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우연, 일상, 평범함

도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글 입력 2018.08.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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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을
특별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다들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을
특별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는 더 끌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자꾸만 평범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사울 레이터라는 인물을 만난 것이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 All about Saul Leiter -

{Preview. 우연, 일상, 평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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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관심 혹은 가치를 품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정말 두근거릴 것이다. 적어도 마음은 "정말요? 저도 그래요!"라고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을 놓치지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이유는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리고 살아왔는지. 사울 레이터의 소개를 읽은 나의 마음이 그랬다. 그가 추구하던 가치 혹은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요즘 찾아다니는 것과 너무 닮아있었다.

그만의 시선을 가지고 '사진'이라는, 나의 관심사 '미술'의 옆 동네에 있는 듯한 예술 세계에서 작품을 남긴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냥 이야기도 아니고 이 책에 담긴 것이 '모든 것'이라고 한다면 이 도서를 향한 마음을 접어두기에는, 접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음, 컸다기보다는 사울 레이터에 대한 소개를 읽고 나서 여운처럼 남은 몇 가지 단어들이 계속 내 공감선을 댕댕 울리고 있어서 쉽게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소개만으로도 내 공감선을 툭 건드렸다면, 그렇다면 떠오르는 예상이 이 책을 읽을 때 이 이야기가 내 공감선을 마구 연주 할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면 이 공연의 기회를 그저 흘려보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나 나의 공감선을 건드리던 단어는

"우연, 일상, 평범함"

이 세 단어였다.



우연으로 지어진 시



"그의 작품은 사진이라기보다
이야기이며 한 편의 시다."

- 기획 노트 中


그가 '우연히 발견된 거장'이라는 단순한 소개만으로 '우연'이라는 단어가 여운으로 남은 것이 아니었다. 사울 레이터에 대한 사진을 보며 혼자 떠올린 다른 맥락의 '우연'이었다. 그게 무슨 맥락의 우연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시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단순하게 그의 사진 한 장을 보고 한 눈에 '이건 우연의 순간이야'라고 느낀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한 장에서 '우연'을 보았다는 설명만으로는 이 프리뷰를 읽을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책을 만나기 전에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함께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사진 감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내가 느낀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page 45.jpg
 

이 사진이었다. 오죽하면 읽고 있던 도서 소개는 안 읽고 사진을 꽤나 오래 봤던 것 같다.

옆모습으로 서있는 사람의 형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살짝 숙인 듯하다. 그 다음에는 사람 뒤 무채색 속에서 유일하게 밝은 색채를 띠는 노란색 차(라고 나는 보았다)가 보인다. 그러나 이 노란색은 회색빛의 공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차분하게 빛을 절제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차분하고 칙칙한 공간의 느낌을 더 자아내는데 무게를 더하는 듯했다.

이렇게 감각하자마자 이곳은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진 속 그는 아마 이 도시 속에 있는 '어떤 사람'일 것이다. "저곳은 어디일까,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무의식적으로 드는 상상 끝에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것들은 '특별한 것'보다는 '사소한 일상의 어딘가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저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의 순간. 어느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우연의 순간.

그리고 '누군가' 라고 부른 이 사람이 나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도 어떤 날에 저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만 같다. 아마 우연히 그런 경험을 했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 나를 넣을 수 있음은 이 사진이 담고 있는 모습은 언제든지 누군가의 일상과 그 속의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사진이지 않을까. 피사체를 평가하지 않으려는 그의 사진작가로서의 입장은 더욱 내가 사진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넓혀 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을 담기보다는 금방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담길 원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세상에게 설교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관찰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했다. 그래서 레이터의 사진에는 거울과 유리창이 자주 등장한다. 피사체를 평가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라는 그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출판사 서평 中


무엇보다 우연이라는 단어는 그의 '시선'에서 더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진은 선명하기 보다는 꽤나 흐리다. 그리고 이런 흐린 시선도 우연으로 빚어진 것이다. 비가 오는 날 습기가 찬 유리창. 지나가다가 일부러 닦아낸 걸까,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칠게 문댄 듯 누가 뿌옇게 찬 이슬의 일부를 거칠게 닦아냈고,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물방울들이 제멋대로 흘러내려 잦은 선을 그었다. 우측에는 그곳에 오래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형체를 잃어가는 글씨들이 그림자와 함께 사진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유리창 위 '우연'이 열어 놓은 그 뿌옇고 겨우 선명한 사이로 피사체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그가 선택한 이러한 시선은 도시 어딘가에 있는 유리창이라는 '일상'의 것이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 특별하다고 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이 있다. 그리고 유리창은 비가 내리는 날 묻은 이슬과 물방울들이 온전히 우연히 그어낸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우연일 수가 있을까. 내가 본 사울 레이터는 일상적인 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사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치의 요소로 가져온 작가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사진 속에서 유리창 너머로 '어떤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이러다가 정신 차린 거다. "아, 나 도서 소개 읽고 있었지"라면서. 사진 감상도 모르던 사람이 이러고 있었으니 그의 작품과 글을 더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 사진 한 장에 빠져 버리고나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 궁금해졌다.



사울 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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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일상 사이에서 우연이 만들어낸 순간을 놓치지 않는 작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사진들은 전설이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인 시간을 더 많이 살 것이고, 그렇다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짙은 공감'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 레이터는 좋은 사진을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이국적인 장소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핵심이 들어 있으며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 출판사 서평 中


당연하게 이미 '특별하게' 아름다운 것들, 유명한 것들 뒤에 가려져 버린 평범함, 그 모습을 담아낸다는 의미를 그는 사진으로 찍어낸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더 많이 살아야 할 우리 곁에 오래 남아있을 것을 남겨야 한다면, 비로소 우리가 기억하고 담아내야 하는 것은 일상의 순간들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범한 것은 그래서 특별한 것이다. 평범한 것은 결코 특별한 것과 반대의 것이 아니라 두 단어들은 항상 같이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사울 레이터는 이 내용을 나보다 먼저 사진이라는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어 버리니 내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혼자 폭죽을 터트리며 그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이유로 이런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일까, 내가 생각하던 가치를 먼저 담아낸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하며 말이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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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다소 긴 사진 감상을 중심으로 전개한 글이 돼 버렸다. 프리뷰가 아니라 리뷰 같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져서 이만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생각은 리뷰에서 적도록 해야겠다. 하여튼 사울 레이터 작품의 첫 만남에서 내 해석과 감상에 대해 자신이 있지는 않지만, 이미 글을 남긴 김에 후에 책에 담긴 4편의 해설을 읽는 즐거움이 생길 것 같아 기대된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떠할지, 혹시 저 작품을 보고 나와 같이 ‘우연‘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누군가가 있을까.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라는 인물이 궁금해지니 그가 직접 남긴 어느 정도 길고 자세한 에세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잠깐 생각하지만 이것은 나의 욕심일 것이다. 그가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만족했다는 문장을 보면 그의 삶은 그렇게 완성되어야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은 6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기에 더 빛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지금은 도서 속 작품과 함께 담긴 그만의 생각이 적힌 문장들을 기대하기로 했다. 사실 그리고 그의 외적인 삶보다는 내면의 삶이 더 궁금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이미 사진만으로도 벌써 (기분 좋게) 벅차다.


스튜디오보다 거리, 유명인보다 행인, 연출된 장면보다 평범한 일상, 빛보다 비를 더 사랑하여 "나에게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진짜 포토그래퍼

- 기획 노트 中


어쩌면 사진보다 더 사진다운 시선을 가진 사울 레이터. 이 글에서는 내가 순식간에 빠져 버린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우연을 이야기 했지만, 다른 작품들도 기대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첫인상에 우연, 일상, 평범함이라는 단어에 잔상처럼 남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기억하며 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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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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