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히, 경전에 딴죽을 걸어보았다 [기타]

잔잔하기보다는 요동치고 싶었을 때, 마구 부딪히고만 싶었을 때
글 입력 2018.08.0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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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자리한 시구절들처럼, 그저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도 꽤 마음에 닿는 구절들을 발견하는 일이 꽤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유의 모티프가 된 세 줄짜리 구절 역시 꽤 우연히 와닿았다. 이 구절이 있던 책은 경전이었고, 게다가 불교 경전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 구절을 마치 베스트셀러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나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한 건 아니었다. 무심히 지나가다 결국 내 시선이 마음에 드는 시 앞으로 향하게 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의 여느 내 모습처럼, 나는 이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파도처럼 고요히 살라는 이 문장을. 도서관의 한 코너에서 마주치게 된 이 책의 제목은 '숫타니파타'라고 했다. 해석할 수 없는 제목에 나는 '이 책은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호기심으로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대강 읽어보니 논어, 탈무드, 혹은 명심보감의 그런 느낌이었다.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는 순간, 나는 이 문장을 마주치게 되었고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감히,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바다 속에서는 파도가 일지 않고 잔잔하듯이,

고요히 멎어 움직이지 말라

수행자는 무슨 일에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바로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인간의 존재 전제이자 의미이며, 본연이다. 인생의 의미 또한 ‘다양한 감정들을 풍부하게 느끼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사람들 틈에 끼어서라도 보고 가는 유명한 조각 작품, 밤새 몇 장의 종이를 구기어 가며 마침내 써낸 한 장의 연애편지, 그리고 시인은 떠났어도 활자로 남아 읽히고 또 읽히는 시까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산물, 즉 감정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래서, 이 문구가 냉소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 욕심, 게으름, 혹은 미움 같은 것들을 멀리할 것, 그리고 집착하지 않을 것. 정말이지 지금 당장 내 안에도 있는 감정들이자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것들이었다. 즉,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도 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살아가는 데 있어 딱히 좋지만은 않은 요소들이며, 따라서 그보다는 이 책에서도 이야기한 ‘지혜, 진리, 혹은 부지런함’과 같은 것들을 담고 살아가는 쪽이 더 좋은 삶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 구절처럼 ‘잔잔한 바다 속처럼 고요하게 멎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능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얽매이지 말고, 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고요하게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나에게는 꼭 수많은 감정들을 멀리하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여태껏 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겪어 와서 내가 있고, 또 앞으로도 다양한 것들을 겪으며 더 풍부한 인간이 되고 싶은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같은 구절들 앞에 맞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이따금씩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본뜻과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많은 감정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이런저런 일들에 부딪혀보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데 가치관을 둔 나로서는 지혜가 부족한 사람마냥 자꾸만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쩐지 수많은 감정 앞에 냉소적이라는 느낌과, 또 어쩌면 좋지 않은 감정들은 회피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 또한 좋은 것과 마찬 가지로 ‘감정’인데 말이다.
 
인생은 잔잔하고 고요한 물속보다는 파도치는 수면 위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인생이란 언뜻 보기에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물속과도 같은데, 알고 보면 수면 위보다도 더 심오하고 복잡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인생은 결코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위 구절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심오하고도 복잡하게, 또 바닥으로도 내려가 보았다가 위로도 올라와보는’ 것이 그러한 성격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과 진리 추구라는 말은 때로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는 어쩌면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회피하려는 듯 냉소적으로 다가왔다.

파도치는 수면이 있어야 잔잔한 물속도 있는 법이고, 따라서 인간은 때로 잔잔하지만 파도치기도 하고 또 그 파도에 따라 몸을 맡기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겪는, 고요한 물속이 아닌 그 모든 면을 가진 ‘바다’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즉 물속과 같이 살기만을 쫓기 보다는 수면에 올라와 인생에서의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인생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맛보고 살아가게 하는 길이 아닐까.

20대가 되면서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감정을 겪게 해준 것이 바로 ‘연애’이다. 아직도 정답을 알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이 바로, ‘안정적이고 평온한 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관계 혹은 마음에 있어 조금 더 비워내고 덜어내는 것이 맞는 것일까, 혹은 감정에 충실해 열정적이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듯 대하는 게 맞는 것일까’하는 문제이다. 열정적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보통 ‘너 자신부터 사랑하고, 너를 중심으로 하고, 또 너부터가 완전한 사람이 된 후에’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건강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들이 더없이 인간적인, 그래서 어리석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한, 정답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는 모두의 사랑 앞에 씁쓸하고도 용기가 부족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처 받을 수도 있고, 관계를 망칠 수도 있고, 또 바보 같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더없이 인간적인 것들을 회피하며 안정과 평온함만 쫓는다면 과연 그 길은 진정 행복한 것이며, 풍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일까.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감히 이렇게 구절을 바꿔보았다.


잔잔한 바다 속에서 파도치는 수면 위로 올라와라

끊임없이 부딪히고 느껴라

인간은 더없이 인간다울 때 그 의미가 있다


물론 절제하고 노력하기도 하면서 중도를 지키고 또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지혜롭고 좋은 인생일 수 있겠으나 나는 그보다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감정 모두를 받아들여 인생의 이면을 아는, 겪어보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야만 이 세상의 것들을 더 깊고 풍부하게 공감하며 받아들이고 나 또한 또 다른 작품들을 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으로써, 티끌이 없기보다는 더없이 인간적이지만 그래서 풍부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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