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 알아가는 시간 - 김금희] 미숙했던 나를 용서하는 것 [도서]

사랑하죠. 오늘도 - 책 "너무 한낮의 연애"
글 입력 2018.08.0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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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는 기억들
그로부터 흘러나온 미세한 파장이 건드리는 ‘보통의 시절’

_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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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 첫 연애


“나를 사랑하긴 해?”

진부하고 징그러운 말이지만, 나도 이 말을 뱉어봤다. 나의 첫 연애. 내 생각보다는 남의 경험을 믿고 그게 맞는 줄 알았던 연애. 그때의 날 되짚어 보면 왜 그랬나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그때로 돌아가 “이 말은 뱉지 말라고!” 어깨를 흔들며 소리치고 싶던 나의 모습. 이기적이고 못됐던 여자애. 그 사람은 날 그렇게 기억할 거라 짐작한다. 맞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고, 난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애였다.

우리가 늘 싸우는 레퍼토리가 있다면, 그건 여사친(여자사람친구)문제였다. 그가 아끼는 무리에 여사친이 두 명이 있었는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나간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날 믿게 하라고 했다. 그는 그런 나를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싫어한다고 그 자리에 몰래 가지 않고 꼭 말을 하고 갔으며, 옆에 되도록 앉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문제로 그와 난 헤어졌다. 이제 함께했던 대부분의 기억은 잊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책을 읽고 그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을까.

“너만 괜찮으면, 친구들한테 널 꼭 소개해 주고 싶어. 정말 좋은 애들이거든. 그럼 너도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안심할 테고. 분명 잘해줄 거야. 친해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해맑게 웃던 눈이 생각난다. 난 날 믿게 하라면서 그 사람을 믿으려고는 했었을까. 그 사람을 제대로 보려고 했던가. 그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나의 자존심과 이기심이 먼저였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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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는 사랑 아닌 사랑을 했던 20대 필용과 양희가 16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를 담는다. 난 이 책을 읽고 내 첫 연애가 생각났다. 많이 미숙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많이 줬던 그 연애가.

*

필용은 샐러리맨이다. 다만, 회사에서 문책을 당해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으로 인사이동 통보를 받았다. 상심하던 그는 평소 가지도 않았던 맥도날드에서 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맥도날드 건너편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고 적힌.

그는 16년 만에 왜 갑자기 맥도날드에 오게 된 건지 그제야 깨닫는다. 양희가 생각나서이다.

-16년 전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는 양희가 쓰던 대본의 이름이었다. 양희는 필용의 과 후배였다. 우연히 종로 어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들은 수업이 끝나면 맥도날드에 가 같이 햄버거를 먹었다.

양희와의 관계를 묻는다면 참 애매하다. 수업 끝나고 점심을 함께 먹으며 3~4시간 정도 있다가 각자의 집으로 간다. 그것이 반복. 그렇다고 그 3~4시간 동안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다. 주로 필용이 자신의 얘기를 거짓말을 보태 이야기 하면, 양희는 그걸 그냥 듣는다. 시선은 늘 부담스럽지 않게 필용을 비껴 있었다. 필용의 말대로 감정 없는 구체관절 인형 같다.

양희는 필용과 달랐다. 아니 모든 사람과 달랐다. 필용이 미래에 대한 상상과 걱정으로 지냈다면, 양희는 오늘을 살았다. 미래를 뭐하러 생각하냐. “오늘 점심을 먹으면 됐고, 오늘 사랑하면 됐다.” 식의 마인드였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양희가 말한다.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


라고. 참 무미건조한 고백이었다. 이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썸인지 아닌지. 사랑인지 아닌지. 그래, 한 사람은 고백 비스름한 말을 했고, 그걸 들은 한 사람은 “어 그래? 미안. 안녕”이 아닌 늘 그랬듯 앞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으니 썸은 넘었다고 해야겠다. 근데 또 사랑이라 정의하고자 하면 ‘이게 사랑이야?’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필용의 속이 오히려 탄다. 오늘을 사는 하루살이 같은 그녀의 마음이 바뀔까 되려 안달한다. 그래서 계속 묻는다.


“오늘은 어때?”
“그렇죠 오늘도”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이 형용할 수 없는 관계가 9개월에 접어들었을 즈음 양희가 말한다.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사랑한다고 했을 때처럼 아무 느낌 없는 듯,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이 없어졌다고. 그 말에 필용은 화가 난다. 그리고 양희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거의 폭격기 수준인 막말은 수위를 한참 넘어 경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들은 생각은 ‘양희도 양희지만 필용도 참 찌질하다.’ 솔직히 필용은 양희에게 오늘은 어떻냐고만 물었지 본인은 9개월 동안 ‘사랑한다.’라는 말 한 번도 안 했으면서. 만나면 지 얘기만 하기 바빴으면서. 양희에 대해 묻지도 않았으면서.

-16년 후

필용은 양희를 보겠다고 극장까지 간다. 양희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의 작가이자 배우였다. 극이 시작되면, 무대의 온 빛은 양희에게만 향한다. 양희는 검정 전신 타이츠를 입고 나와 무대에 가만히 서 있다. 그러다 관객 한 명을 무대 위에 올려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다시 빤-히 바라보는 시간. 그렇게 40분의 시간 동안 계속 그 사람을 바라본다. 서로를 바라본다. 그럼 누군가는 울고, 때론 누군가는 처음엔 부끄러워하다 눈을 마주친다.

이게 끝인 연극이었다.



‘다시’ 보는 양희

책을 읽으며 고민했다. 양희는 필용을 사랑하긴 했던 걸까?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냥 특이하고 이상한 여자 같던 양희가 다르게 보였다. 외적으로 보이는 무심하고 감정 없음은 자세히, 빤-히 보지 않으면 그 내면을 알 수 없다. 양희는 막말을 한 거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문산까지 온 필용에게 말한다.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나무나 보라고.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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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는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태용이 허세와 거짓이 섞인 말들을 3~4시간 말해도 그 앞에 앉아 견뎌주는 것. 참다 참다 못해 “선배 왜 이렇게 거짓말이 심해요?” 하지 않고 가만- 들어주는 것. 무언가 꼭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 편이 돼 주는 것. 양희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감정 없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니라 담백하고 어떠한 수식 없는 사람. 우리는 한글이나 영어공부를 할 때 가장 처음으로, 주어 동사만 있으면 완전한 문장이 된다는 걸 배운다. 그러고서 배우는 게 수식어다. 말의 살을 붙여주는 것들.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그런 수식어들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하고 더 감동할 수 있겠지. 어느새 부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더 말하지 않는 너는 날 사랑하는 게 맞냐고.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 근데 주어 동사에 팩트는 들어가 있지 않은가. 가장 묵직한 팩트. “나는 너를 사랑한다.”

16년 후인 지금도, 양희는 필용을 알아보고 필용과 달리 두 팔을 들어 어느 날 밤의 느티나무처럼, 바람을 타듯 팔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어준다. “잘 가요 선배. 오랜만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제야 난 완전한 양희가 보였다. 숱한 기억 속 양희는 늘 똑같았다. 늘 그 자리에서 필용의 앞에 있었다. 그녀는 필용을 사랑했다. 필용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 보지 못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까 부끄러웠다. 필용은 그걸 왜 지금에야 알았나 싶고, 나도 왜 그걸 나중에야 알았을까 싶었다. 후회는 왜 그때가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는 걸까. 필용에게서 내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그때의 내 연애가. 내 지난 모습이.



너무 한낮의 우리


작가 노트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용서해주는 것.
서툴렀던 어제의 나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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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용이 눈물범벅으로 극장을 나와 마주한 한낮에, 왜인지 나도 마음이 나아졌다. 그냥 위로가 됐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낮의 정오는 때론 뜨겁고 후덥지근해서 열심히 익어가는, 속절없이 흔들리는 미숙한 때라고. 데어보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데었든, 상대방이 데었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그때의 날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한낮이니까. 너무 한낮이니까. 생각하며 용서해주자고 말해주는 듯하다. 내 지난날을 후회하기엔 지금은 너무도 환한 한낮이지 않나.

그래서 끄집어 올렸던 기억을 다시 내려 보낸다. 더 이상 그때의 기억이 아주 없었던 것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저 있지 않은 상태로 잠겨있기를. 그래서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 잠시 생각나기를 바란다. 환한 낮처럼 아름다웠던 그때를.

그래서 내일 다시 오는 한낮은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기를. 더 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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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는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조중균의 세계」로 2015년,「문상」 2017년 젊은작가상, 「너무 한낮의 연애」로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가장 최근엔 「경애의 마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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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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