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사각형 틀 속에서 벗어난 1박2일 강릉속초여행 [여행]

벗어나자, 그 속에서 걸어나오자.
글 입력 2018.08.0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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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고 네모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자친구와 1박 2일로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나에게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행은 낯설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무조건 타인에게 맞춰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노는 것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대학교 1학년 때 동기 셋과 부산으로 3박 4일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술과 곁들이는 안줏거리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 셋은 밖에보다는 안락한 호텔에서 카드게임을 하는 걸 더 좋아하고 여행 가서도 늦잠을 꼭 자야 하고, 맛집을 가기보다는 호텔 조식 뷔페를 좋아하는 애들이었다. 게다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도 바닷물이 찝찝해서 싫다는 이유로 파라솔 밑에 두 명이 앉아서 쉬고 있고 여행경비를 아끼자며 튜브를 하나만 빌려서 수영 못하는 사람 둘이서 튜브로 번갈아가며 노느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여행이 다행히 친구의 아버지 지인의 호텔 찬스로 3박 4일간 15만원 정도밖에 경비가 들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기기보다는 호텔에서 놀기밖에 안 했던 터라 여행이라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타인과 동행하는 것은 기회비용이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왔다.

그 이후로 3년간 누가 여행을 가자 하면 피했다. 주말엔 혼자 서울을 구경하는 게 취미였고, 맛집과 카페도 혼자서만 찾아다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귀찮고 시간 낭비에 돈 낭비일 뿐이라고만 여겼다. 약속을 정말 거절할 수 없을 때만 한번 시간을 내서 누군가를 만났고 내가 먼저 어디를 가자고,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러다 이번 해 1월 초에 고등학교 동창 4명이서 중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해서 초특가로 뜬 비행기 항공권을 샀다. 해외여행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설렜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교친구랑은 달리 서로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양보해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건축학과 4학년 1학기를 보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짓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잘나가는 파전집의 서빙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벌어 6월쯤 100만원 가량을 모았다. 그 정도면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방학을 버틸 수 있는 돈이라 안심할 수 있었다. 여행날짜를 기다리며 알바를 마무리하고, 여권 준비도 하고 일정도 짰다. 그러나 친구의 이기적인 실수 때문에 중국에 가는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고,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항공권 수수료와 호텔수수료 등의 각종 수수료만 거두고 사라져버렸다. 4개월간의 치열한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레깅스와 뷔페에 돈을 지르며 온갖 보상행위로 그동안 모은 돈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을 증오하고, 사람을 더 불신하게 된 것 같다. 여행으로 한 번에 돈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일상에서 소소하게 누리는 행복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도 두려웠고, 출발하기 하루 전까지도 조마조마했고 여행이 끝나기까지 내내 불안함에 시달렸다. 남자친구와 사이가 더 멀어지거나, 아니면 내가 꾹 참고 또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여러 명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단둘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것이고, 둘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부담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숙소 비도 둘이서 감당해야 하니 예산만 17만 원이 들어가는 여행이라 대학생에 돈도 벌지 않는 신분이라 경제적인 타격도 꽤 걱정스러웠다. 이미 수영복을 산다고 1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투자했기 때문에 여행경비가 더 나오면 어쩌지 종일 고민했다. 경비를 조금 줄이려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르거나 찜질방이라는 대안도 있긴 했지만 한번 가는 여행인데 조금 더 투자해서 좋은 펜션이나 호텔에서 머무르고 싶기도 했다. 우리 둘 다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그러는 건 너무 과한 것 아닐까 함께 걱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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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마가 끝나고 단 한 번도 오지 않던 비가 갑자기 내리니 당황스러웠다. 첫날에 해수욕장을 가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약간씩 그쳐가던 비는 마침 출발할 때 멎었지만, 강릉에 진입하니 폭우가 되어 거의 앞도 보이지 않는 채로 운전해야 했다. 첫날 일정은 그렇게 완전히 틀어졌고 횟집도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아서 먹지 못했다. 그러나 강릉 항에서 같이 손을 잡고 걸으면서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 다녔고, 강릉 카페거리에서 가장 높은 카페에 들어가서 앉아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비록 여행계획이 틀어졌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라 다행이라고, 조금 아쉽다고만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갔고 야식과 맥주를 마시고 보드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자친구는 아주 예민하고 나는 아무 데서나 잘 자는 편이다. 나는 진짜 등을 붙이면 거짓말처럼 코를 골고 잠이 드는데 남자친구는 약간의 미동이나 소리만 있어도 쉽게 잠을 깬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나는 하루에 네다섯 번은 잠에서 깨서 물을 마시고 소변을 누고 바로 잠에 다시 빠져드는데 남자친구는 한번 잠들면 12시간 넘게 깨어나지 않는다. 대신 깨면 다시 잠들지는 못한다. 여행을 가서도 여느 때처럼 새벽에 눈을 떠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약간 움직이기만 해도 남자친구가 깰 걸 아니까 최대한 참다가 겨우 소리 없이 움직여서 냉장고 앞에 가서 살뿐 앉았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에 침대를 흘깃 봤는데 이미 남자친구는 깨서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서 한참 사과를 하고 소변을 다 보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보니 남자친구는 그 뒤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차라리 트윈베드가 있는 펜션을 고를 걸 그랬나, 완전히 후회됐다. 여행은 휴식을 취하려고 가는 건데 나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 그에게 정말 미안했다. 아침 일찍부터 부랴부랴 준비해서 여러 일정을 소화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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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순두부집으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 있어서 일찍 갔지만 이미 대기번호는 152번, 30번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남자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는 이왕 왔으니 기다려서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나 혼자였다면,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그냥 기다리지 않고 대충 주변에 것으로 때웠을 텐데 그의 생각이 신기했다. 내 제일 친한 친구도 남자친구와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졌다. 전에 생일선물로 빕스를 사준다고 했는데, 2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나는 다른데로 가자고 했지만 친구는 이왕 먹을 거 빕스를 먹자고 해서 2시간을 꼬박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나 혼자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릉까지 왔는데 자주 올 수도 없는데 진짜 맛집에서 먹는 게 맞는 거겠지? 생각했고 대기를 했다. 아침 먹는 거라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우리의 순서가 왔고 짬뽕 순두부와 강릉초당 순두부 반 모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기다린 가치가 있었다. 맛집을 웨이팅한다는 건 이제껏 귀찮고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초당 순두부는 마트에서 파는 두부와는 식감과 맛 자체가 달랐고 이제야 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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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일상에서는 전혀 접하지 못하는 것을 접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밥 먹는 내내 웃고 수다를 떨고 음식을 극찬했다. 깻잎에 두부를 싸먹는 게 맛있다고 얘기하면 남자친구가 싸먹어 보고 자기 취향은 아니라 하고, 내가 맛있어서 다 먹었더니 또 갖다 주기도 하고 끝없이 이야기하고 움직였다. 아주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멀리 앉아있던 아줌마가 우리가 먹는 두부를 보더니 맛있겠다, 고 부러운 눈길로 중얼거리는 것도 봤다. 우리 옆에는 그사이에 두 커플이 앉았다가 나갔는데 그 사람들은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마다 옆 테이블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남자친구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커플은 왜 그렇게 재미가 없느냐고 하더라. 정말 아침 일찍 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아직 서로가 어색한 걸까? 아니면 이미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없는 걸까. 다른 커플을 보며 우리 커플은 3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할 말이 너무나 많고 궁금한 것도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의 사귐은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밥 먹는 것 말고 다른 활동을 할 때도 서로에게 그런 태도일까? 조금 궁금하다.

그 뒤에 하슬라아트월드와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정동진으로 향했다. 내가 평소에 전시회를 보는 걸 좋아해서 일정으로 하슬라아트월드를 추가해 피노키오미술관에 들렀다. 남자친구는 전시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를 배려해준거다. 고마웠다. 하슬라는 고구려 시대 때 강릉의 옛 명칭이라고 한다. 하슬라, 라고 불렀다니 너무 외국스러웠다. 거기서 예상치 못하게 정말 내 취향을 저격한 그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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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커다란 얼굴 아래로 깊은 바다와 종이배 위에 어떤 소녀가 있는 그림이었다. 전체적으로 깊숙한 진한 푸른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걸 보며 해녀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 바로 ‘모아나’가 떠올랐다. 모아나는 바다로 가고 싶었지만 섬에서만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운명을 이겨내고 자기 힘으로 바다에 나가는 것을 극복했던 아이다. 같은 바다에서의 삶을 다루어서 모아나가 떠올랐지만 모아나의 이야기와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는 상반되는 것 같다. 모아나는 운명을 개척하고 자기 힘으로 이겨냈지만, 그림 속의 할머니 해녀는 자기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증거가 종이배다. 힘도 없고, 금방이라도 물에 젖어 빠져버릴 것 같은 종이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녀 시절의 해녀가 그 장대한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할머니 해녀는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할머니 해녀는 결국 바다에서의 그녀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아온 것 같다. 운명을 벗어나는 것과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의 차이를 보았다. 아마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 아닐까. 그 뒤로 같은 종이배 이미지를 가진 그림을 두 개 더 보았지만, 그 그림만큼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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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로 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징그러웠지만 인상 깊었고 실내에서 실외로 이동하는 길에 터널을 설치했다는 점도 신기했다. 동선을 동선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마저 전시회의 일부로 여긴다는 생각 등 예상외로 볼거리가 많았던 전시관이었다. 야외전시장도 있었는데 레일바이크를 타러 급하게 가느라 등산하다시피 급하게 올라왔다 내려가서 조금 아쉽지만, 우리 둘 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밥 먹고 소화한다는 느낌으로 15분 급하게 산책을 했다.

그렇게 급하게 갔건만 정동진 레일바이크는 1시가 이미 매진되어 2시 바이크를 타야 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또 분명 아쉬워하면서 다음 일정을 향했을 텐데 남자친구는 기다렸다가 타자고 했다. 기껏 이까지 왔는데 안 하고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자고, 주변에 카페를 들러 한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비싸고 바깥의 정동진 풍경은 무척 예뻤다. 커피 맛은 아메리카노였지만 이상했다. 남자친구가 여기 커피를 태워서 그런 맛이 나는 거라고 말했다. 커피 중독인 그가 하는 말이라 그렇구나, 생각했다. 커피가 몸에 잘 받지 않기 때문에 더 마시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아서 1/4 정도만 마시고 거의 남겼다. 평소에 sns를 잘 하지 않는 남자친구는 여행에 신이 났는지 열심히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굳이 여행을 와서까지 핸드폰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 작고 네모난 휴대폰 속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구나. 그 가상의 세계와 남이 먹는 것, 입는 것 등 남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이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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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다. 열심히 허벅지 운동을 할 걸 예상했는데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전동레버를 밀면 앞으로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아쉬웠다. 출발할 때 맨 앞에 바이크에 탄 여자 둘이 속도를 내지 않고 끝없이 사진을 찍는 바람에 전체 바이크가 거북이 속도로 달렸다. 바이크에서 잠시 내려서도 각자 사진만 찍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데 왜 같이 여행을 왔는지 정말 의아했다. 그 사람들의 행동에 피해를 본 뒷사람들은 무슨 죄인 지 싶었고 자기들이 한 행동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 했다. 저 사람들은 여행을 와서도 여전히 “갇혀있구나.” 그게 자신들이 원하는 삶이라면 행복하겠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될 텐데. 전시회를 가서도 셀카를 찍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돌아오는 바이크는 남자친구와 내가 첫 번째 바이크를 타서 한 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더니 금방 돌아왔다. 우리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도 엄청난 속도로 착착 도착했다. 내려서 잠시 이야기를 하며 풍경을 바라보다가 경포 해변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비키니로 갈아입었지만 거친 파도 때문에 해수욕을 즐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거금을 주고 산 수영복의 하의가 물에 젖으니 속이 다 비치는 바람에 바지를 하나 더 입고 움직여야 했다. 너무 속상하고 우울해서 놀기도 싫어지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1-2만 원이면 모르겠는데 10만 원이라는, 내가 사본 옷 중에 제일 비싸게 산 옷이 그러니 너무 속상했다. 물에서 나와 있으니 조금 추워지기도 해서 더는 물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남자친구가 겨우 설득해서 물에 조금씩 들어가도 보고 파도를 맞기도 하고 다시 재밌게 놀게 되긴 했는데 우울해 해서 남자친구도 꽤 힘들었을 것 같다. 파도를 맞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으면 안내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오라고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할 정도로 집중해서 재밌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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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샤워실에서 덜덜 떨면서 겨우 샤워를 끝내고 속초로 향해 유명한 해전 물회와 오징어순대를 먹고 이것저것 야식을 사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해전 물회는 2인에 4만원, 오징어순대는 만원으로 우리가 먹은 식사 중에 제일 비싼 식사였다. 그만큼 전복, 해삼, 멍게, 세꼬시 등 신선한 회들이 잔뜩 들어가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입맛도 정반대라 싸울 일이 전혀 없다. 그는 전복, 해삼, 멍게를 좋아하고 나는 세꼬시 등 생선을 좋아한다. 치킨을 먹을때도 그는 퍽퍽살을 좋아하고 나는 목살, 날개살을 좋아한다. 그래도 그런 것은 같이 먹을 수 있는데 그는 냉면, 짜장면, 국수 등의 면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밀가루는 전혀 소화시키지 못해서 못 먹는다. 그러면서도 튀김은 좋아해서 돈까스, 분식집 튀김, 떡볶이, 순대는 좋아해서 매번 먹을 때마다 체하지만 남자친구는 또 분식같은 그런 음식은 전혀 먹지 않는다. 우리가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지만 이렇게 한 쟁반에 나오는 음식을 싸우지 않고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버리는 게 없다고 해야 하나? 오징어 순대는 난생 처음 먹어봤는데 오징어 안에 쌀밥, 당면, 각종 고기, 야채들이 돌돌 말려서 들어있고 그걸 밀가루와 계란물을 묻혀서 전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거였다. 완전 내 취향저격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고 어두웠다. 잠을 얼마 자지 못한 남자친구는 너무 힘든지 스스로 볼을 자꾸만 때렸다. 지나가는 휴게소마다 다 들러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에 속상했다. 나 역시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는지 배가 계속 아프고 휴게소에서 설사하기도 하고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돌아오는 차에선 내가 운전했을 텐데 정말 미안했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을 내가 옆에서 설명해줘야 하는데 차와 도로에 대해선 전혀 몰라서 몇 번이고 빙빙 돌아가느라 더 미안했다. 하마터면 돌아오는 길에 울고 싸울 뻔해서 조금 더 조마조마했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5분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둘 다 조금 괜찮아진 상태로 남자친구의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그의 부모님과 함께 넷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순대와 닭강정을 먹고 있자니 고향에 온 것 같았다. 그의 부모님께서 집까지 태워다주셨다. 우리는 각자 씻고 다시 깨끗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새벽 4시까지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온종일 이틀간 붙어있었는데도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았다. 계속 같이 있으니 떨어져 있는 순간이 너무 공허해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서로에게 중독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집으로 가자마자 그는 탈진하듯 잠들어 12시간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또 9시 반쯤 되니 눈이 떠져 피곤한 상태로 활동하긴 했지만, 그는 정말 피곤했나 보다.





남자친구와의 1박 2일 여행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서로에게 맞춰준다기보다는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데도 전혀 싫지 않았고 오히려 여행 내내 할 말이 너무 많았고 신났고 잠시 우울해져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첫날은 비록 날이 안 좋아서 일정을 다 취소했지만 둘째 날에 그 일정들을 몰아서 하느라 또 피곤하긴 했지만 정말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몇 달간 골칫거리였던 폭식증과 식이장애도 그와 있으니 전혀 없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기분을 공유하고, 나는 음식을 혼자 먹는 외로움과 혼자 노는 외로움에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집에서 혼자가 되니 그 지긋지긋한 식이장애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끔찍한 식이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조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에겐, 관심을 돌릴 거리가 필요했다. 환기할 수 있는 전환점이 필요했고 음식을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했다.

곧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번 고향에서도 나의 식이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몇 가지 얻어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점점, 작고 네모난 핸드폰 속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가고 있다. 현실 속에서 사는 건 조금 힘들기도 하고 갈등도 많지만 남의 삶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 더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세상이다. 벗어나자. 정말로 벗어나자.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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