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대한 예술가의 뿌리 [전시]

글 입력 2018.08.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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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그렇게 덥고 습했는데도 예술의전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들이 온 가족들, 데이트 하러 온 커플들, 삼삼오오 모여서 온 친구들까지. 그 많은 인원이 2, 3, 4층으로 나뉜 전시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도, 들어 선 전시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표를 받는데도 줄이 굉장히 길어서 주말을 선택한 것이 실수였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왔으니 봐야지. 표를 받고 곧장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정신 없던 바깥과는 달리 전시장 안쪽은 소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 사이로 오디오 가이드 음성이 잘 들릴 만큼 적당했다. 그래도 인원이 워낙 많아서, 처음에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빵들마냥 줄지어서 작품을 순서대로 봐야 하는 것이 약간 불편했다. 사람들이 굉장히 천천히 이동했기에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과 함께 걸린 일화들을 읽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자니 곧 그 이동 속도가 알맞게 느껴졌다. 작품과 사연들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함과 편안함


<초상화 그리고 자화상>에 걸린 작품들은 크기가 크지 않아 오밀조밀 걸려있었다. ‘샤갈’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지만, 기반은 같아 보였다. 가장 처음 본 것은 다리에서의 첫 만남을 묘사한 벨라의 글과 샤갈의 작품이었는데, 14살에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첫만남을 각자 글로 묘사하고, 그림을 그려 표현한 연인. 그 어린 나이부터 벨라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생각해 보니 샤갈의 삶이 그토록 사랑으로 충만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샤갈은 주로 벨라와 자신,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몇몇 작품을 빼고는 그림에 여백이 많고, 얼굴만 있는 그림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크기도 작고, 여백도 많고, 얼굴만 그려져 있으니 약간 습작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슥슥 그린 것 같은 선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까만 눈동자였다. 먹으로 색을 채웠을 뿐인데 생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린 곱슬머리도 그림의 분위기를 한 층 편하게 만들어서, 따뜻한 조명 아래 놓인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화상 중에서도 머리만 있는 작품이 많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줄무늬 재킷을 입은 모습이나,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미소를 짓거나, 찡그리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특히 찡그린 자화상은 입이 삐뚤어져 있어서 웃는 자화상보다 강렬했다. 자신의 다양한 표정을 꾸밈 없이 담아 낸 것이 인상 깊었다. 친구에게 그려 준 자화상에는 ‘나 여기 있어! 날 보면 미안해 해’라는 문장이 서명처럼 써 있어서 샤갈의 재치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유명한 작품들보다 그의 솔직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색채로 가득한 뒷부분 작품들도 강렬했지만, 개인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샤갈의 먹 그림이 좋았는데 촬영이 불가해서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쉽다. 여백과 먹선을 이용해서 그린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담백하고 순수했다. 다양한 색을 이용하지 않았는데도 선의 강도만을 이용해서 분위기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특히 ‘천사와 시인’이라는 작품은, 눈코입이 점으로만 찍혀 있는데도 천사와 시인의 눈이 맑아 보이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투쟁하는 삶


한편 ‘러브 앤 라이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시는 샤갈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 나의 인생 >에는 샤갈이 경험했던 기억뿐 아니라 전해 들은 기억들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있었다. 고향, 집, 가족들, 또 그들과 함께한 기억의 장면들은 생동감이 넘쳤다. 작품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 속에 고향이 늘 변하지 않는 뿌리, 살아 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그가 세상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비테프스크위에서.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이 느낀 방황과 불안은 ‘비테프스크 위에서’라는 작품에 잘 드러난다. 늙은 남자가 공중에 떠 있는 그림인데, 하얀 테두리 때문에 그는 더 배경과 분리되어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유년을 보낸 샤갈은 유대인 모티프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 그림의 남자 또한 그 중 하나라고 한다. 유대교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샤갈로서는 세상으로부터 핍박 받고 배척 당한 민족의 정서가 작품 세계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특히 ‘추락하는 천사’와 같은 작품들은 유대교적 상징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데, 유대인에게 심장과도 같은 토라를 들고 달아나는 남자를 향해 천사가 추락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작품에 드러난 것은 민족에게 찾아 오는 위기에 대한 경고이자 자신의 불안이기도 하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 때문에 파리에서 뉴욕으로까지 이주하면서, 또 벨라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가 겪었을 고통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생존자로서, 학살에 희생된 민족에 대해 느꼈을 감정도.

샤갈은 어느 정도 종교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한 것 것 같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예루살렘에서 그린 그림들, 성서에 나온 장면을 그린 작품들, 나아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크네셋’을 위해 디자인한 태피스트리, 하다사 병원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뒤의 두 가지는 아쉽게도 진품을 볼 수는 없었지만, 디테일한 장엄함이 고난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타올랐던 샤갈의 예술혼을 느껴지게 했다.



사랑의 상태


연인들(1937).jpg
 

가장 크고, 가장 눈에 띄게 걸려 있던 ‘연인들(1937)’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화려한 색감의 꽃 가운데 연인들이, 아래쪽에는 샤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닭과 염소 같은 동물들이 있었고 흰색,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대비가 선명했다. 샤갈이 사랑했던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깔을 담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을 보고 색을 정말 잘 쓴다고 느꼈다. 꽃과 연인들을 보면 마냥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행복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던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샤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담긴 이 작품의 묘한 매력 때문인지, 오랫동안 머무르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본(6) - 연인들(1954).jpg
 

<연인들>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하나인 듯 붙어 있는 연인들뿐만 아니라 꽃을 그려내는 샤갈의 표현력이었다. ‘해돋이’에서는 연인의 형상, 말, 해, 세 가지가 흐려지며 합쳐지는 배경 사이에 꽃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꽃을 단순한 사물 이상의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연인들(1954-55)’에는 연인들의 살색과 같은 배경에 꽃과 마을, 식물들이 녹아 들어 있어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력을 거스르고 길게 공중을 나는 연인들의 모습들이지만, 이처럼 다양한 연인들의 묘사에서 사랑의 상태, 즉 두 사람만의 온전한 세계를 묘사하는 샤갈의 탁월한 표현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며


글에 언급되지 않은 작품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전시된 ‘죽은 영혼들’이나 ‘라퐁텐 우화’에 들어간 판화들 또한 재미있게 봤는데, 작품이 굉장히 많았기에 한 번에 꼼꼼히 보기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전시장 안에서 진짜 책을 읽는 것처럼, 작품과 함께 걸린 짧은 문단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재치 있는 글에 재치 있는 삽화가 어울리니 명작이었다. 국내에서 책을 구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샤갈의 그림이 들어간 책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모두 꼼꼼히 보기에 무리가 있기는 했지만, 알차게 전시된 작품들 덕분에 샤갈의 삶에 잠시 들어 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이 위대한 예술가가 일구어 낸 삶의 일부만을 보았는데도 그의 강인한 신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야수파 화가들에게 비난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한 예술가,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성찰을 예술로 승화시킨 종교인, 죽는 순간까지 부인을 사랑했던 남편, 고향과 가족을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마음에 간직한 사람.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자신의 뿌리, 사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길게 머물렀던 것은 그 삶의 궤적이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 놓아서가 아닐까. 그의 일생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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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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