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을 파는 직업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8.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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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란 단어를 언제부터 또 누가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음악방송 세트장의 번쩍번쩍한 조명, 무대를 휘어잡는 가수들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그리고 심지어 현란한 카메라 워킹까지..이 모든 걸 처음 봤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느낀 감정은 동경심이었고 무대 위의 그들은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문화는 다른 나라와는 비교불가인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팬덤은 존재하지만,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우선 같은 팬덤끼리의 연대감이 뚜렷하다. 연예인 얘기만큼 재밌는 게 없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느낀 건 한 번에 두 그룹 이상을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팬덤 이름은 가수와 연관되도록 센스있게 지어지며 그 아이돌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고유 색깔이 정해져 있다. 이 색깔은 응원봉, 응원풍선 등 팬들이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에 적용된다. 이렇게 팬덤에는 특정한 정체성이 부여되고 이로써 소속감이 강화된다.

팬들 사이의 연대감 뿐 아니라 팬과 아이돌 사이의 연대감도 깊다. 공식팬카페에는 연예인이 팬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쓰는 칸이 있다. 이 곳에는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등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해줄 법한 낯간지러운 말도 많이 등장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팬과 아이돌은 서로 격식을 차리기보다 친밀하고 애정 넘치는 관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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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많아졌다. ‘프로듀스 101’이나 ‘프로듀스 48’ 같은 경우엔 다양한 소속사를 가진 약 100명의 아이돌 연습생 중 10명 정도를 선별해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YG의 ‘믹스 앤 매치’나 JYP의 ‘식스틴’은 기획사에서 소속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차기 데뷔팀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국민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그룹임을 강조하기 위해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스라 부르며 그들의 투표를 거의 절대적인 평가요소로 정해놓았다. 기획사에서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시 시청자 투표를 어느 정도 반영하며 이로써 데뷔 전부터 대중의 관심을 끌고 데뷔 직후부터 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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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그램들은 사실 너무나 가혹하다. 기획사에선 보통 몇 년의 텀을 두고 신인을 내보내기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나중을 기약하기 꽤 힘들어진다. 공무원 시험처럼 점수로 위에서부터 몇 명 자르는 것도 아니고 매력을 객관적으로 점수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대중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아질 뿐, 서바이벌 방송에서 매번 의외의 인물이 순위권에 드는 것을 보면 데뷔는 실력순이 아니다. 평가는 주관적이고 노력이 결과와 비례하지 않으며 데뷔한다 해도 미래는 불투명한데 어쩜 저렇게 절실할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에게 공개연애란


사실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며칠 전에 터진 10년차 솔로 여가수와 2년차 보이그룹 메인래퍼의 열애인정 사건이다. 연예인의 열애설은 언제나 화제이지만 이번 건은 조금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은 남아 있던 음악방송과 팬싸인회를 취소했고, 남자의 경우 팬클럽 1기 창단식에 불참하게 되었다. 보이그룹의 공식팬카페에는 이 멤버의 탈퇴를 요구하는 글이 도배가 되었고 팬클럽 창단식은 취소표가 속출했다.

태도 논란도 있었다. 열애 발표 전에 이미 두 사람은 사랑을 주제로 한 듀엣곡을 냈는데 ‘너와 나의 색깔은 마치 보라색 / 같아 가끔가다 변해 노랗게 / 이 노래를 듣는 애들은 이해 못해 / 어쩔 I don't care / But you I don’t care‘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다. 또 섹시 컨셉 유닛을 결성해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수위 높은 스킨십을 보여주었으며 한 리얼리티 쇼에서 이 남자 멤버는 여자 멤버에게 연애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두 사람이 1년 정도 사귀고 있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열애를 인정한 후 과거영상들이 재조명되면서 팬들을 기만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많이 생겼지만 아무런 피드백이 없자 탈퇴요구, 더 나아가 그룹 해체요구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아이돌도 사람이고 연애를 할 수 있지 않냐, 이번 일로 멤버 탈퇴와 그룹 해체까지 요구하는 건 미성숙한 대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어느 쪽 말이 더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이돌이 누굴 사귀든 말든 아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사실 이번 열애인정은 좀 극단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이들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카메라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커플이어도 열애를 인정한 후에는 반드시 음원이든 뭐든 매출이 감소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아이돌과 팬의 관계


어디선가 아이돌이란 직업은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돈을 주고 너의 이미지를 소비할테니 너는 사고치지 말고 예쁜 모습만 보여줘라...이렇게 서로 가식으로 대하는 관계라는 말도 들어봤다. 팬들이 스스로를 감정이 있는 ATM기라고 지칭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게 보면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인데 왜 열애설이나 사생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이돌문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우상이 아닌 이상, 돈을 빼고 논할 순 없는 엄연한 직업이다. 무대나 방송에서 만든 이미지는 환상이 되어 소비되고 회사에선 화려한 마케팅 실력을 발휘해 수많은 ATM기계들을 자극한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가 얼마만큼 쿨해져야 하는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게 맞는 일인지, 그리고 둘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인지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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