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빵을 좋아해. 아니 싫어하는건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8.0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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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글 중에 ‘후식일담’이라는 글이 있다. 밥이 아닌 디저트, 그중에서도 빵에 관한 이야기를 매주 하고 있다. 후식일담을 여는 글에서부터 온갖 디저트 이야기로 내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저번 주에는 아주 버터리한 크로아상 이야기를 들고왔다. 이번 주의 후식일담은 어떤 글이 나올지 기대를 하고 있다.

글쓴이는 디저트를 먹으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몸이 아닌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이라고, 다른 것에 소비하는 돈을 줄여 디저트에 돈을 쓰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빵을 아주 좋아한다. 빵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고 빵 없이 견디는 하루가 거의 없을 정도로 빵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 단지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여러 가지 가루들의 조합일 뿐인데 어떻게 그런 풍부한 맛을 내는 것인지 매번 먹을 때마다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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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즐겨먹던 허니브레드


나도 글쓴이와 비교하면 지지 않을 만큼 빵에 대한 엄청난 이력이 있다. 허니브레드, 파니니, 토스트, 와플, 또 허니브레드, … 나도 글쓴이처럼 행복하게 달콤한 것들을 먹었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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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카페가서 먹은 디저트, 허니브레드와 와플.
카페를 가면 언제나 디저트와 커피를 같이 시켰었다.
만화보기보다 먹기 바빴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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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친구랑, 동생이 알바하는 카페에서 먹었던 허니브레드
나는 맛있었는데 생크림이 별로인거라고 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빵을 좋아하면서도 빵을 싫어한다. 빵은 정제 탄수화물인 밀가루와 몸에 좋지 않은 조미료 중 하나인 설탕이 대표적인 재료다. 밀가루와 설탕 모두 GI 지수가 높다. GI 지수란, 탄수화물이 몸에 흡수되어 당으로 분해되는 것을 다룬 개념인데, GI 지수가 높을수록 몸에 흡수가 잘 되어 살이 잘 찐다. 살이 찌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밀가루 속에 있는 단백질인 글루텐 성분은 마약만큼의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다. 그래서 밀가루 성분의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어야 한다. 또, 가짜 배고픔을 만든다. 호르몬 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배가 불러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더 먹게 되고 결국은 과식을 해서 살찌는 결과를 낳는다.

속세의 음식들에 익숙했던 옛날에는 빵 하나를 먹어도 글루텐 중독 증세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하나만 먹어도 무척 배부르고 만족스러웠었고.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며 무염식, 전혀 간이 되지 않은 생채식, 닭가슴살, 설탕을 넣지 않은 구황작물만 먹다 어쩌다 빵 하나를 먹었을 때 심각한 중독 증상을 경험해야 했다. 무설탕 지대에 들어간 내 몸에 설탕 범벅은 아주 큰 마약이었고 온갖 호르몬 체계를 망가뜨렸다. 그렇게 먹고, 또 먹고 토하고 섭식장애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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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유명한 빵집을 가서 책을 읽으며 먹었던 시나몬 롤과 초코 다쿠와즈다.

여전히 빵을 좋아하기때문에 하루에 한번은 빵을 먹고 있지만, 빵만 먹기 시작하면 나를 통제할 수가 없다. 서걱거리는 설탕의 식감이 싫어 불쾌해하면서도,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아 하면서도 입 안으로 빵을 꾸역꾸역 다 집어넣어버린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롤케익이고 마카롱 비슷한 과자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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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빵집 세군데를 더 들렀고 마지막으로 들른 빵집에서 사온 빵.

덥고 습하고 폭식 욕구가 너무 심각한 상태여서 얼른 남자친구의 집으로 가서 겨우 폭식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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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제는 유명한 빵집의 갈레트, 천겹으로 된 파이에 아몬드크림이 발라져있는 페이스트리 빵을 먹기도 했다. 분명 하나를 만족스럽게 배고플때 맛있게 먹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다 먹고 나면 더 먹고 싶고, 더 안먹으먼 안 될 것 같은 미친 상태에 빠진다.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남부터미널에 전시회를 보러 간 길이었지만 이 빵을 먹고 나서부터는 전시회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이 전시회장을 빠져나가서 빵을 더 먹고 말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또, 더 먹으면 살찌고 돈도 들텐데 어떡하지 고민하게 되고, 하루에 빵 하나만 먹는 게 더 좋겠다며 스스로를 설득시키려고 에너지를 낭비한다. 머릿속에는 빵 생각밖에 없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서 참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몇 주 전만 해도 참지못하고 다 삼키고 집에 와서 토하는 게 일과였다. 머릿속에 음식 생각밖에 없고 어떻게 하면 음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후식일담의 글쓴이가 부러웠다. 아니, 죄책감 없이 빵을 그저 디저트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부럽다. 맛있는 것을 그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럽다.

빵은 나에게 더이상 행복을 주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고, 단순한 식사대용도 아니다. 나는 빵을 보기만 해도 그것을 집어삼켜버리는 스스로를 상상한다. 그리고 이 빵이 내 몸에 들어와 얼마나 많은 셀룰라이트를 생성할지를 생각하고, 이 빵을 먹고나서 돌변해버릴 스스로가 두려워진다. 죄책감의 덩어리이자, 열량의 덩어리이자 보기만 해도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 평소엔 섭식장애 없이 행동하다가도 빵만 보거나 빵냄새만 맡기만 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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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저녁으로 이렇게 카페에 가서 노릇노릇한 토스트에 에그스크램블과 꾸덕한 크림이 들어간 초코음료를 먹기도 했다. 지금은 저렇게 먹어버리면 미쳐버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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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땐 디저트로 4개씩 묶어서 파는 와플을 사서 집으로 와도 한번에 다 먹어치우지 않았다. 지금은 빵을 그렇게 많이 사오면 한번에 다 먹을 걸 알고있다. 그래서 유명한 빵집에 가도 빵 하나밖에 사오지 못한다. 빵이 냉동실에 들어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때부터 머릿속은 냉동실 속 빵 밖에 들어있지 않다.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빵은 맛있다. 맛있는 건 좋다. 하지만, 다른 맛있는 음식들과는 다르게 빵은 나에겐 미치도록 두렵다. 두려워서 싫다. 무섭다. 음식에 감정을 갖지 않는 연습을 하고 많이 극복한 상태인데도 빵은 나에게 너무나 큰 두려움을 준다. '애증'이라는 귀여운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빵이 두려운 건가? 아니면 빵을 먹고 돌변할 내 자신이 두려운건가.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건가 아니면 빵이 진짜 사람에게, 또는 나에게만 좋지 않은 음식인가. 무엇이 진실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내릴 수 없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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