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문화 전반]

오늘만큼은 행복을 미루지 않겠다.
글 입력 2018.08.0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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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할 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그저 멍하니 침대 속에서 뒹굴 거리고 싶은 날. 나에겐 그 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다. 귀찮다. 졸리다. 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떼구르르 책상 앞에 굴러와 앉아있다. 오늘이 마감일이기 때문이다. 얼른 다 쓰고 침대로 다이빙하고싶다. 참으로 못된 에디터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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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에너지를 최대한 아낌으로써 생존의 확률을 조금 더 높여보려는 본능. 그것이 바로 귀차니즘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기 ‘귀찮은’ 이유는 우리의 몸이 수면 욕구의 충족을 원하기 때문이다. 공부하기 ‘귀찮은’ 이유는 우리의 몸이 뇌를 가동하는데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방출을 꺼리기 때문이며, 꺼질 듯 말 듯 한 신호등 앞에서 뛰기 ‘귀찮은’ 이유는 우리의 몸이 체력을 소진하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귀찮음’은 인간을 보호해야한다는 숙명을 지닌 충실한 라이프가드인 셈이지만, 그래도 이 친구와 한가롭게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 마냥 마음 편치만은 않다.

 
 
안헤도니아 : 행복의 유보

 

클로이와 나는 약간은 무의식적으로 헤도니아(행복)를 기억이나 기대 속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행복의 추구는 중심적 목표로 공공연히 인정되지만, 여기에는 그 실현이 아주 먼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암묵적 믿음이 뒤따른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내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속 여주인공 클로이는, 스페인 시골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급작스러운 두통을 겪는다. 그녀를 진찰한 의사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그냥 머리에 안헤도니아가 있는 것일 뿐입니다.” 안헤도니아란, 오래도록 갈망해온 행복이 갑자기 눈앞에 등장해 현재적인 개념으로 치환되었을 때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유발되는 고산병과 비슷한 증세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약간 불행하게 하는 것에 꽤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훗날을 기약하며 3평짜리 고시원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공부하고 있는 친한 언니라던가, 6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6개월동안 하루에 3시간도 채 못 자고 투잡을 뛰고 있는 친한 동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좋아하던 춤을 포기한 친구도 생각난다.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이월시키는 분위기는 어쩌다 이렇게 만연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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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인내를 발휘한 아동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확률이 높다.' 약 10여 년 전 쯤 대한민국에 돌풍을 일으킨 마시멜로 실험은 고위층 인사들과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감동을 유발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뭔 놈의 연구결과가 예쁜 분홍빛 어린이용 도서로까지 출판되어 전국 방방 곳곳의 초등학교에 뿌려진단 말인가. 이 뿐만 아니라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쟁취해낸 자들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대중매체 역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유보의 아름다움을 심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여 우리는 '언젠가는 올 그 날'을 위해 '마냥 좋지만도 않은 것 같은 오늘'을 참아내는 데 익숙해졌고, 자연스럽게 때 묻지 말아야 할 소중한 나의 행복 역시 '언젠가는 올 그 날' 위에 살포시 얹어두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행복 그 자체가 아닌 '행복에 닿는 과정'이 되었으며, 유보의 논리와는 정반대로 지금 당장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귀차니즘은 극복해야 하는 저차원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묻자. 현재의 행복을 빼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자와 함께 돌려받는 적금을 들었다고 쳤을 때, 2018년이 세상이 정말 그 적금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인가? 솔직히 말하면 난 잘 모르겠다. 현재의 행복뿐만 아니라 건강과 열정까지 탈탈 털어 넣어 두둑해져있던 수많은 청춘들의 적금이 취업난으로, 생활고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만기가 차기도 전에 와장창 깨져버리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서 말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마시멜로 실험 식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 듯 하다.



귀차니즘에게 자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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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귀차니즘은 상당히 부정적인 오명을 쓰고 있다. 지금 당장, 확실하게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적어도 행복을 갈구하는 이를 배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 친구와 놀아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재벌이나 건물주의 자녀로 태어난 게 아닌 이상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꿰찬 채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무한정 침대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 친구를 뿌리칠 단호함이 분명 필요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귀차니즘을 그저 극복해 마땅한 파렴치한 정도로 몰고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귀차니즘은 분명 행복을 유보하다가 지친 우리에게 잠시 쉬어갈 쉼터가 되어줄 수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꿈의 그 날을 위해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살아냈을 당신에게 권해본다. 이번 주말에는, 마음껏 귀찮음을 부려보는 것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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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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