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로에게 영원히 빛나길 [영화]

세상이 무너질 만큼 아픈 날에도 태양은 빛나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8.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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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는 한 해를 넘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어느 드라마 속 대사처럼 나도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건 서로에게 너무 큰 거짓말이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가며 편해진 만큼, 서로의 부주의로(주로 나의) 크고 작은 생채기를 가슴에 남겼으니.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맞은 너의 생일날.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던 네가 생생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내가 많은걸 바랐던 거냐며 억눌렀던 서운함과 원망을 쏟아내는 너의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항상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런 자기 모습조차 싫어진다던 너의 말, 그 울먹임, 그 눈물 자국...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다시 잘 만나고 있는 우리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은 네 옆의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너의 마음은 어떨까. 괜찮다고,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헤어짐을 입에 올렸던 그 기억이 정말 사라진 걸까. 겨우 봉합해 놓은 상처가 다시 곪아 터지는 건 아닐지. 네 카톡, 네 말투, 네 표정 하나하나 신경 쓰는 내 마음을 너는 알까. 제발 몰라라. 제발 몰라라. 그리고 제발 다시는 서로 상처주지 말자. 기도하며 너를 만나는 요즘이었다.

'제발...'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간절한 기도는 보통 이뤄지지 않더라. 우리는 또 다시 서로에게 서운했고, 다투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아프고, 아프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문학에서나 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숨이 턱 막힐만큼 가슴이 아리더라. 내가 그랬으니, 너는 어땠을까. 헤어짐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지쳐버린 우리들. 다시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돌아가면 되돌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선샤인 2.jpg
 

얼마 전 <이터널 선샤인>을 우연히 다시 보았다.

사랑했던 기억들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악몽이 된 두 남녀,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서로를 기억에서 지운다. 영화의 마지막에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쌓아가는 둘에게 얄궂은 운명은 또 하나의 시련을 준다. 그 둘은 싸우고, 헐뜯고, 욕하고, 미워하고, 치가 떨리도록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다시 마주한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녹음파일을 통해서. 지금의 감정은 순간이라고, 곧 서로에게 거슬리고, 지루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괜찮아.”라고 한다. “뭐 어때. 괜찮아.” 둘은 서로를 다시 끌어안는다.
 
아무래도 좋다는 말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어떤 상처가 남아도 나는 네가 좋다. 네가 나에게 한 괜찮다는 말이 영화 속 ‘괜찮아’와 같은 의미가 될 때까지 나는 네 옆에 있고 싶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아마 시간이 제법 흘러도 네 옆에서 눈치를 보며 벌벌 떨고 있을 거다. 같은 이유로 너를 상처입히고 후회할 거다. 이건 그 때의 우리를 위한 글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아픔을 주고받게 되더라도 “뭐 어때. 괜찮아.”하며 서로를 받아주기를.

부디 그 때의 나는, 아니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안아주며 만나고 있기를. 아무리 아픈 상처를 겪은 다음 날에도 빛나는 태양처럼 우리의 만남도 그렇게 빛나기를.


선샤인 3.jpg
 

[백광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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