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형의 집 속 노라는 어디로 갔을까 연극 '노라이즘' [공연]

글 입력 2018.08.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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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연극 <노라이즘>은 헨릭 입센의 고전 소설 '인형의 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남녀 불평등에 대항하여 인간으로서의 여성 지위를 확립하고자하는 주의라는 '노라이즘'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연극의 무대는 매우 간단하다. 4개의 철근이 기둥과 지붕처럼 연결되어 집을 형상화하고, 집의 정 중앙에는 넓은 식탁과 의자 두개가 전부이다. 노라가 택배로 구입하고, 정성스럽게 세워놓는 블록들이 벽을 이루고 있다. 이 집 안에서 노라의 단순한 일상이 반복된다. 노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노라는 매일 집안을 쓸고 닦는다. 하는 것이라곤 집안일 뿐인 집에서 노라는 초인종이 울리면 깜짝 놀라고 의자와 식탁이 흐트러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배열을 맞추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런 노라의 모습은 인형 놀이에서 역할을 부여받은 인형1의 모습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남편 진규가 오면 애교와 아양을 부리고, 용돈을 받아내며 행복해한다. 진규는 그런 노라를 마치 귀여운 동물 보듯 기특하게 바라본다. 이들 부부의 모습은 전혀 동등해보이지 않는다.



서바이벌 TV프로그램


이러한 부부의 모습은 TV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연극은 최고의 현모양처를 찾기 위한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의 최종화를 생중계로 전달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카메라와 관객이 시선을 같이 하고 극의 중간중간 프로그램의 패널들이 등장해 노라의 행동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노라가 현모양처 되기 프로젝트를 통과해 상금을 받길 원하는 신청자 남편과 그 프로젝트를 막고 상금을 타내려는 방해꾼, 그들을 지켜보는 패널들로 프로그램의 큰 틀은 구성된다. 고전 소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각색해 미디어를 접목한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루는 부분에서 미디어의 기능이나 패널들의 역할이 갖는 의미가 애매했던 점은 아쉽다. 현모양처 되기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TV프로그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한 명의 인간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 타자화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패널들은 노라의 행동을 보면서 평가를 내리지만 이들의 발언은 단순히 가벼운 개그나 그들간의 티격태격하는 다툼으로만 다뤄진다.

중간중간 여성패널과 남성패널간의 말다툼은 왜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같은 상황에 대해 대립되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 차이를 다루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으나 둘의 갈등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됐을 뿐이다.



그 후 노라는?


극은 노라가 자신을 찍던 카메라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항상 시선의 대상이었던 노라는 카메라를 발견하고 렌즈와 눈을 마주치고 그 렌즈를 덮어버린다. 친구 영주의 도움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된 노라는 집을 둘러싸던 벽(블록)을 무너뜨리고 더이상 식탁과 의자의 배열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극을 보고 난 뒤 계속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연극의 첫 장면 때문일 것이다. 연극의 시작은 노라의 남편 진규가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방송에서 노라가 보인 모습들은 다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었고 자신은 노라를 돌봐 다시 좋은 부부로 거듭나겠다는 진규의 발언은 노라가 아직 인형의 집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랜 시간동안의 가스라이팅과 대상화된 세월은 노라의 발목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8년 현대의 노라는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랬고, 연극은 그렇지 않아 약간은 아쉬웠다.



다음 페미니즘 연극제를 기다리며


항상 '제1회'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는 연극제의 개최 자체로도 의미있다. 십시일반 텀블벅 후원을 통해 개최된 이번 연극제는 많은 이들이 연극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다뤄지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회,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더이상 페미니즘 연극제가 개최되지 않고 모든 연극이 페미니즘적 가치를 지향할 때가 어서 도래하길 바라며 다음 페미니즘 연극제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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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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