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아이를 낳지 않겠습니다 [문화 전반]

비혼주의자가 아닌, 딩크족입니다
글 입력 2018.08.06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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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 사람을 가려 사귀지 말자는 주의라 주변에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다. 나 자신은 이십 대 초반이지만 덕분에 내 미래에 일어날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친한 지인 중 한 사람은 40대 초반이다. 그 분은 내가 알바를 하던 곳에서 잠깐 일하시던 분이었고, 결혼을 하신 지 꽤 되셨으며 아이가 없다. 그 분의 일상은 꽤 이상적이다. 남편 분이 능력 있으셔서 외벌이지만 경제적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살림도 딱히 할 필요 없고 돈 걱정 없이 해외 여행도 자주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맘껏 배우고 운동도 꾸준히 한다. 친구들은 빠르면 애가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라서, 통 만날 시간이 없어 오히려 무료할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는 그 분의 여유로운 삶이 모두 아이가 없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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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분을 알게 되기 전부터 나는 애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애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애들이 시끄럽게 하든 떠들든 웬만한 건 다 이해를 해 주려 노력한다. 어리기에 모르는 거고 그들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한창 배우는 중이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와 애정은 다른 종류 아닐까?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존재와 오랜 시간 대화하는 것이 귀찮고, 무조건적으로 내가 이해를 해 줘야만 하는 상황이 불편하며 작고 어린 존재들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한다. 생존과 번식은 생물의 최대 욕구이고 그렇기에 ‘당연히’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느낀다는 논리이다. 한 핏줄, 한 민족의 끈끈함을 강조하는 우리네 정서도 한 몫 한다. 애는 싫어해도 내 애는 싫어할 리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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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토끼]


모성애는 만들어진 감정이다. 물론 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감정, 특히 어머니의 감정이 감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 것임을 알고 있으며 늘 감사하고 있다. 부모는 산에 묻어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설령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부모에게 자식은 삶의 목적이자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듯이 그런 강렬한 감정을 도통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혹은 그럴 가능성은 있으나 그럴 자신이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설령 자식을 낳더라도 그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 아예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우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식물과 동물을 키워 봤지만 늘 결과는 같았다. 초반에는 모든 애정과 정성을 다 쏟았지만 곧 식었다. 결국 최우선가치에서 밀려난 그들에게 전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내겐 죄책감만이 남았다. 현재 키우고 있는 토끼는 최대한 신경 써주고 있지만 내겐 이제 토끼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토끼를 사랑하지만,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겐 아이도 비슷한 존재이다. 낳으라면 낳을 순 있겠지만 그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애에게 가혹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애초에 나는 사람의 아이보다 새끼 토끼가 더 귀엽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할 때마다 이유를 물어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애가 귀엽지 않다고 짧게 대답하곤 했다. 반응은 딱 내 대답을 이해하는 이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로 나뉘었다.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은 막상 낳아 보고 나면 귀여울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낳고 봐도 영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럼 그 때는 누가 책임지지? 이미 낳은 아이를 어찌할 수도 없고. 엄마의 다른 말은 희생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나의 조각을 떼어 주는 행위이다. 엄마의 젊음, 시간, 때로는 건강, 혹은 삶 그 자체.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은 남은 조각들을 움켜쥐고 살아간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결국 그가 자신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극성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낳아 보면 귀여워”, “처음엔 다 그래”, ”그래도 애는 낳아야 해.” 그 말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각조각 나는 것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일 뿐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다들 낳으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애를 낳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부모가 될 준비가 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부모가 되어야 한다.

딩크족이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줄임 말로 근래 들어 확산되고 있는 용어이다. 문자 그대로, 애가 없는 맞벌이 가정을 의미한다. 아이를 원하는데 낳지 못하는 부부는 해당되지 않고 본인들의 의사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만 포함된다. 앞서 말한 나의 지인도 딩크족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잠재적 딩크족이지만 말이다.) 애를 낳지 않겠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럼 결혼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애석하게도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은 내게 환상이고 사랑하는 이와 법적으로 묶여 여생을 보내고 싶다. 종종 사람들은 결혼과 아이를 동일시한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결국 연결고리가 없어 헤어질 것이며 그게 아니더라도 노년이 쓸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음, 결국 남는 게 가족뿐 이라는 건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노년을 위해 원하지도 않고 잘 키울 자신도 없는 아이를 낳는다는 건 위험한 생각 아닌가? 오히려 그 애를 낳지 않고 저축한 돈으로 더 풍족한 미래를 그릴 수도 있다. 자고로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했다. 아이가 내 노년을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또한 단지 아이가 없어 헤어질 사이라면 그냥 헤어지면 된다. 결혼이란 연애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지만 굳이 아이 때문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이가 있든 없든 화목한 가정을 원하기에 결혼 하고 싶은 것이지, 해야 하니까 굳이 하는 결혼이라면 차라리 독신으로 살겠다.

물론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나는 지금이야 이렇게 애 안 낳겠다고 선언하는 글까지 쓰고 있지만 10년 후에는 쌍둥이 엄마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결심했는데 그 사람 평생 소원이 아이를 가지는 것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살면서 누구나 가치관이 바뀐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지금은 애가 싫고 낳지 않겠다는 마음이 확고하지만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겠다는 말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딩크족’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딩크족 후회’가 뜬다. 딩크족으로 살다가 외로워서, 혹은 뒤늦게 아이가 예뻐 보여서 아이를 낳기로 마음을 바꾼 이들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다. 요새는 정자 은행, 난자 은행이라는 게 있어서 젊었을 때 정자, 난자를 보관해두면 너무 늦게 마음이 바뀌어 노년에 애를 낳고 싶을 때 문제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앞서 말한 내 지인도 내게 최근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애가 싫어서 원래 애를 낳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조차 없는데, 요새 조카가 너무 예뻐 보인다고, 조카 같은 아이라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었다. 육아와 살림에 치인 보통의 엄마들에게 이상적인 존재일 그 분도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0라고 못 박아 둔 가능성을 1로 살짝 올려 보기로 했다. 나중에 그게 다시 0이 될 지, 100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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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가 없는 여성도 있다. 아이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여성도 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은 하지만 아이를 낳기는 싫은 사람이 있고 아이를 갖고는 싶지만 결혼은 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묵묵한 이해이다. 대신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내 삶을 간섭하는 이들이 답답한 보통의 사람이다. 나는 출산을 강요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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