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탈코르셋 운동, 벗는 손보다 담는 마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8.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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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란 때로 열정적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다. 대체로 시대도 흐름을 타는지 '슬림-글래머'를 왔다 갔다 하지만 그 사이 인상깊은 독특한 잔재들이 있다. 발을 우겨 넣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전족, 허리를 잔뜩 졸라매는 코르셋. 사람 성격 망칠 만한 것들이다. 인류 최악의 발명품 순위가 있다면 상위권에 들만한 것들. 코르셋에 대한 명장면과 명언이 생각보다 많다. 조상님들이 관련된 속담이나 설화라도 남겼으면 교훈적이고 기억에도 쏙쏙 남았으련만. 영화만 해도 당장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많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유모에게 열심히 코르셋을 조여지는 장면. <레이디 맥베스>에서는 우리의 주인공 캐서린이 코르셋을 조이며 코르셋 같은 하루 일상을 시작한다. 한편 <캐리비언의 해적>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스완에겐 총을 쏴대고 칼을 휘두르는 해적보다도 코르셋이 더 진절머리난다. 꽉 조인 코르셋 때문에 기절 안 해 본 사람은 모를거라며, 해적들에게도 그녀는 진짜 고통을 맛보고 싶다면 코르셋을 입어보라고 친절하게 조언까지 한다. 그렇다면 요즘은? 코르셋을 입지는 않는데 말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코르셋을 버리겠다는 소리가 이곳저곳 들려온다.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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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화장품 사용 자제, 조이지 않는 옷차림이 탈코르셋 운동에서 보여주는 '현상'이다. 쓰던 화장품을 뭉개버리고, 해야한다면 최소한의 화장을 하고, 길었던 머리를 바싹 자르고, 몸매를 조여주던 속옷 역시 잘 입지 않는것. 이에 대한 입장은 열차 칸이 나눠져 있듯 토막토막 제각각이다. 환영하는 입장, 홍보가 넘쳐 강요하는 입장, 회의적인 입장, 관조하는 입장. 나는 제일 마지막 칸에 탑승해있다. 이렇게 편한 것을 지금 알았다며 놀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유행이구나 싶다. 숏컷과 화장품 없는 일상을 상대적으로 일찍 경험해봤기 때문일까. 나에겐 그렇게 신기하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겐 이토록 신세계라는 것이 희한한 것이다.

짧은 머리에 대해서라면 나름 '단발병' 걸렸단 얘기도 들었던 1인으로서 바로 생각이 난다. 생각보다 빨리 자라니 자주 잘라줘야 하고, 너무 짧으면 '샤랄라'한 옷은 입기 힘든 느낌이 들고,  조금 기르면 뻗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가볍고 말리는 시간도 현저히 짧다는 장점이 있다. 머리의 달라진 무게감을 여실히 느끼게 되니, 괜히 너도나도 단발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니까. 화장품 역시 그다지 '금손'이 아니어서 그런지 잘 안써버릇 하다보면 그 상태가 편해진다. 요즘엔 하도 단발만 하고, 화장품을 많이 안써서 나의 또다른 모습도 보고 싶은 마음에 머리도 큰 마음 먹고 길러보고(기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화장품도 신기한 건 써보기도 한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지만, 머리카락이야 댕겅 자른다 해도 요즘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다. 머리 역시 화장만큼 '개인의 자유' 폭에 든지 오래라 할 수 있겠다. 의아한 부분은 거기서 시작된다. 전족을 하고, 코르셋을 하던 시대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진 않았지만 강제력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시대였다. 지금은? 여성을 그렇게까지 막고 있었던 장애물이 없다. 언제든 원하면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덜 하거나 하지 않고, 속옷 역시 브라렛 등이 아니더라도 와이어 없는 대체품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손발이 묶인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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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지금, 유독 이렇게 뜨겁게 해석되고 있을까? 막상 내가 그러고 다닐 땐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론 그 때는 그 모습이나 행동에 가치나 의미가 부여되지도 않았다.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외모와 차림새'에 '자유와 사회적 억압' 라는 느낌이 함께 하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세상이 변했다는 얘기다.  그 개념을 그렇게 연결했고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거에야 나는 학생이었으니 다소 부조리하게 느껴졌던 복장규정은 지금의 탈코르셋과는 큰 연관이 없었다. 물론 그 규정 역시 학생의 모습을 은근히 조여온다는 점은 비슷했으려나. 양말은 신어도 되는데 덧버선은 안된다거나, 외투의 색이 무채색이나 남색 등으로 정해져 있다거나, 염색은 그렇다치고 파마조차 하지 못하는 날 것 그대로의 머리, 색깔도 없는 입술보호용 립밤이나 립글로즈까지 뺏을 수 있었다.

꼭 삐따닥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학생일 때는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있었다. 두발과 복장에서 우리의 자유가 조금만 더 생길 수는 없는 걸까 싶은 생각. 물론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듯한 번거로움과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는 체념, 모든 자유를 나중으로(feat. 대학가면) 미뤄버리는 말로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그 때는 학생과 복장의 구도였다면 지금처럼 성별과 복장, 자유가 함께 맞물려들어간 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역시 '숏컷을 한 여자'는 보기 드물었다. 숏컷을 한 여자 배우나 연예인이 간혹 있었고, 그를 보고 따라했다면 스타일이 예뻐서 한 것이지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복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을 때 동네 남학생들의 수근거리는 놀림조의 한 마디 역시 기억한다. 거 참. 바지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건만! 어떤 의미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게 먼저였다.

그렇다. 내가 잊고 있었던 부분은 어른과 직장인의 영역이었다. 학생일 때는 학교의 '복장 규정' 이 있다면 직장, 그 곳엔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의 관습법이 있다. 직장인이 되면 학생 때와 사뭇 다른 이상한 기준의 '미의 규정'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피곤했을 것이다. 직장인의 단정한 외모, 서비스직의 직업요건이라는 말 아래에 명시적이지 않은 수사구들. '은은하지만 생기 있는 화장', '적당한 구두굽', '바지보다는 치마' 같은 은연중에 강요받은 조건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탈코르셋 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특히 직장인 여성에게는 좀 더 자유로운 차림을 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이 될 수 있을 거란 것은 이견이 없다. 항공사나 문화생활관련 등 일부 직종에서도 요즘엔 조금 더 복장 규정이 완화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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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바꿔보자. 그럼 왜 그런 '미의 관습법'이 나오게 됐을까? 웃어른, 가족이나 친구, 동료, 고용주나 상사들이 왜 꾸준히 그런 말을 했을까?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듯, '단정한' 차림에서 '단정한' 태도가 나온닫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음을 단단히 먹을 때 머리를 깎고, 옷을 수수하게 입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듯이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긴 하니까. 우리나라가 유독 더 아름다움과 멋짐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범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상', 흡사 외모의 이데아라 할 만한 것이 있다. 이목구비가 큼직한 건 좋은데 또 너무 인조적이면 별로란다. 마르면 또 말라서 지적당하고, 살이 있으면 빼라고 지적당한다. 이데아라 하기엔 변동폭이 큰 셈이다. 예전엔 마른 체형이 인기였는데 새삼 근육이 탄탄한 잔근육 있는 체형이 인기다. 패션이 그렇고, 화장품이 그렇고, 머리스타일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남의 눈에, 자신의 눈에 나쁘지 않은 상태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신경을 쓴다. 이쪽 업계에서는? 그저 팔 뿐. 사람들의 이런 심리와 욕구를 파악해서 팔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서 팔리게 하거나. 돌고 도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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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입장에서  염려되는 것은 탈코르셋이 옳다는 가정하에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경우이다. '현상'과 '본질'은 같아보이고 연결되어 있더라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동안 남들의 시선에 눌려 억지로 살을 빼고,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꾸역꾸역 불편한 속옷을 챙겨입었다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어리석은 여성억압문화의 신봉자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불편하지도 않고, 남 신경을 쓴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해왔던 사람들 역시 있을 수 있다.  비난의 근거가 현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머리가 짧든 길든, 어떤 속옷을 입든, 치마 혹은 바지 중 무엇을 입든, 화장을 하든 하지 않든. 구두를 신든 말든. 이것들은 궁극적으로는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괴로웠던 핵심은 억압이었다. 탈코르셋 운동의 본질은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유 아니었던가?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벗어던지는 코르셋이 무엇인지, 여전히 남아있고 혹여나 새로 생겨날 억압이라는 이름의 '코르셋'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탈코르셋이 다소 '중성적'이라고 표현되는 또다른 겉모습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제2의 코르셋이 된다면?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자유를 잃고 또다른 억압에 빠지게 되어 버린다면?  운동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겉모습, 현상을 따르지 않아도 마음이 같고 뜻을 함께 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조금 다르다고 생채기를 내고 싶어지진 않을 것이다. 무엇을 몸에 벗고 입었는가보다는 마음이 무엇을 받아들이고 내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마음에도 옷걸이 같은 게 있다면 비어있는 곳에 어떤 옷을 새로 입을지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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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운동이 들리기 시작하니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며 가볍게 지나가는 말, 바지보다 치마나 원피스가 보기 좋으니 자주 입으라는 말, 화장을 하고 나오면 적어도 자기를 싫어하지 않거나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남자의 말. ('세상에, 화장은 나 좋으라고 하는 건데!' 라고 했더니 머쓱해했었다) 이제는 전처럼 만큼 쉽게 듣지는 못하게 될 것 같아 반갑긴 하다. 또 새롭게 남성들에게도 눈여겨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에서 보였던 풍경들. 한여름에도 심하면 넥타이, 셔츠에 여름 정장바지, 구두, 서류가방을 들고 나니는 모습. 그들은 반대로 긴 머리가, 직장 분위기에 따라서는 개성있는 커트 역시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라면 핑크지!'라고 말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여러모로 색깔도 제한되어 보인다. 여성들은 치마와 바지를, 원피스를 번갈아 입을 수 있지만 남성들에겐 직장에서 반바지조차 쉽게 입을 수 없다. 여기에 치마나 원피스가 허락되는 일은? 글쎄, 남녀를 뒤바꿔보자는 미션이 주어지지 않고서야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화장 역시 대놓고 자유로이 하는 모습을 아직 자주 보지 못했다.

여성에겐 탈코르셋 운동이 각광이지만 남성쪽은 아직 그리 알려지지 않은 탈갑옷 운동이라 부른다 한다. 이름을 들으니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현기증에 시달리던 여성과, 그런 여성을 지키고 강해보여야 해서 갑옷을 입고 시달리던 남성이 그려진다. 과거의 기록일 뿐인가? 모습은 달라졌지만 알맹이는 여전한 듯 싶다. 너무 오래되어서 잘 벗겨지지도 않아 힘들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여전하다. 자유롭게 나의 모습을 선택하고, 나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순간으로.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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