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함은 에너지이다 : 삶의 예술가 니키 드 생팔展

전시 <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 리뷰
글 입력 2018.08.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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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가득 채운 건 단 한 사람의 에너지였다. 그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도 불리고, 그의 어두운 유년시절과 개인적인 상처로도 많이 회자되는 작가이지만, 내가 본 그는 무엇보다도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작가였다. 지난 6월 30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는 그의 ‘살아있음’이 온전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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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현대 미술가였다. 유럽, 아니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파리에 있는 스트라빈스키 분수도 그의 작품인데,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어쩌면 한국에도 꽤 알려진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의 이름은 생소했고, 그의 세계는 낯설었다. 그리고 이 낯설음은 단지 내가 처음 접한 작가여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크고, 과장되고, 과밀했다. 그의 작품 자체가 거대한 힘, 에너지였다. 그의 작품에 담긴 역동하는 삶의 에너지가 나에게는 낯설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음에 익숙해져 그것을 망각해버린 나에게, 그는 낯선 삶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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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명했다. 니키의 삶에는 숨김이나 꾸밈이 없었다. 그의 인생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한 전시 구성이 뒷받침되어, 그의 삶과 에너지는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었다. 전시를 따라 그의 작품을 새겨나가다 보면, 그의 삶이 보이고 그의 생각이 들리고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그의 삶은 일관되거나 통일되지 않았다. 부침을 거듭하고 격렬하게 변화하고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그 역동적인 변화의 궤적을 밟아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에너지에 흠뻑 젖게 되었다.

전시의 문을 여는 것은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였다. 이 작품은 니키의 개인적인 상처에서 탄생했다. 니키는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11살 때에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다.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으나 전학과 자퇴가 이어졌던 그의 학창시절 역시 순탄치 못했고, 첫 번째 결혼생활 또한 니키에게 가부장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강요한다. 결국 한창 꽃피울 나이인 스물 네 살의 니키는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절망에서 니키를 꺼내준 것은 미술, 바로 이 사격 회화였다. 사격 회화는 물감이 든 깡통이나 봉지를 매단 석고 표면에 총을 쏨으로서 만들어진다. 그의 총은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와 남성, 나아가 기독교 사회와 가부장제 및 고전예술과 같은 모든 권위로 향했다. 총으로 구멍이 뚫리고 사방이 일그러지고 뒤틀린 그의 사격 회화는 니키의 분노, 증오, 파괴심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작품이 끔찍하고 기괴할수록 그의 내면의 상처가 깊다는 것이, 그만큼 그가 아팠다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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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격 회화에서 뒤를 돌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나나(Nana) 연작이었다. 내면의 아픔을 쏟아내던 사격 회화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아우라에 잠시 멍해졌다. 드로잉부터 조각까지, 모든 나나들은 경쾌하고 화려했다. 그들은 위쪽으로 바깥으로 튀어 올랐고, 힘을 발산했다. 앞선 사격 회화가 부정과 파괴의 작품이라면, 나나는 굉장한 긍정의 작품이었다.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긍정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복잡한 곡선들로 뒤덮인 나나들은 작품성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고 그 메시지 또한 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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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그의 세계는 더욱 놀라웠다. 예술에서 삶의 힘을 찾은 니키는 자신의 예술을 무한한 상상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설화, 전설, 우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인간의 정신성과 상상력을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이집트 신화를 형상화한 조형 작품, 인생의 여정을 상징하는 뱀의 이미지, 다양한 동물들을 니키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곡선으로 그려낸 채색화 등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기대가 컸던 작품 ‘해골’은 압도적인 화려함도 매혹적이지만, 죽음마저 신화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니키의 예술성이 보여 그 매력을 더했다. 그리고 전시 후반에 소개된 ‘타로 공원’은 이러한 그의 상상력과 예술성이 집대성된한 거대한 작품이자 프로젝트였다. 각종 상징과 상상으로 가득한 타로 카드는 아마 니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을 것이다. 인간 정신이 만들어 낸 무한한 환상, 그 신비로움에 대한 니키의 열정이 그대로 담긴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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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에너지는 작품의 색채만큼이나 강렬하고, 작품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했다. 과잉되고 압도적인 그의 에너지는 그러나 부담스럽거나 위화감을 주지 않았다. 그저 유쾌하고 밝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그의 작품이 대체로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곡선을 많이 써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 니키의 사랑이라고 답하고 싶다. 상처로 뒤덮인 그의 유년과 20대 초반까지의 삶을 그는 예술과 더불어 사랑으로 이겨냈다. 그의 연인이자 평생의 동료였던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 그리고 니키와 20년 우정을 쌓은 그의 친구이자 이번 전시의 컬렉션을 소장한 요코 마즈다 시즈에(Yoko Masuda Shizue)와의 각별한 관계가 니키의 그림과 편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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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만세’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 아마 장 팅겔리와의 사랑을 그림으로 옮긴 작품일 것이다. 재미있는 이름에 웃음이 나면서도 이런 니키가 존경스러워졌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그가 다시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팅겔리와 요코, 나아가 대중과 이 세계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었다. 그것도 정말 넘치게 주었다. 니키의 작품들은 강하지만 상처주지 않고, 거대하지만 억압하지 않았다. 아마 니키 자신의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니키의 삶은 에너지 자체였다. 자신을 파괴한 것에 그 파괴를 되돌려 주는 총알과 같은 에너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무한히 긍정하는 유쾌한 에너지, 인간 정신과 상상력을 한없이 탐험하는 신비로운 에너지. 그리고 자신을 있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에너지. 그의 작품은 그가 사랑했던 이 세계와 대중 속의 한 존재인 나에게 이렇게 답한다. 살아있음은, 존재함은 곧 에너지이다. 설령 그것이 슬프고, 아프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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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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