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직, 파리다운 파리 [영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글 입력 2018.08.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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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파리의 장면들을 툭툭 던져 놓으며 시작한다.

여유롭다 못해 늘어지는 것 같은 재즈 음악과 함께 영화는 채 4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파리의 모습들을 연이어 보여준다. 에펠 탑이나 독립문 같은 도시의 상징은 물론, 이따금씩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나 인적 드문 공원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비가 오며 영화의 흐름은 한 층 더 느리게, 낭만적으로 변한다.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밤까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여전히 느리게 걷고, 도시의 불빛만이 더해질 뿐이다. 정취는 더더욱 깊어진다. 대사도, 재즈 선율을 제외한 그 어떤 소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4분을 위해 마치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어딘가에 미리 치워놓기라도 한 듯 영화의 시작은 파리를 방해받지 않고 ‘연출’해낸다. 마치 파리는 ‘이래야 한다는’ 듯, 영화는 파리의 모습을 ‘일찌감치’ 설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토록 이상적인 파리를 그려내는 데에 있어,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치워내고 다시금 처음 파리의 모습을 되돌려 놓는 한 시간 반의 작업이 조금은 간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은 파리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사랑하면서 전혀 복잡하지 않은 대비 구조를 드러낸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서도 우연과 놀라움 그 이상의 복잡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인물도 대사도 등장하지 않았던 첫 장면이 말해주듯, 인물과 대사는 ‘거들 뿐’, 진짜 주인공의 무게는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에 놓이게 된다. 즉, 이 도시가 짜 놓은 각본과 무대를 배경으로, 인물들은 그저 등장하거나 퇴장하며 큰 갈등이나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전혀 ‘파리’스럽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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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길 펜더, 그리고 레이첼 맥아담즈가 연기한 길의 약혼자 이네즈


파리의 모습으로 가득했던 오프닝과는 달리, 곧이어 이어지는 길과 이네즈의 대사는 그 어떤 장면도 없이 검은 화면과 함께 제시된다.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어, 비올 땐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라고 말하는 길의 반응은 관객이 오프닝을 본 후의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처음 온 사람처럼 왜 그래?’ 비 오면 좋을 게 뭐야, 젖기밖에 더해?’라는 이네즈의 대사에서 곧바로 영화는 파리라는 도시를 기준으로 이 도시의 진가를 아는 사람, 그리고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편을 가르기 시작한다. 이네즈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네즈의 부모님, 그리고 폴과 캐럴 역시 길을 ‘파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이미 파리는 여유롭고, 낭만적이며, 그 어떤 소음이나 분주함에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듯한 인상을 받은 관객들에게 길을 제외한 이 인물들은 ‘불편한 방해 요소’로 느껴질 뿐이다. 마치 길만이 파리의 낭만을 안다는 듯 연출되고, 그는 계속해서 나머지 인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홀로 남게 된다. 이때, 관객은 홀로 남은 주인공 길과 일치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일치를 친절하고, 쉽게 돕는다. 길을 제외한 주위 인물들은 모두 현학적으로 로댕이나 베르사유에 대해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거나, 비 오는 날의 산책이나 여유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파리의 정취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그 사이에서 길은 주인공임에도 말을 아낄 수밖에 없고, 나머지 인물들은 계속해서 그를 제지하고 억누른다. 언제쯤 우리의 주인공은 파리의 낭만적인 정취를 느끼게 될까, 관객은 자연스레 기다리게 된다.



도피, 그러나 너무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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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파리의 주인공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파리의 밤거리에서 길을 잃은 그의 앞에 등장한 건, 마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치는 종과 그에 맞춰 등장하는 택시다. 주인공은 별 거부감 없이 택시를 얻어 타고, 이제야 카메라는 길을 주변부가 아닌 중심에 위치시킨다. 비좁은 택시 안에서 1920년대의 의상과 머리 스타일을 한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길은 이제야 주인공 대우를 받는다. 처량했던 우리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르게 되는 한편, 어느새 불편했던 소음들은 사라져있다. 더해지는 1920년대의 ‘파리’다움, 그리고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는 불편했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카타르시스를 더욱더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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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진
미국 작가 스캇 피츠제럴드는 전후 세대인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의 일원으로,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어울리며 파리를 왕래했다.


영화는 다시금 초반처럼 불편한, 파리 답지 않은 것들을 치우고 주인공을 공간뿐만 아닌 시간에서도 도피 시키면서 이상적 파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문제는, 역시나 그 방법이 짧고도 쉽다는 것이다. 1920년대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주인공은 낯설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그들과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다닌다. 길의 모습은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와본,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른 채 계속해서 놀라워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처럼 쉽고 단순하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이 그러했듯, 더없이 ‘파리’다운 미장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며, 파리는 다시금 제 모습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아내였던 젤다 세이어를 시작으로, 길의 눈앞에 나타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의 등장은 연쇄적으로 또 다른 인물의 등장을 불러일으킨다. 이 위대한 인물들을 마주치는 것에 대한 반응은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젤다 세이어, 스콧 피츠제럴드, 그리고 헤밍웨이와 거투르드 스타인까지. 예고 없이, 빠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들과, 노골적으로 얼빠진 길의 표정이 교차적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놀라움’ 그리고 ‘믿기지 않음’ 외에 어떤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마주치고, 놀랄 뿐이다. 짧고 단순하지만 확실히 파리를 부각시키는 요소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않는다. 유명한 인물의 이름, 그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대사 몇 줄이 연쇄적으로 주인공에게 던져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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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는 하나 정말이지 ‘우연히’가게 되는, 그리고 놀라긴 하지만 놀람 그 이상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 단순하고도 쉬운 구조다. 1920년 과거로의 여행과 다시금 돌아오게 되는 현재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인물과 인물 간, 과거와 현재 간, 그리고 파리답지 못한 파리와 파리다운 파리의 대비가 더욱 부각된다.



'당신도 흥미로워요, 혼란스러워 보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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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유명 작가와 천재 화가들 사이에서, 길 펜더의 소설 도입부에 ‘꽂혔다’는 인물이 등장한다. 역시 자신만의 현재에서 또 다른 과거를 동경하는, ‘아드리아나’다. 영화의 중반부가 훨씬 넘어가도록 톰 엘리엇, 달리, 부뉴엘, 그리고 만 레이와 같은 유명 인사들의 단편적인 등장은 끝나지를 않는 한편, 각자의 황금시대를 가진 길과 아드리아나는 파리의 밤거리로 나와 거닌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흥미롭다’고 말하는 길에게, 아드리아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도 흥미로워요. 혼란스러워 보이는 게(You are interesting too, in a lost way).’ 이어서 ‘그냥 당신과 걷고 싶다’는 길에게 그녀는 ‘자꾸 당신이 그냥 관광객이란 걸 까먹네요(You are just a tourist).’라고 말한다. 주인공 길 펜더의 특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놀랍도록 우연적인 택시를 타고, 더 놀랍게도 동경하던 인물들을 만나는 그는 그저 ‘길을 잃은, 혼란스러운 관광객’인 것이다. 길을 잃어 잠시 들렀을 뿐, 그 이상의 심취나 갈등, 혹은 적극적인 개입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영화는 두 사람 앞에 과거로 가는 마차를 등장시키고, 파리는 1890년대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다. 길 펜더가 그랬듯 아드리아나 역시 누구나 알 법한 1890년대의 인물들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1890년대 지금보다는 르네상스 시대가 낫다’는 폴 고갱의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인 ‘황금시대 사고, 과거 동경’의 반복이 드러난다. 1890년대 파리의 전성기에 심취해, 다시 현재로 돌아가지 말자는 아드리아나에게 길 펜더는 ‘이렇게 즉흥적인 식으로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과거에 살았다면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도 환상’이라며 반박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폴이 이네즈와 길에게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 ‘황금시대 사고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부정’일 뿐이라던. 갑자기 주인공은 더없이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과거로부터 빠져나온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온 후 그는 이네즈에게 ‘아니! 과거는 죽지 않아!’라고 소리친다. 길 펜더에게 대체 과거란 무엇인지, 마치 영화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와 파리의 아름다움만을 집중적으로 그린 것처럼 그의 책 역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은 채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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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낭만과 정취를 느껴야 한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는 그는 ‘길을 잃은’ 주인공이다. 아드리아나처럼 동경하던 과거에 머물지도, 그렇다고 더없이 현실적이지도 못한 그는 그저 길을 잃은 채 파리의 밤거리를 거닌다. 다시금 영화는 ‘파리의 진가’를 아는 두 사람을 맞닥뜨리게 한 뒤, 그 어떤 방해 요소 없이 파리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어서 비가 내리고, 비 내리는 파리에서 젖는 게 싫다며 택시를 잡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은 ‘젖는 건 상관없어요(I don’t mind get to wet).’이라며 영화의 완성을 장식한다.

길 펜더의 책, 등장했던 수많은 유명인들, 1890년대의 파리, 그리고 새벽의 일탈 같았던 그의 사랑은 일단 모두 뒤로 한 채, 영화는 다시금 파리의 낭만에 집중하려고 시도한다. 인물들조차 점점 걸음에 따라 카메라 밖으로 나가고, 화면은 오로지 비 내리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 그리고 오프닝에 쓰였던 재즈 선율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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