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방에서 연애하고 싶습니다 : 연극 이방연애

연극 < 이방연애 > 리뷰
글 입력 2018.08.0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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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연애_포스터.jpg


이 방에서 연애하고 싶은
이방인의 이야기


세 명의 퀴어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 “이방연애”는 제 1회 페미니즘 연극제의 참가작이자 나로서는 두 번째로 만난 페미니즘 연극이었다. 이번 연극제를 주최한 페미시어터가 추구하는 바에 공감하는 면이 많고,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열린 페미니즘 연극제인 만큼 반가운 마음과 기대가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시지가 짙은 예술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페미니즘 구호가 너무 짙어 작품성은 비교적 약해지지 않았을까, 예술성을 지키면서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섰다. 걱정 반 기대 반인 마음을 안고 지난 26일 대학로 달빛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내 우려와는 달리, “이방연애”는 훌륭한 페미니즘 연극이자 또한 훌륭한 연극이었다.



편안함이 담긴 실험


이방연애는 상당히 실험적인 연극이었다. 형식면에서 그랬다. 우선 이방연애는 스토리텔링이나 서사가 있는 연극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극이다. 세 명의 배우가 둘러앉아 각자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관객 앞에서 자신이 살던 방들에 대한 3분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기도 한다. 때로는 방백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정체성을 각성했던 때의 기억을 풀어내기도 하고, 대사를 이용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외치는가 하면 노래로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그리기도 한다. 한편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도 있어서, 단지 배우만이 아니라 관객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는 연극이었다. 이 연극의 다채로운 시도와 실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극의 재미를 돋우는 요소이자, 또한 이것이 연기가 아니라 배우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라고 느껴지게끔 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이방연애의 실험은 파격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편안한 연극이었다. 극의 시작을 여는 무반주 노래부터가 그랬다. 잔잔하고 편안하면서도 깊이 빠져들게 되는 목소리였다. 이어지는 배우들의 ‘수다’ 역시 연극보다는 소소한 토크콘서트에 가까웠다. 그저 친구 수다 들어주듯 편한 마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어둡거나 무겁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시종일관 유머와 재치 그리고 참신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편안해지고, 같이 웃고 같이 안타까워하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야기의 내용에 있었다.



너의, 그리고 나의 이야기


이방연애는 내 예상과 달리 단지 퀴어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 연극이었다. 주거문제, 예술인의 생계 문제, 사회 인식 문제 등 오늘날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로 연극은 채워졌다. 예술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이 예술과 생계를 모두 이어나가기 위해 헬스장 코치와 빵집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며 고생하는 이야기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이상하게 크게 마음이 동했다. 예술을 위해 생계유지를 하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비중이 생계유지활동으로 더 크게 기울어 주객전도가 되기 십상이라는 말이 안타깝게 와 닿았다.

무엇보다도 집중하며 들었던 점은 주거 문제. 이 연극에서 꽤 비중 있게 다루어졌던 주제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이 사회에서 자신의 단칸방 하나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십 년 동안 애인 집에 얹혀 살며 애인이 바뀔 때마다 이사했다는 사람, 500에 15인 반지하에서 500에 20인 옥탑으로 와서 조금 살만해졌다는 사람, 친구들과 하우스셰어를 하는 사람 등 세 사람의 다양한 주거 형태가 딱 오늘날 청년 세대의 주거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 하나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견디며 사는 모든 이들이 이 도시의 이방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하여 내 방을 구하게 될 입장인 만큼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연히 퀴어 이야기 또한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다만 그들은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고, 그저 차분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초등학교 때 여자 아이를 좋아하면서 자기는 크면 콧수염이 멋진 남자가 될 줄 알았다며 유쾌하게 이야기 하던 분. 나도 함께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퀴어의 자기정체화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상상하고 떠올려보게 되었다. 또한 여자 친구와 사실혼 관계를 맺었으나 부모님은 물론이고 직장과 국가 그 누구도 혼인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애인이 아닌 친구나 사촌이라고 속여야 했다는 이야기에서는 퀴어인 내 친구들의 고민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도 같았다. 세 배우가 재치있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처와 눈물이 담겨있었다.


자, 세상이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해봐요.
따로 또 같이 사람들은
어떤 방에 들어가 있겠죠.
근데 저는요, 방이 아니라 방과 방 사이,
문지방 같은데 누워 있는 기분이었어요. 줄곧

- 연극 “이방연애” 대사 中


퀴어(queer)는 본디 이상한, 괴상한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만난 퀴어들은 별나지도 과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 잘하고 유쾌한 사람, 재치 있고 재미있는 배우, 노래를 잘 쓰고 잘 부르는 예술가. 그저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곧 우리 모두였다. 세상이 하나의 집이라면, 그들은 방과 방 사이 문지방에 걸쳐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했다. 크고 작은 차별과 억압, 주거 위기와 생계 위기 혹은 정체성 위기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모든 이방인을 대변했다. 더 이상 문지방이 아닌 방 안에서, 편안하고 안정된 이 방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이방인의 소망. 그래서 이 연극의 이름은 “이방연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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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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