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제껏 알고 있던 샤갈은 잊어라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리뷰
글 입력 2018.08.0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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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햇살이 뜨거운 한낮의 거리를 걷다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들어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아주 오랜만의 전시회 관람이라 표를 찾고 입장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전반적인 전시 분위기가 차분하고 조용하게 풍족한 느낌이라 혼자 조용히 둘러보기에 적당했다. 가이드 온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휴대폰에서도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 파일을 구매해 사용해 보았다. 오디오 가이드를 굳이 대여하지 않아도 개인 휴대폰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이용할 의향은 아주 충분하다!

 
포스터.jpg
 
 

자화상, 自畵像



'샤갈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자화상 속의 샤갈은 한 명의 화가이고, 고상한 개인이며, 확신에 찬 젊은 지성인이다.'


샤갈이 직접 그린 자화상에는 그의 자아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그가 그린 얼굴들을 보면서 평소에 샤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점차 사라졌다. 완벽하게 하나로 딱 집어서 말 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그림들이 많았다. 색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의외로 흑백 작품도 많아서 내심 놀랐다. '샤갈' 하면 색채를 다양하고 화려하게 사용한 그림들만 생각이 났는데, 역시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샤갈의 흑백 그림들은 무채색임에도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그림을 잘 아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리는 대상을 보는 샤갈의 시선 속에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그의 자아의식이 작품 곳곳에 어떤 형태로 녹아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두 연인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은 그의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아내 벨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림 속에 정말로 자주 등장했다!

아래의 그림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이 자화상을 통해 샤갈의 머릿속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가족'과 '고향'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뿌리였다. 하나의 섹션을 정리해주는 완전한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눈과 그림을 계속 보다 보니 나중에는 곱슬머리로 표현되는 그의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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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gall, His Life


‘캔버스에 유화’는 질릴 정도로 자주 보았는데, 드라이포인트라는 기법으로 이렇게 많은 작품을 만든 경우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았다. 샤갈의 자서전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의 자서전 덕분에 샤갈을 '저 멀리 다른 세상의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 마치 옆집에 사는 화가 아저씨처럼 더 구체적이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삶이 지극히 평범해 보여도 조금씩 꾸준히 글로 남기다 보면 나중에 중요하게 쓰이는 기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의 인생'섹션의 벽에 걸린 작품들을 통해 그에게 있어 고향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 추억을 그림으로 남기는 샤갈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기억에 남는 그림은 '할아버지 댁(no. 12)'. 샤갈의 할아버지가 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귀여운 그림이었다. 샤갈이 의외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보통 예술가 하면 어딘가 이상하고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아마 고흐같이 강렬하게 살다 간 사람들만 생각해서 그랬었나 보다. ‘샹봉 쉬르락의 교회’는 대충 툭툭 칠한 것 같은데 인물의 이목구비가 다 살아있는 놀라운 그림이었다. 심지어 하단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작은 닭도 있어서 발견했을 때 혼자 즐거워했다.


'생각 속에서 혹은 영혼 속에서 나는
나의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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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술가들이 하는 놀라운 발상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될 때가 있다. ‘추락하는 천사’라는 그림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인 마음의 짐이 있다는 것을 머릿속의 집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을 듣고 정말 놀랐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화가는 이렇게 생각과 표현이 독특하고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다. 붉은색으로 표현된 천사와 토라를 들고 도망치는 유대인. 천사의 추락 시점은 언제일까 생각해보았다. 유대인이 도망치기 전에 이미 추락하고 있었을까? 도망치기 시작한 다음에 추락한 것일까? 짧게 보고 지나가야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샤갈은 한 가지 그림에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


'나의 인생'을 거쳐 '연인들'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초상화'와 '나의 인생' 속의 작품들이 샤갈 개인의 인생 전반, 그의 고향, 그의 자의식에 대한 것이었다면 '연인들'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사용하는 색채도 다르고, 그림의 느낌도 이전 섹션과는 아주 달랐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그린 샤갈의 작품 대부분은 그들의 더없이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는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샤갈’의 이미지는 ‘연인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꽃들에 둘러싸인 연인들, 연인들과 동물들, 거꾸로 서 있거나, 머리만 떠다니는 모습들, 그리고 산책하는 연인들’의 모티프가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꽃, 연인, 마을은 대개 함께 등장한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연인들(1937).jpg
 

크기와 색감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했던 작품은 '연인들(1937)'. 잘못 칠하면 엄청 촌스러워질 가능성이 농후한(!) 보색인데 고급스럽고 신비로웠다. 괜히 샤갈을 위대한 화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바짝 다가앉은 사랑스러운 연인을 그리는 와중에도 그림 하단의 꺾인 꽃을 통해 인생무상을 드러내고 있는 샤갈의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였다. 가운데 함께 앉아있는 연인들은 포근하기도 하고,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기도 했다. 또다른 작품인 '꿈'에서는 연인과 함께 앞선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보아왔듯이 고향에 대한 갈망을 그려냈다. 샤갈의 그림에서 '염소'를 뺀 그림은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염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았다. 파스텔로 제작한 작품들은 직물로 짠 것 같은 느낌도 나서 신기했다. 색들이 뭉개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섞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그의 예술과 삶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이 사랑이었다는 샤갈의 말처럼, '연인들' 속의 작품들은 좀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자랑했다. 다만, 국립 이스라엘 미술관 컬렉션에 있는 그림들에 한정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샤갈의 발자취를 좇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작품이 원래 있던 장소를 직접 방문해 감상해 보고 싶다.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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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섹션을 보고 매우 놀랐다. 기독교와 유대교를 연결한 점이 매우 독특하고 신기했다. 쉽게 시도하기 힘든 분야이고, 예수의 그림에 성직자의 의복을 입힌 발상에 또 한 번 놀랐다. '샤갈이 성서 삽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고!' 라고 외치며, 모든 것을 새로 배우는 아이의 마음으로 감상했다. 학교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화가들과 작품들을 다루려다 보니 작품 하나하나와 화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깊게 배울 시간이 없었다.

샤갈이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제작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샤갈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내가 보고 느낀 샤갈은 많이 공부하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열려있던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으며,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주제의식과 소명의식을 아주 뚜렷하게 가지고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던 화가였다.

회화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사실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다. 12개의 창문들은 각각 야곱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그의 아들 12명과 그의 후손들로 구성된 12지파를 상징한다. 지파를 묘사하기 위해, 샤갈은 수많은 동물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을 배열했다. 천년 전의 묘사법에서부터 러시아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들까지 다양한 재료들을 포함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명히 스테인드글라스인데 생명력, 생동감이 있어 색달랐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항상 성서 인물들이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곧게 서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샤갈은 이번에도 내 생각을 부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Ilustrated by Chagall


이번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은 구역별로 그림의 느낌과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자 강점이었다. 비슷비슷한 작품들만 있었다면 금방 지루해졌을 텐데, 관람객에게 주제별로 그의 그림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던 주제의식을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어서 많이 배우고 많이 남았던 전시였다.

샤갈이 삽화 작업을 했다는 것도 스테인드글라스에 이어 2차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림이 아기자기 귀여워서 삽화로 잘 맞았고, 표정이나 동작이 지금 책에 삽화로 사용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인물의 성격을 삽화에 그대로 반영하고, 글의 내용 중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삽화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화가로서의 능력이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과슈', '흑백동판화', '에칭'같은 단어들은 낯설지만 친숙했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열심히 외우기만 했지 실제로 에칭이나 과슈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전시를 통해 전혀 관심 없던 판화라는 분야에 또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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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샤갈이 벨라가 쓴 회상록에 그려 넣은 삽화 작품들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로맨틱하지 않은가! 아내의 책에 샤갈이 직접 그린 삽화들은 성서, 또는 라퐁텐의 우화에 들어간 삽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얇은 선으로 그려져 좀 더 편안하면서, 좀 더 애정이 담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가 벨라를 눈이 큰 소녀로 묘사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의 책에 삽화를 그려 넣으며 샤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벨라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샤갈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확장되었을까? 많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알고 싶어 전시장 밖으로 나오며 두 사람의 자서전을 검색해 보았다.



Chagall, Love and Life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을 통해 샤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1/3도 되지 않는 얕은 지식으로 샤갈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미술관을 나섰다. 흘러간 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풍부한 작품들로 꽉 찬 전시였다. 언젠가 벽 한 면을 다 채우던 태피스트리도 보고 싶고,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장소들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그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며, 리뷰를 마친다.




[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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