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가 소개 - 매체의 작가, 정연두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8.0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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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의 작가, 정연두를 만나다


정연두 작가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플라토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정연두의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를 보고 난 뒤였다. 예술가는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사람과의 소통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 후로, 그의 작품을 또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2016년,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에서 있었던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전시에서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와 저기사이>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에서는 그의 작품 <원더 랜드>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더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었던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 전시에서 그의 영상작품 <씨네매지션>을 볼 수 있었고 4월달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3일간 열렸던 정연두 마라톤 상영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정연두작가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그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소과를 나왔지만 사진 작가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이다. 덧붙여서, 유학시절에는 퍼포먼스를 시연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최첨단 매체인 VR을 이용해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평소 매체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던 나는 2017년, 정연두 마라톤 상영회 당시 직접 작가를 만나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에 따라야 한다는 개념에서 매체를 이용한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가장 동시대성을 잘 표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한 매체만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하면, 그것은 자신을 제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였다. 사진만 찍으면 자신이 지정한 프레임에 갇혀,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의 세상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그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 작품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매체와 유형별로 그의 작품을 나누어,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사진 <내 사랑 지니 Bewit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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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지니 Bewitched>


200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세계 14개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고, 그 꿈을 사진으로 실현시켜왔다. 원래의 작품은 사직작업을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16초 동안 천천히 디졸브 되며 보여주는 형식이다. ‘디졸브’로 인해 생기는 시간적 여백은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
 
어느 날 작가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게 되었는데 지금 주유소 일을 하고 있지만 과연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일까 궁금했다고 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그가 창문을 내리고 그의 꿈을 물어봄으로써 작품은 시작된다. 지니 시리즈는 사람들과 서로 교감하며 만든 작품이니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이라고 한다. 지난 2003년에 있었던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출품한 <내 사랑 지니>는 가장 훈훈한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당시 한 은행이 그를 후원해 주었는데, 그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은행 측에서 그 작품의 모델에게 꿈을 이룰 때까지 모든 재정적 지원을 맡아주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 모델의 꿈은 수학선생이 되는 것인데 학비가 없어 거리에서 홍차를 만들어 서빙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이 삶이 변했다는 것이 큰 의미였다고 말한다.



영상+퍼포먼스 <씨네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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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매지션>


작가는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마술사였던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영상 작품 겸 퍼포먼스 기록 영화이다. 작가는 한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카메라를 돌리며, 카메라 안에 담긴 프레임과 관객이 보는 전체적인 무대의 분위기가 동시에 상영되는 이중 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속 예술가의 역할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마술사 이은결이 등장하여 친숙하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연두의 작업에는 실재와 허구,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일관되게 등장하는데 <씨네매지션>은 그 표현법의 절정에 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임 밖의 상황에 대해 함께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은 ‘프레임’ 속의 세상이 트릭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트릭에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은 요코하마에서 상영된 이후, 2009년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에서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서울 서강대 메리홀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VR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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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의 통로>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등장한 VR 작품들은 미술계에서 새로운 집중을 받고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또한 이를 이용한 작업이다. <베르길리우스의 통로>는 로댕의 역작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상들을 실제 모델로 재연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킨 또 다른 지옥의 모습을 연출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일본에서 체류하던 중 보지 못하는 현실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한 맹인 안마사를 우연히 알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안마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이 작업은 가상현실을 통해 실존하지 않는 작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체험해 보니, 어딘지 모르게 오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VR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착용한 관람객은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를 보는 사람은 그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보일 것이다.



마치며


처음에 느꼈던 정연두 작가 작품의 매력은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작품을 만들 때 끊임없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상대를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결과로써 나타는 그의 작품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꿈을 현실에 놓지 않는다. 실재와 허상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동을 줌과 동시에 허무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또 다른 그의 작품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자 특징은 ‘다층적’이라는 데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품이 다층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봐도 느낄 수 있고 일반 어른의 시각에서 작품을 보아도 해석이 가능하고, 또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아도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연두 작품에서 사용되는 ‘매체’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향유되고 있는 매체의 변화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그는 세상의 변화를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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