 명예로운 자로서 추앙받았다.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한(그러나 실상은 여러 세속적인 이유에서도 자행되었던)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면서 교황청의 위신이 몰락하고 동시에 기사들의 입지 또한 무너졌지만, 상업적으로 많은 교류가 생기면서 유럽은 문명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13세기에서 정점을 맞이했던 기사는 15~16세기에 장원제도와 함께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근대의 급격한 사회 변화는 명예를 중시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정함을 큰 가치로 삼는 등의 윤리를 다시 요청했고, 신사도는 변용된 기사도로써 고개를 들게 되었다.



기사도 정신과 돈키호테


한창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중세의 기사도 정신은 기사 문학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잘 아는 아서왕의 전설(영국)부터, 니벨룽의 노래(독일), 엘시드의 노래(스페인) 등 걸작이 탄생했다. 기사 문학은 대부분 고전 신화에 기독교 정신과 기사도 정신을 덧입혀 각색한 것들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기사도 문학은 기사와 함께 쇠퇴하는 것 같았으나 17세기 말 스페인의 <돈키호테>가 기사문학을 계승했다. 돈키호테는 묻혀있던 중세의 기사도 정신을 되살리면서도, 정신 나간 듯 하나 뚜렷한 이상을 추구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로 중세 계급제도와 종교적 억압을 비판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근대사회의 요청으로 기사도 정신을 상기시켜 신사도를 유행시키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돈키호테는 근대문학의 이정표이며, 기사문학의 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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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산란한 정신상태를 잘 나타내는 그림


다른 한편 독일의 기사문학 <니벨룽의 노래>는 1874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해 <니벨룽의 반지>로 재탄생되었는데, 이 오페라는 독일 국민들의 애국심, 민족주의 정신을 자극했고 후에 히틀러의 귀감이 되었다. 기사도 정신은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부시도 정신

  
일본에도 기사도와 비교할 만한 게 있었다. 그것은 '부시도 정신'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무라이 정신을 일컫는다. 사무라이에게는 유럽의 기사도에 비해 윤리 강령이랄 것이 미미했으나 17세기의 '무가제법도'를 통해 어느정도 흡사한 규칙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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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학자 니토베 이나조와 그가 쓴
< BUSHIDO, THE SOUL OF JAPAN >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근대 식민학자인 니토베 이나조의 책이 서양인에게 미화된 사무라이 정신을 전파했고 이 때문에 사무라이를 비롯한 일본의 전통이 호의적으로 평가되었다. 일본의 경우 이 외에도 일찌감치 그들의 문화가 수출이 많이 되어 서구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니토베 이나조는 식민학자답게 일본의 침략행위와 군국주의를 국가적으로 변호하는 데에 앞장 선 인물이라 우리로서는 좋게 볼 수 없지만, 그의 노력 때문에 사무라이가 그 본질에 비해 긍정적인 포장이 많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조선의 선비 정신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결국 조선의 선비 정신에 대한 고찰과 그를 통해 선비의 나라였던 우리의 옛 역사를 상기해보는 것이다. 유럽의 기사들과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모두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고 명령에 복종하며 무예를 숭상하는 자들이었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칼이 아닌 붓을 들고 논쟁하며 비록 왕일지라도 반대의사를 표하고, 사람보단 덕목을 따르는 데에 집중했다. 기사로부터 토지를 소유한 젠트리, 귀족 등을 비롯한 상류층으로부터 계급과 관련없는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기사도, 내지는 신사도 정신은 시대상에 맞게 변주되어 왔다.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과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계몽 이후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로 발현됐다.

조선의 선비들은 똑같이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봤어도, 근대 유럽처럼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권 등을 옹호하는 방향이 아닌 개인의 절제, 근검정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성리학적 정신에 입각해 실용성보다는 도덕윤리의 잣대를 강조했다. 그들의 엄격한 보수주의적 정신이 너무 딱딱해 부러지고 만 것인지 근대 조선의 혼란한 시대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선비정신이 살아남지 못했음은 상황에 맞게 변천되어온 신사도와 대비된다.

선비들은 '수기치인'을 그들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윤리를 먼저 회복하고 주변 사물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도덕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런 이념은 기사나 사무라이가 의지했던 힘의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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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송시열의 작품으로 알려진 <소쇄원도>. 1755
소쇄원은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는 교류의 장이었다


칼 대신 붓을 든 선비들이 이토록 고상한 관념적 논의에 몰두했던 것은 그들이 14세기부터 일찍이 불교를 통해 형이상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성리학이 그들의 주류가 되고 난 후에도 선비들은 꾸준히 형이상학을 논하고, 이상적인 인간과 국가, 세계를 논했다. 그들은 '천일합일'을 강조하며 하늘의 뜻에 맞게 살고자 했고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책에서 그런 그들의 고상함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등장하는데, 지금으로선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태도로 보이기도 한다. 선비들은 정치일선에서의 이해관계로 인해 초야로 물러나게 되어도 수양과 학문에의 정진을 놓치지 않았고,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제자 양성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 최한기, 정약용과 같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관념적 성리학에서 벗어나고자 한 선비들이 나타났을 땐 이미 때가 너무 늦고 말았다.

*

선비라는 단어는 근래의 문화에서 딱히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별 문제도 없는 것들에 혼자 고상한 척 하며 진지하게 트집잡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곤 하며, '꼰대'라는 말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완벽한 문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겠지만,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땐 선비의 나라였던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사람들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선적인 선비들도 있었겠지만, 고상하고, 청렴하고, 내면의 도덕에 집중하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들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모범적 선비의 모습이 터무니없어보이지만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가치 기준이 다르고, 사람들은 그 맥락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일찍이 정립하고 그것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를 망치는 자들이 존재해왔지만 개개인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우리 세대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외부의 압력에도 정신만큼은 무너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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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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