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충격과 놀람, 그리고 행복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첫 단독 서울전시 리뷰
글 입력 2018.08.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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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놀람, 그리고 행복
-니키 드 생팔 展 리뷰-


사정상 표를 수령하고 이틀이 지난 금요일에야 전시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프리뷰를 작성하면서 작품도 찾아보고, 작가의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니키 드 생팔의 전시는 내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세 시간 동안 ‘힐링’받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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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열고 들어가서 마주한 니키 드 생팔의 첫 작품은 사격 회화였다.

더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시원한 곳으로 들어와서 소름이 돋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작품을 보고서 소름이 돋았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평소 선호하던 아기자기하고, 작고,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기괴하고, 무서웠다. 분노를 시각적으로 아주 잘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작품을 딱 접했을 때 ‘아, 이 사람은 무엇인가에 화가 났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총을 쏘아 깨지고 부서진 부분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피처럼 흘러내리는 물감은
아픔을 환기시키는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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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에 따르면 니키의 분노는 가부장적인 것, 권력, 가톨릭 사회, 고전적인 예술, 그리고 정치가로 그 공격의 대상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분노가 일시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득권에 대한 반항이 예술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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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회화보다도 시선을 더 잡아끌었던 작품은 ‘붉은 마녀’다. 거대한 크기의 피처럼 붉은 조각이 눈앞에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니키의 유년시절과 그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상상해보며, 나는 ‘붉은 마녀’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희생당해왔던 수많은 여성들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밧줄로 된 머리카락은 메두사의 뱀 같았고, 중앙 부근의 성모 마리아 상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조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하단에 있던 마네킹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코르셋을 의미한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남성의 머리와 아기의 형상은 가정과 아이에 관해 여성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직접적이고 격렬하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작품은 처음 보아서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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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충격적인 세 개의 작품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나나’가 등장했다. 니키는 친구가 임신한 모습을 보고 ‘나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나의 머리는 작고, 몸집은 크다. 여러 명의 나나는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을 사용해 뚜렷하고 밝은 인상을 남겼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나나는 몸이 연두색이기까지 하다. 니키가 보여주고 싶었던 여성상은 아마 사회가 요구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여성의 조각은 가만히 서서 얌전하고 예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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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덩어리지만, 그 어떠한 섬세한 조각보다 활력 있고 아름다웠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들을 보면 아주 섬세하고 예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아 정말 아름다운 조각이야. 근데 실제로 내 몸이 저렇게 될 수는 없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나 시리즈는 친근하고 어딘가 귀여웠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나의 얼굴 표정이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나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미소를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분명 화내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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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서 노란 눈, 파란 눈, 알록달록한 코, 초록색 입술, 빨간색 머리카락에 얼굴은 반은 하얗고 반은 까만 거대한 얼굴 조각과 마주했다.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멍해 보이기도 하고, 퉁명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모습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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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지구본을 뱀이 감고 있고, 그 위에 지구본을 밟고 선 나나가 있다. 팔다리를 쭉 뻗은 나나는 생동감 넘치고, 거리낄 것이 없어 보인다.

색깔뿐만 아니라 나나의 몸짓이 동적이지 않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항상 팔과 다리를 춤을 추듯 쭉 뻗고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만든다. 니키가 그리고 만든 여러 명의 나나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니키도 나나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치유했을까? 내가 느낀 사격 회화가 공격적인 분노의 표출이라면, 나나는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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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에게 장 팅겔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였다. 니키의 희로애락이 7개의 그림에 담겨 있었다. 왜 나를 사랑하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왜 나를 떠나갔는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다 한 번쯤은 해보았을 법한 생각들을 니키는 자신만의 색채(형광색!)와 곡선을 사용한 그림들로 표현했다. 마치 책 속의 일러스트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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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쭉 둘러보면서 니키의 그림을 알아봐 주고 알려준 요코가 참 고마웠다! 요코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내가 니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두 사람이 나눈 그림 편지들을 쭉 둘러보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귀여웠다! 다 큰 성인들이 그림 편지라니!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담긴 편지들의 내용은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일본에 갈 생각에 두근두근했다는 것, 예쁜 기모노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것 등. 지금처럼 카카오톡이나 이메일도 없었던 시절, 시간을 두고 도착하는 편지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편지들 중에 스티커를 이용한 작품도 있어서 신기했다. 그때에도 벌써 ‘스티커’라는 개념의 물품이 있었구나 싶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편지를 하나하나 보관하고 있었던 요코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편지라면 읽고 어딘가에 두고 잊어버리거나, 청소를 할 때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니키에게 요코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였을 것 같다. 팅겔리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동반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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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작품은 새롭다. 스티커를 사용해 편지도 쓰고, 반짝반짝한 비늘 스티커로 부처의 형상을 한 콜라주를 만들기도 하는 등 어딘가 톡톡 튀고 재미있다. 엄청난 크기의 반짝거리는 부처상을 타일을 이용해 만드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림 편지를 비롯해 그녀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니키가 스스로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로 표출하고,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니키가 더 대단하고, 더 멋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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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모티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탁월하게 소화해낸 니키의 조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존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게끔 유지하고 거기에 한두 가지 뚜렷한 변화를 주어 니키만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나나와 여러 그림 편지들에서 자주 보아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과 색을 그대로 써서 재창조한 스핑크스도 있었고, 여러 가지 토템은 환상 세계의 이집트 벽화를 보는 것처럼 새롭고 알록달록했다.

짝거리는 비늘을 사용해 만든 콜라주 작품도 여럿 있었다. 앞서 ‘사격 회화’와 ‘붉은 마녀’를 만든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니키 드 생팔의 전시는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볼거리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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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카드를 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니키 드 생팔은 역시 멋진 작가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않았지만 가우디의 공원만큼이나 멋진 장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꿈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달의 여신’. 달을 ‘선’으로 표현할 생각을 하다니... 반짝거리는 유광 조각들도 좋지만 광택이 없는 무광 조각만의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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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타로 공원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을 한참 보다가 나왔다.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그녀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작품들처럼 분명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아름다운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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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대하고 갔던 전시인 만큼 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에 그녀의 삶, 가치관,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그 어떤 전시보다 작가를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서 스치듯이 보고 지나간 작가였는데, 이제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니키 드 생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여성 작가들의 전시가 더 많이 열려 그녀들의 작품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적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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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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