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Rest 1. 위로정식, 첫 번째 밤

내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일까
글 입력 2018.08.0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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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어서 오세요 위로정식 입니다!

E 아.. 안녕하세요...

M 자리는 편한 곳에 앉으시고...라고 하기에는 제 앞자리 밖에 없네요. 편히 앉으세요

E ...

M 특별한 첫 손님이시네요


처음 와서 어색한 나와 달리 당신은 세상 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당신은 여기에서만 지내는 걸까. 그러진 않겠지만 그런 상상이 드는 사람과 공간이었다. 왠지 아무 힘든 일도 고민도 안 일어 날 것만 같은 공간. 들어오는 순간 이유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그림자 가득한 내 얼굴이랑, 나와 너무 다른 것 같아 괜히 이 공간이 어색하다. 처음이기도 하고. 


M 그래서 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볼까

E ... 불안해요,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벌써 막혀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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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위로정식, 첫 번째 밤



[5월 2일에서 3일]

누가 들어도 아무 힘이 없는 나의 짧은 한 마디를 듣더니, 천천히 선반에 있는 주전자를 꺼내 물을 담는 당신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당신의 손길을 시선으로 따라갔다. 

M 무엇이 막혔길래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E 새로 쓰는 글과 그림...인데 겨우 몇 번 써보고 벌써 막혀 버렸어요

M 음... 글이라... 아 그 전에

E ?

M 어차피 같은 사람인데 편하게 말 놔. 그게 더 좋을 것 같아


"위로정식"

뭔지도 모를 간판을 보고서도 무작정 들어온 곳. 아니 간판을 보지 않았지. 정신 차리니까 도착한 곳이 여기였고, 어느 순간 들어와 있었고, 겨우 호흡을 진정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 올 곳이 여기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말을 놓자는 당신의 말에 잠시 뭔가 해서 눈동자를 굴리다가, 당신의 편한 미소에 눈 마주치고 좀 더 마음을 편하게 놓아본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한다.


E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근데 아직 시작을 안 해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다시 고민해본다고 좀 더 시간을 가져 보기에는...

M 가져 보기엔...?

E 이미 연재하고 싶던 글을 잠시 접어두고 새로 시작한 거였어... 그래서 또 멈추려니 진짜 모든 글이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거 있지

M ...그렇구나...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게 쉽진 않지


너는 잠시 입을 열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짧은 침묵을 음미하다 평소 말을 잘 꺼내지도 못하는 사람이 울컥거렸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평소 가지던 고민이 쏟아져 나온다.


E 나는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글을 많이 써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하는데... 내 욕심인지 정말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기 싫어. 그냥 진짜...진짜 핑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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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족한 사람일까봐 무섭다.

머릿속에서 단어가 스쳐가고 다시 침묵이 시작되려는 찰나 주전자가 김을 내며 소리 내기 시작한다. 끼-끼익-. 어린 시절부터 지금도 집에 돌아가면 볼 수 있는 낡은 쇠 주전자가 내는 소리와 닮았다. 열을 받으면 김을 토하면서 투박하게 마른 소음을 내곤 했다. 이미 물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안쓰러운 마른 소리가 들리면 안타까움에 물을 더 부어 주어야 할 것만 같을 정도로. 너는 시선이 주전자에 향해있지만 계속 나의 이야기를 귀에 담은 눈치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주전자를 들어 김이 나는 물을 컵에 따른다. 잠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주전자의 마른 소음에 이어 침묵을 겨우 메운다.


M 근데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E 응?

M 아직...이라고. 지금 쓰는 글들이 최선을 다해 쓴 글들이겠지만 앞으로의 긴 시간을 두고 봤을 때는 지금의 글이 완벽한 글이 아닐 거라고 말했었잖아.

...


맞다. 그랬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자신감이 없는 나를 위로해보려고. 그리고 한편으론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러길 바라며 지금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처음 준비했던 글에서 말했었다. 너의 한마디에 기억을 겨우 꺼내는 동안 눈앞에는 까만 찻잔이 맺힌다. 따뜻하게 올라오는 김이 내 눈앞을 흐린다. 검은 잔 안에 떠다니는 레몬 한 조각이 꼭 밤하늘의 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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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맞아

E ?

M 우리는 늘 두려웠지. 맨날 두렵다면서 용케도 여기까지 왔어. 참 웃프면서도* 대단한 일이지. 무섭다고, 무섭다고 하면서 계속 걸었잖아. 마치 이미 끝이 있는 귀신의 집을 걷는 것처럼. 어떻게든 걸으면 이 무서운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웃기면서도 슬프다)


생소한 비유에 고개를 살짝 기울여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살짝 따가운 듯 여전히 뜨거운 찻잔의 온기가 좋았다.


M 그리고 지금의 넌 무서워하고만 있지 않잖아. 그걸 마주하고 선명히 보려고

E

M 아파도 그것과 대화하고 있잖아. 계속하고 있잖아. 너 사실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해주고 싶어

E

M 아직 시작이잖아. 처음이고.


그렇게 네가 말했잖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너는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것뿐인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말인데 왜 이렇게 어딘가 울컥거리는지 모르겠다.


E 내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일까? 지금도 새로 시작하는 게 무서워서 고민은 계속 쏟아지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갈 곳 없이 여기까지 온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일까?


점점 더 나를 침식시키던 의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물음표 끝에는 호흡이 이어지지 않은 채 멈춰 입 앞에서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일까? 그럴까? 답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무작정 쏟아내기에는 내가 불친절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내 속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어려웠다. 결국 여기서 토한다. 겨우 숨 쉬고 있는 기분이다. 


M 그렇게 믿어 보면 안되는 걸까?


너의 한마디에 또다시 나를 괴롭히던 물음표들의 존재가 사라져버린다. 이유를 모르겠다. 물음표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갑자기 머릿속에 여백만 가득 찼다. 아무 생각 나지 않았다. 다시 이어진 긴 침묵에 나는 차 한 모금을 입에 담는다.

'그렇게 믿어 보면 안되는 걸까'

너는 내게 다시 나를 쓰다듬어 볼 수 있는 여백을 주려는 것 같았다. 조금 여유롭게 입에 담긴 레몬 향을 음미해본다. 신향의 날카로움을 달달함이 안아주고 있었다. 그 맛이 혀를 깊게 파고들고 나는 그 가볍고 진한 무게를 느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었다. 나는 그 향의 무게를 느끼며 조금 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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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그러게, 나는 날 믿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정해진 답이 없다면 믿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좋다고 무작정 해버렸던 나를 찾을 수가 없는 것 같아...지금의 나는 세상의 시선만으로도 쉽게 무너지고 있어. 

M 사실 아무도 널 그렇게 감시하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지

E 너.. 되게 예리한 사람이구나

M 음...아니지, 생각 많은 너라면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다른 면을 봐보려고, 사실을 보려고 생각을 오래했을 테니까. 너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

E ... 맞아 알고는 있었지. 고민보다 더 작았을 뿐이지

M 그래 불안하지. 뭔들 사실 세상에 답은 없잖아. 너도 늘 그렇게 생각해왔고. 다시 생각해봐. 지금까지 두려움을 이겨냈던 순간들을

E 음...무작정 도전해보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나름...잘해온 것도 있지. 맞아 그래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면 꽤나 잘 지내왔던 것 같아. 그 힘들고 두려웠던 처음의 순간을 잘...지나온 것 같아.

M 되짚어보면 생각보다 더 자연스럽게, 그렇지?

E 지금 봐서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지, 아마 그 순간의 나는 얼마나 고민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울기도 그랬겠어. ..., 그랬지 정말 힘들어했지.


나는 너의 자연스럽게 라는 말에 반대한다. 그 순간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M 맞아


넌 모든 게 맞는 사람인 듯이 미소를 띠우며 외친다. 대체 뭐가?


M 지금 볼 땐,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도 이겨왔지만 그 때의 너는 많은 감정을 겪어야 했지. 꼭 지금 너의 모습 같지 않아?


나는 잔을 들 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겪고 있는 감정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두렵고 걱정되고, 그래서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두려워서 방황을 키우기만 하고 있는...그런 모습이. 


M 미래의 네가 지금의 널 보면 또 이렇게 말하겠지

E ...

M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알고 보니 자연스럽게 이겨내고 익숙해졌다고. 그게 지금의 나라고


부정 할 말이 사라졌다.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졌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지금까지의 내가 그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M 잘하고 있어. 힘들고 고민되고 후회되고 내가 의심스럽고 그 감정의 과정조차 포기하고 싶을 텐데도 넌 다 마주하고 있잖아.

E

M 네가 좋아한다는 마음, 그래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증거야. 그래서 고민하고 후회하고 의심하고 그렇게 힘들면서

E

M 계속하려고 하고 있잖아. 좋아하는 만큼 잘하려는 그 마음 언젠가 드러나겠지

E

M 지금의 너처럼. 과거보다 더 좋은 걸 그려내고 있는 지금의 너처럼. 지금처럼 더 좋은 걸 하고 싶어서 묵묵히 계속 그 시간을 걷는 너처럼


모든 생각을 포기했다. 모두 사실인 것들에, 부정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사실에, 그것들을 천천히 읊는 것만으로도 나는 잊고 있던 ‘나‘라는 의미를 찾고 있었다.


M 지금 하는 것들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라고 무서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과정이라면, 그 마음이 있다면 결코 아무 이유 없는 게 아닐 거야

E ...고마워...

M 고맙긴 뭘, 다 네 말해 준 것들이잖아

E ...하긴


나는 생각해보니 진짜 그래서 뜬금없이 웃음이 터지고 만다. 바보 같이 내가 말해놓고 내가 잊어버리고 다시 들었는데 마냥 처음 듣는 거 마냥 울컥거리고 있었다. 눈꼬리에는 미소가 걸쳤는데 물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웃는 나를 보고 웃는 너와 눈을 한번 마주치고 어느새 미지근해진 차를 마저 마셨다. 몸에 따뜻한 기운이 맴돈다. 얼마만의 따뜻함일까. 이 생각이 들 정도라면 꽤 냉정하기만한 시간을 보내왔던 걸까


M 손님, 오늘 너무 늦게 와서 간단한 차만 해준 거야. 그냥 푹 자 오늘은

E 안 그래도 그럴 거야

M 전 보다는 밤은 잘 챙기고 자서 다행이네


너의 말에 불과 한 달 전 그냥 자는 것조차 불안해서 억지로 뭔가를 해야 했던 내가 떠오른다. 그래 그 아픈 과정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어서 다행이야. 잠을 꼬박꼬박 자려고 하는 내가 있어서 다행이야


M 언제든 또 와


나는 잔을 살짝 너에게 밀어두고, 처음이라 여전히 어색한지 삐꺽거리며 안녕 한답시고 손을 들고 흔든다. 뭔가 고개 숙이는 건 이상한 것 같아서. 너는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이 '풉' 하고 한번 웃고 나를 괜히 따라하며 손을 흔든다. 마지막에는 웃어보는 게 위로의 마무린가, 또 생각하는 습관이 튀어나와서 괜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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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 밖은 여전히 비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새벽공기의 눅눅한 가벼움이 괜히 좋다.
그래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순간일거야,

용기 있는 멋있는 사람이라고
....
흠..
음....
어색하지만 믿어보자.



[7월28일]

그렇네, 네가 맞았어.





*

next.

일상이 궁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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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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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나옹
    • 잔잔한 그림 조각들만으로도 가게 안 풍경이 그려져요. 제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가게 안 고양이가 되어서 같이 대화를 듣는 느낌이에요. 고양이도 위로받고 갑니다. ㅎㅎ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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