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 되는 방법 ① [영화]

프란시스 하 (2012)
글 입력 2018.08.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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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12월 31일을 넘으면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단지 '19'에서 '20'으로 숫자가 바뀔 뿐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숫자의 변화가 모든 걸 바꿀 거라고 굳게 믿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도, 마음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스무 살의 마법은 없었다. 19살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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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마법에 걸리지 못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프란시스 하 (Frances Ha, 2012)'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다. 프란시스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뉴욕 도심을 뛰어다닌다. 그녀가 있는 뉴욕은 프란시스의 놀이터처럼 보일 정도다. 그녀는 인생의 반쪽 같은 친구 '소피'와 함께 "좋아, 프란시스.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라고 말하며 행복한 꿈을 꾼다. 하지만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프란시스의 세상은 갑자기 위기를 맞는다. 세상은 "이제 꿈에 깨어나! 어른이 돼야지!"라고 그녀를 어른의 길로 떠민다.

프란시스와 한 아파트에서 살던 소피는 어느 날 갑자기 소피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말한다. 소피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꿈꿔오던 트라이베카에 집이 났고, 그 집을 찾은 친구 리사와 함께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소피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프란시스는 평생 자신과 함께 일 것 같았던 소피가 떠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中)" 프란시스에게 소피와의 우정은 연애였다. 남자친구와의 이별에도 끄떡하지 않던 프란시스는 소피의 부재에 대혼란을 겪는다. 소피와 함께해서 즐겁고 평온했던 생활은 산산조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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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는 어떻게든 소피가 없는 틈을 누군가로 매워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피의 빈자리는 어느 누구로도 매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누군가가 소피의 빈자리를 대신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와 곁에 있지 않으면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프란시스는 계속해서 사람들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소피와 같은 사람이 있기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방값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도 굳이 맞지도 않은 사람들 틈에 껴서 비싼 방값을 내고 다른 이들과 산다. 그들이 '안 생기는' 프란시스라며 자신을 조롱해도 말이다. 심지어 급작스럽게 떠난 파리 여행에서도 프란시스는 통화되지 않는 오래된 친구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며 만나자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그녀는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믿으며 말이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그 느낌은 외롭다고 표현하기엔 좀 모자라다. 무섭고 불안한 감정이 뒤죽박죽된 고독이라면 어떨까? 이런 감정을 바로 '실존적 소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섭고 불안하며 두려운 감정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일은 어쩌면 매우 불쾌하다. 때로는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불안 때문에 하는 모든 일들은 인간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준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자기 사랑의 기술, 이계정 中)


사람 안에 있어도 외로웠다. 군중 속의 외로움.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옆에 누가 있어도, 없어도 모두 외롭다. 그런 감정을 '실존적 소외'라고 한다. 우리가 끝내 해결할 수 없고 안고 살아야 하는 감정. 진짜 어른이 되는 데에는 이 감정을 안고 살아갈 용기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누군가가 내 외로움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나는 나, 너는 너의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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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는 떠나가는 소피를 잡기 위해 급하게 따라가다 뒤늦게서야 자신이 맨발로 뛰쳐나왔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프란시스는 그 순간 무언가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될 시간이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누군가에 집착하지도, 누군가와 언제나 함께이길 바라지 않고, 외로움을 감싸 안고 홀로 살아가는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을 말이다. 온 도심을 방방 뛰어다니던 프란시스는 이제 어른이 된다.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몸을 가까이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가진 날카로운 가시가 자신들의 몸을 찔렀다. 다치지 않기 위해 서로 멀리 떨어지면 추위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고슴도치들은 가까이 다가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거리를 알아간다. 상대방이 나의 구원책이 돼줄 것이라 의지하기 시작하면 나의 가시가 상대방을 찌를 것이다. 타인에게 밀착해 있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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