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울새를 죽였니? 뮤지컬 인터뷰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8.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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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울새를 죽였니?
나 참새가 말했어.
내 활과 화살로 내가, 죽였어.
누가 수의를 지을까?
나 풍뎅이가 말했어.
조그만 바늘로 내가 지을게.
부엉이 곡괭이 삽으로 무덤을 파고
떼 까마귀 목사가 되어 장례를 치르지.
불쌍한 울새를 위해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모두가 흐느껴 우네, 모두가 흐느껴 운다네.

 
뮤지컬 인터뷰는 위와 같이 다소 섬뜩한 내용의 자장가로 시작한다.

런던의 어느 조그만 사무실. 24살의 작가 지망생 싱클레어 고든은 베스트셀러인 < 인형의 죽음 >의 작가 유진 킴을 찾아와 보조 작가 인터뷰를 본다. 면접이 끝난 후 나가려던 싱클레어는 다시 돌아와 유진에게 그의 소설이 10년 전에 있었던 한 소녀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냐며 그를 추궁하고, 이때부터 극의 미스터리는 시작된다.

싱클레어라고 밝힌 그의 본명은 맷 시니어. 10년 전 살해당한 조안 시니어의 4살 어린 남동생이다. 그는 유진이 조안을 살해한 진범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오히려 유진에게 반격당하며 궁지에 몰리게 되고, 바로 이때, 그의 또 다른 인격인 지미 테일러가 나타난다. 유진이 지미 테일러를 인터뷰하면서, 관객들은 그제야 주인공 맷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 즉 다중 인격 장애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미 테일러를 거쳐 우디, 앤, 노 네임까지 총 5명의 인격을 통해, 맷이 그렇게 오랜 시간 쫓아왔던 10년 전 조안 시니어 살인사건의 전말은 서서히 밝혀진다.


유진 조안.jpg
  

해리성 인격 장애에 대하여 아직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긴 하지만, 대체로 강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 고통을 분해하기 위한 도피처로 인격의 해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맷 시니어 역시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무관심과 누나의 정신적 학대, 이후 계부의 육체적·성적·정신적 학대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신을 5명의 인격으로 분리시켜버린다. DID, 즉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입장이 분분하다. 한 사람의 몸을 빌려 여러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각자의 인격들을 다 개별적인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사람’에 대한 학계의 정의는 다시 크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극 중에서 개별의 인격 또는 인물이 발현되는 시점도 명확하지 않고, 각 인격들이 유진에게 온전히 솔직한지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인지를 추측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이다. 연쇄살인범인 그에게 관객이 연민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의 인격이 여러 개라 정작 본체인 맷 시니어 자신이 범행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극 후반 노 네임이라는 인격은 어쩌면 맷이 이미 모든 기억을 다 찾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흘린다. 그가 어디까지 기억해낼 수 있는지, 범행 당시 ‘맷 시니어‘라는 인격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관객이 맷을 '용서'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므로, 이 역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부분이다.

뮤지컬 인터뷰는 세 명의 배우가 전부지만, 배우들은 무대의 빈 공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싱클레어 역의 배우는 맷, 지미, 우디, 앤, 노 네임의 5가지 인격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조안 역의 배우는 목소리 톤 하나만으로 엄마, 어린 조안, 18살의 성인 조안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배우의 덕을 많이 보는 각본인 만큼, 배우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배우들 사이의 합이 조금만 뒤틀어져도 극 자체가 물음표가 되는 상황이 오기 쉽다는 점 역시 이 극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더해서, 다중인격은 두 말할 것 없이 매우 흥미로운 소재이고, 극의 핵심을 맡고 있는 실마리이다. 따라서 각본이 지나치게 싱클레어(맷 시니어)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그의 정체를 밝히는 의사 유진 킴은 부여된 서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실제로 싱클레어 역의 배우가 다양한 인격들을 소화하며 감정연기를 펼치는 동안, 유진 역의 배우는 대부분 뒤에 방치되어 있었다. 지난 2017년의 재연 버전에서는 연쇄살인범인 맷의 피해자 중 하나로 유진의 딸 레이첼 킴이라는 인물을 추가하여 유진에게 일종의 서사를 부여하려 시도했지만,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에 결국 삼연에서 레이첼을 삭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남성 캐릭터를 위해 희생당하는 또 다른 여자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여성 캐릭터의 무분별한 자극적 소비 외에도, 남성 캐릭터를 부각시킬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안과 맷.jpg
 

여성 캐릭터의 활용 면에서 첨언하자면, 조안의 캐릭터는 기존에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던 누나의 역할과는 매우 다르다. 기존의 누나들에게 주어지던 역할이란, 뮤지컬 < 프랑켄슈타인 >의 엘렌이나 뮤지컬 < 라흐마니노프 >의 옐레나와 같이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가졌으며, 남동생을 모성애로 품어주는 희생의 아이콘뿐이었다. 하지만 극 중 조안 시니어는 엄마에게 맞지 않기 위해 동생 맷을 달래다가도 분에 겨워 그를 죽이려 하고, 계부에게 맞지 않기 위해 맷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성에 눈을 뜨게 되자 맷을 이끌어 연인 관계를 맺었음에도 고향을 떠날 기회가 생기자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평범하지 않은 수준으로 이타적이고 자애로운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조안은 그저 ‘누나’가 아니라 이해 가능한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이처럼 스스로의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인간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욱 많이 그려지길 바란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액자 식 구성에서 바깥의 프레임인 연쇄살인범 맷 시니어의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것이다. '맷이 왜 여자들을 죽였는가?' 라는 질문에 노 네임은 ‘고자질하는 심장’이라고 답한다. 조안의 억울한 죽음이 세간에 잊히지 않도록, 조안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죽이고 자살을 기도했다고. 누나를 죽인 죄책감으로 자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죽이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그저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어설프게 변명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끔 한다. 냉장고 속의 여자들은 이제 그만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더해서, 계부가 조안에게 채찍을 갈기는 장면이나, 교통사고를 묘사하는 연출은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어 객석의 관객들에게 트라우마를 자극시킬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전시하지 않고서는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기조차 어려운가? 윤리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연출과 작가의 능력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누운 조안.jpg
 

또한, 유진이 맷 시니어의 불우한 성장 배경을 호소하며 부모와 사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뮤지컬 < 스모크 >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바로 후반부에서 이상의 시 세계에 대해 직접 등장인물이 풀이를 하는 장면이다. 그가 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문장은 무슨 의미인지 일일이 설명해주는 부분은 아무리 봐도 작위적이고 불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마치 < 그것이 알고 싶다 >의 한 장면처럼 관객에게 직접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의 장면은 세련되지 못한 인상을 준다. 거기다, 맷이 자신의 몸을 장악한 인격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야만 유족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대사는 가해자를 옹호한다는 기존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다. 맷은 사회가 키워낸 괴물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연쇄살인범이 돼 버린 것은 기저의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그가 죽였던, 시체로만 등장하는 여성들 역시 각자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맷이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의 질병을 치료해 알게 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해자 옹호, 피해자 전시, 불행 포르노적인 연출 등 비판할 점이 많은 극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뮤지컬 < 인터뷰 >가 꽤 흥미로운 극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약자를 향한 폭력과 배척, 그 중에서도 가정폭력은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전세계적으로 만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배경이 2000년대 영국인 한국의 창작 뮤지컬임에도 국적을 넘어선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뮤지컬 < 인터뷰 >는 미국 진출에 성공해 꽤 주목할 만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극을 관람하는 동안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남동생이 있는 누나로서 개인적으로 차마 보기 괴로웠던 장면들도 있었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가정이라는 세계 속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부모라는 존재, 그리고 이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야만이 되어가는가? 이는 아동학대라는 특수하고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인류 역사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주변에 하나쯤 연쇄살인범이 있지는 않겠지만, 맷 시니어처럼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괴물을 품고 살아간다. 언제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크고 작은 괴물 하나씩은 모두 존재할 것이다. 손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처럼,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괴물은 어떻게든 그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홀로 서서 작은 몸으로 뙤약볕을 견디고 있기도 하다. 맷처럼, 조안처럼. 부인하고 싶어도, 우리 모두에게는 그를 외면한 책임이 있다. 괴물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괴물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그늘 한 점이라도 씌워줄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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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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