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키스방, 가보셨습니까? [문화전반]

가지마세요. 행여나 가더라도 깨끗하게 구세요.
글 입력 2018.08.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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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키스방.jpg
구글 키스방 검색 결과
- 구글은 수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검색 필터를 적용하지 않는다.


키스방, 오피스텔, 건마, 안마, 귀파방. 유흥가를 돌다 보면 혹은 인터넷 광고 배너에서 볼 수 있던 이름들이었다. 말이 좋아 붙은 이름들이지만 실상은 그저 성매매 업소, 유사 성행위 업소이다. 이런 곳이 있다라는 것은 숱한 얘기를 통해서 알고 있었고 역사 속에서부터 존재했다는 그닥 영양가 없는 말에 비해 직접 들어가서 마주했을 때 오는 괴리감은 쉽사리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 키스방을 찾아 5만원의 30분, 이마저도 준비시간 5분이 빠져서 25분의 시간을 키스방 근무 여성분과 얘기를 나눴다. 애초 목적이 키스가 아니었기에 미리 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했고 얘기를 나누며 이 곳이 어떤 곳인지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행여나 나의 언행이 그 분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었기에 배려에 정신을 쏟았고 이러한 마음가짐과는 달리 막상 여성분이 들어온 순간부터 최근에서야 조금씩 익숙해진 젠더 감수성 덕분인지, 쉽사리 무슨 행동을 하기 쉽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았듯 “살아있네”라고 말하며 쭈물쭈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키스방 업소에 입장을 하게 되면 여느 곳이 그렇듯 현금 결제를 원한다. 인터넷을 조금만 이용할 줄 안다면 회원제로 운영되는 사이트를 찾을 수 있고 그곳에서 후기와 출근부 같은 정보를 얻어 이후부터는 수월하게 진행된다. 결제 후 양치를 한 뒤 방에 들어가면 여성분께서 입장을 하신다. 들고 온 작은 바구니에 타이머와 티슈가 들어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말과 함께 몇살이에요 같은 간단한 호구조사부터 대학생이라는 말에 자신은 스물 다섯이라는 말과 K대를 다니며 그 근처에서 산다고 전했다.

대학생이라는 말에 그리고 중국인이었던 것이 새로운 충격이었고, 중국 유학생은 경제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비교적 단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 것이었는지 혹은 순전히 그녀의 선택이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그저 키스방 와서 키스 안하는 이상한 녀석, 혹은 진상 손님, 아니면 운좋게 꽁으로 한 타임 쉬어가는 녀석 정도일 테니까. 보도가 목적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그녀를 인간으로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녀의 직업을 존중하지 않음이 느껴지는 언사는 단 하나도 없게 하기 위해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그것마저 혹여 안좋게 비칠 수 있었음을 알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우위를 점하고 발화 하는 것임도 알기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과 담론 그리고 대담은 계속해서 판도를 뒤집으며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아포리아에 빠지게 만들었다.


키스방.jpg
키스방 사이트는 위와 같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키스방 간 녀석이 뭔 이런 고민을 하냐”, “오피도 아니고 키스방 가지고 유세다”, “결국 너도 똑 같은 녀석이 아니냐”, “안했다고 하지만 가서 즐길 것 다 즐기고 이런 글 쓰는 것 아니냐”에 대한 의심에 쉽사리 설득하기 어렵다. 쉬이 믿지도 않을 테고. 혹은 방문 자체를 문제시 삼는다면 더더욱. 당신은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까. 우리는 본질을 좋아하지만 이미지에 휘둘리는 존재들이 아닌가. 결국 자신의 지평으로 평가 내릴 사람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리란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임을 안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화려한 철학 속에서 가려지는 실상과 현실의 리얼리즘이었다. 이론으로 접목시키기에는 그리고 피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들에 내리는 평가는 오만이고 폭력이며 투박하게 덜어내는 칼질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은 성매매 합법화와 불법화에 대해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oecd 가입국의 90% 이상이 성매매 합법국임을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위와 같은 경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너 친구랑 싸웠니? 왜 그래?”였다. 상처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분위기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던 엄마는 나를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들이라는 놈이 글쓰기 위해 키스방에 다녀와 성판매 여성을 마주하고 온 것임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전 글들을 확고한 어조나 어투로 말했다면 이번 글은 여러 번의 쉼표를 가져갔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 불쾌함 따위의 것이 아닌 인권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개념, 천부인권 따위의 것이 아니라 실재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텁텁함이 아직까지 기분에 남아 맴돈다. 글을 쓰는 것은 항상 힘들고 인상으로 파악한 경험이 짓누르는 듯한 기분은 많았지만 이렇게 무거운 감정은 오랜만이라 여간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 날은 나에게 분명 새롭게 시작할 하루들에 비해 잊혀져 갈 또 하나의 날일테고 오랜 시간에 익숙해진 성판매 여성에게는 점차 무뎌질 하루일테다. 성매매 합법화가 인권 향상과는 소원해진 해외의 사례를 보며 또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성매매 사례로 여성이 토론을 통해 직접 성구매 대상을 정하는 것을 보며 아무리 법으로 때려박고 제도로 감싸버려도 결국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며 혹은 실제로 겪으며 당신이 분노와 우울이 도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고장난 사람이라 말하지 않겠다. 그 정도의 냉소와 조소의 결말이 무관심과 새로운 보수성을 낳는 것을 숱하게 봐왔으니 말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항상 당당하게 사는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안위에만 족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자유와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삶. 그리고 날아오는 비판에 대해서는 “너 나만큼 힘드냐?” 혹은 “너 진짜로 힘든 것 맞냐?”로 응수한다. 이것은 비교로서 오는 안위에 대한 것이 아니고 감정에 순서를 매겨 누구의 감정이 중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허영심으로 작용하는 감정들에 대해 매섭게 반문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들의 피해를 감수해가면서 타인과 자신의 부끄럽지 않은 옳음을 추구하는 고유성을 지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 정치인이 있었고 최근 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받았다. 그처럼 자신의 억압의 역사를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성판매 여성들에게 처벌을 없애자는 주장에 힘이 실려야 하는 이유가 이제서야 다시 보인다. 많은 논리와 성매매가 불법임을 악용해 당했던 사례들을 보았고 설령 그들이 하는 일이 생계형 성매매가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성매매가 조악한 기시감을 가져오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비단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뀌었기에 오는 것이길 바란다.


[김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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