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도서]

죽음을 애도하며,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글 입력 2018.08.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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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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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평론가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게 된 것은 사진에 관한 이런 저런 서적을 뒤적이다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이후, 그 상실감을 애도하기 위해 작은 쪽지들에 애도일기를 써내려간다. <애도일기>는 바로 그 쪽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의 애도일기는 1977년 10월 25일부터 시작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다. 누구나 언젠가는 실제로 어머니를 잃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죽음이후 엄청난 상실감에 스스로를 마치 자살과 같은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 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경과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곧 퇴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이어나갈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은 채 죽어갔다. 어쩌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물리적인 신체적 상해가 아니라 살아서는 도저히 끝낼 수 없었던 상실에 대한 애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그의 삶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실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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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텅빈 공허함을 가져다준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더욱 그렇다. 그것과 마주한 순간 우리는 당연하게 이어온 일상의 어떤 몸짓으로도 아무런 의미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의미가 텅 비어버린 일상은 우리에게 평상시와 전혀 다른 말을 건넨다. 갑자기 일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전혀 상상해 본적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질서 속으로 (어쩌면 혼돈속으로) 갑자기 우리를 밀어넣는 사건과 같은 죽음.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에서 그런 상실감을 경험한 것 같다.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의 일기를 읽어보니, 책을 읽기전에 내가 마음 속에 막연히 떠올렸던 상실감, 우울감, 절망감을 넘어, 상상하기 힘든 끝없는 막막함에 중력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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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쪽지에 적힌 일기들은 짧은 문장들로, 시작이 될 듯 하다가도 끊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것도 부재하지 않은 듯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당혹감 앞에서 그는 엄청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우연히 들려온 흔하고 익숙한 단어에 갑자기 깊이를 알수 없는 슬픔 속에 내던져지기도 한다. 애도일기를 통해서 그는 매일매일 애도를 실천하지만 그럴수록 그 애도는 매일매일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과 마주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애도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과정. 그 과정을 텍스트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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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아직 애도되지 않은 텅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일상의 더 중요하고 바쁜 일들로 그것들이 잊혀지고 무뎌진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무뎌지지 않는 예민한 감성으로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을 모두 감당해내려 한 그의 애도의 과정이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일기에 써내려간 애도의 과정과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끌고간 그의 삶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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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기는 1978년 8월 21일의 일기.


1978.8.21.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지워진채로 남은 자신의 텅빈 흔적은 아무것도 될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마음이 슬프게 느껴졌다.


[보라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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