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책소] EPILOGUE 취향대책소를 닫으며

글 입력 2018.08.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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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대책소] EPILOGUE
취향대책소를 닫으며



H

내가 N과 대화하며 가장 많이 한 말은, ‘뭔 말인지 알지?’였다. (그 모든 말을 적진 않았지만). 추상적인 무언가를 몸짓과 표정으로 전달하면 N은 두루뭉술한 무언가도 알겠다며 끄덕였다. 그리고 그 것을 언어화하는 것을 함께 해줬고, 가끔은 대신 말해주었으며, 고민에 따른 침묵을 기다려줬다. 무기력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던 날에도, 내게 뜻깊은 작품과 감상을 남겨주었다. 함께 대화하고 추천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당차게, '에피소드1. 밤에 우리 영혼은’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의 추천이 당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길 바란다. 가봤더니 별로일 수도 있고, 애초에 발들이기도 싫을 수 있지만, 어쩌면 이거야 말로 당신이 찾던 바로 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당찬 포부가 그간의 에피소드 열 편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H’로 존재해온 나에게는 실현되었다. 좋은 작품을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탐험이었다. 내가 찾던 바로 그 것이 아니었어도,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의미있었다.

조금의 아쉬움도 있다.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 정해진 주제 안에서 골라야 해서 추천하고 싶었음에도 지나쳤던 영화들이 있다. (문학을 소개할 때는 주제를 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글이, 혹은 새로운 우리의 대화가 이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라 믿는다. 한편,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도 있다. 끝끝내 적어내지 못하고 지워낸 많은 감상들이 있다. 정리해내지 못했지만, 담기지 못한 것은 담기지 못한 대로 사라지지 않고 ‘취향’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엉킨 생각들을 풀어 또 한 편의 글을 적어내보길 소망한다.



N

H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은 즐거웠다. 그리고 ‘우리 정말 다르구나’ 했다. 선택하는 주제나 작품, 그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 즐겨 사용하는 단어, 말을 끝맺는 방식. 그런 것들이 다 달랐다. 같은 작품을 읽고도 서로 다른 질문을 했고 하나의 질문에도 여러 답변들이 나뉘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다른 온도와 다른 질감을 느끼는 우리들이 매번 ‘잘 모르겠어’라고 하면서도 끝내 한 편의 글을 적어 나가는 게 대단했다. 게으른 나 혼자였다면 못 했을 거다. H가 짚어주는 부분들은 새삼스러웠다. 까먹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렸고 영영 알아차리지 못했을 바로 그걸 실감하기도 했다. 나의 취향을 가지고 너에게 책임지고 소개하겠다는 거창한 사명은 잊은 지 오래고, 그냥 나에 대해서 말하면 너는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고, 나 또한 너의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것만 남았다.
 
취향. 나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어서 누군가에게 꺼내 보이는 일은 어려웠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가 H를 지루하게 하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했다. 너에게 내가 사랑하는 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나를 있게 한 것들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들은 난처했고, 어설펐다. 너에게 나의 무언가 소개하는 일이 오히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버린 거 같아 미안하다. 매번 추상적인 주제를 들고 와서는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밀어 붙였던 게 미안하다. 그리고 어설프고 미숙한 나와 어느 덧 열 편의 작품을 보고, 읽고, 그리고 열 편의 글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 고마워 H.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아쉽게 끝 맺었던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의 주변을 맴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뭉개버렸던 이야기들을 언젠가 다시 H와 풀어 나가고 싶다. 우리 그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하며 다시 짚어 나가고 결들 마다 어루만지자. 바보처럼 네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네 앞에서 되풀이하고, 그런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덧붙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새 물들어 버리자. 앞으로도 너의 취향이 궁금하다.



취향대책소, 문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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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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