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 그들의 연애 [공연]

내가 연애를 했던 공간
글 입력 2018.08.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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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주로 사소한 기억의 상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날의 분위기, 날씨, 느낌 그리고 공간. 모든 사건은 어떠한 공간 속에서 발생하며 우리는 공간을 통해 기억을 되새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공간을 생각하거나 당도하거나 되돌아왔을 때 우리는 공간 속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 속 가장 강렬한 감정은 아마 사랑일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어떤 높은 분께서 이르셨다. 나는 날라리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 분은 나보다 높으신 분임이 틀림 없고 옛말에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하나 더 생긴다고 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등등.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열정적인 것은 연인과의 애정(愛情)이다. 연애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서로를 인생의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약속이다. 세상에서 제일 정의하기 힘든 게 사랑인 만큼, 연애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연애라고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라면 그것은 연애가 아니고 그렇기에 이성이 아닌 동성과의 애정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연애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편적이지 않은 연애를 하는 누군가는 방도 아닌 방과 방 사이 문지방에 서 있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가 눈을 감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믿듯이, 사람들은 그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지만 그들이 그 앞에 멀쩡히 존재하며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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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세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를 대화로 담백하게 풀어 냈다. 세 사람은 여성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도 여성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글을 작성하는 나는 굳이 따지면 이성애자이지만 때로 스스로를 양성애자가 아닐까 생각하는 여성이다. 동성 연애에 거부감이 없으며 이상적인 남성 상과 여성 상이 존재하고 모두와의 연애가 가능하다고 여기지만 막상 여성과 사귈까 생각해보면 주춤하게 되는 사람이다. 연극 속 그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연애를 해 왔다. 이 연극 속에서 주로 다루는 공간은 집이었다. 집은 거주자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가장 나 다울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어 편안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곳이다. 그런 집 속에서 그들은 연애를 했다. 내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의 친한 언니는 내게 연애란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를 알기 바빠 그 말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연애를 통해 주어진 낯선 상황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일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내게 무척 당황스럽고 생소해서 첫 연애 때의 나는 상대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때의 연애를 통해 나는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었고 더욱 솔직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다. 이렇듯 연인과, 특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이렇게 날것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그들은 여자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연인을 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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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특이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가상의 인물들이 꾸며진 이야기를 과장해서 말하는 형식의 연극과는 사뭇 달랐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대화였고 그 대화의 주체는 넷이었다. 싱어송라이터 하나, 배우 둘, 관객 여럿. 관객들은 주로 듣는 쪽이었고 싱어송라이터는 가끔 노래를 불렀으며 배우들은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주제는 연애로 귀결됐다. 전 남자친구와의 나름 절절했던 연애를 마치고 누군가를 만나고 감정을 나누는 일에 완전히 질려 버렸던 터라 최근 연애와 담 쌓고 지냈던 나로서는 간만의 연애 이야기였다.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세기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친구와 내가 해 왔던 현실적인 이야기였고, 그래서 뭔가 슬펐다. 정말 평범한데 단지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연극이 될 수 있다니 이상했다.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지난 나의 연애를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를 잊고 살았는데, 무수한 방 속에서 마주쳤던 그의 까맣고 날카로운 동공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 버렸다. 지난 연애는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좋았는데, 이젠 끝났어. 좋았던 각각의 기억들을 관객들에게 빠르게 보여주면서 우리는 감히 그의 삶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이의 모습과 그를 사랑했던 공간인 방을 보며 나는 웃기게도 내 연애를 추억했다. 퀴어 연애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았다던 이 연극은 그냥 사랑 이야기였다. 정말로 보통의 사랑 이야기.

프리뷰를 작성할 때, 나는 이 연극을 보며 페미니즘과 그 속에서 여성 퀴어가 어떤 존재인지 뭔가 답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연극은 그냥 연애 이야기였고, 사는 이야기였다. 남들보다 좀 힘들게 사는 이야기일 뿐, 그 셋 속에서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교훈을 얻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바로 이 점이 이 연극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퀴어 연애라고 해서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점이 있는 존재들에게 환상을 부여한다. 게이와 레즈 커플은 다양한 곳에서 소비되는 주제이다. 연극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성과 여성 둘이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편견들과 마주하는 일이다. 편견이자 비난이고 때론 환상인 그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일반인’일 뿐이다. 나 본인이 주변의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내 이야기를 하지 않듯 그들도 굳이 나서서 하지 않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불편해지면서까지 숨겨야 한다면 그때도 이것이 자발적인 행위라 말할 수 있는가?  페미니즘이란 결국 편견을 부수는 것이다. 연극을 통해 그들은 퀴어 커플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부수었고 그로서 얻은 것은 솔직할 수 있는 자유였다.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지극히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방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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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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