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전 영화 깨기] 펄프 픽션

미친 듯한 수다본능을 느끼다!
글 입력 2018.08.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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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영화깨기.jpg
 

내가 고전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은 이유. 현재까지도 몇몇 고전 영화는 명작으로 선정돼 TV에서 재방영한다. 부모님은 그럴 때 리모컨을 돌리다 멈추고는 추억에 빠진다. 옆에서 “난 이거 안 봤는데”라고 하면 부모님은 이구동성 말한다. “이걸 안 봤다고? 너도 너무하다 이건 봐야지!” 그러게요. 그때 난 가만히 가마니가 된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본 게 없더라.

한창 트와이스의 what is love 노래가 나왔을 땐 영화 명장면 패러디가 이슈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트와이스 얘기를 하다 영화 얘기로 흘러갔다. <사랑과 영혼>, <라붐>, <레옹>, <로미오와 줄리엣>, <펄프 픽션>. 다들 언제 그 영화들을 다 봤는지 그럴 때 난 또 가만히 가마니가 되었다.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다. 가마니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명장면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적어도 남들이 다 본 건 나도 봐야 하지 않겠냐는 뭐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남녀가 트위스트를 추는 영상에 끌려 첫 고전 영화로 <펄프 픽션>을 찍었다.





<펄프 픽션>

펄프픽션포스터.jpg
 
 
1994.09.10 개봉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장르 : 범죄, 드라마, 코미디



마치 종합이야기 세트

-뒤죽박죽인 순서

<펄프 픽션은> 총 1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은 네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음식점에서 강도 행위를 벌이는 펌크킨과 허니버니, 암스테르담에서의 빈센트와 줄스, 빈센트와 미아, 버치와 마르셀러스.

13개의 에피소드를 최대한 요약해보자면,


1. 한 음식점에서 강도 펌크킨과 허니버니가 총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한다.
2. 갱스터인 빈센트와 줄스는 자신의 두목인 마르셀러스를 배신한 동업자들을 암스테르담으로 찾아가 죽인다.
3. 권투선수인 버치는 마르셀러스에게 5라운드에 지라는 거래를 받아들이며 돈을 받는다.
4. 빈센트는 자신의 보스 마르셀러스의 처 미아와 저녁 시간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를 만난다.
5. 둘은 “잭 래빗 슬림”에 가서 밥을 먹는다. 트위스트 경연대회에까지 나가 신나게 논 후 집으로 돌아온 미아와 빈센트. 빈센트가 화장실에 가 있는 사이 미아는 마약을 하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빈센트는 그녀를 살린다.
6. 버치는 시합 전, 어린 시절 꿈을 꾼다. 그가 시계를 아끼는 이유가 나온다.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이어져 내려온 유품 같은 것이다.
7. 버치는 시합을 하다 상대를 죽이게 되고 마르셀러스 조직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8. 그럼에도 연인과 사랑은 나누는 버치
9. 연인과 도망치려는 버치는 시계가 없다는 걸 깨닫고, 찾으러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엔 집을 지키던 빈센트가 있었고, 버치는 총으로 빈센트를 쏴버린다.
10. 시계를 찾고 다시 도망치던 버치는 보스 마르셀러스와 맞닥뜨린다. 서로를 죽이려 싸우다 한 악기상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악기상이 총을 들어 싸움을 멈춘다.
11. 그런데 둘은 오히려 악기상에게 붙잡혀 지하실에 갇힌다. 알고 보니 제드라는 사람과 악기상은 게이. 마르셀러스는 그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그런 마르셀러스를 버치가 구해준다. 보스는 보답인 듯 버치에게 도망갈 기회를 준다.
12. 두 번째 에피소드와 이어지는 듯, 줄스와 빈센트는 배신한 동업자 중 한 명은 죽이지 않고 함께 차를 태우고 간다. 그러다 오발로 그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울프의 도움을 받는다.
13. 고군분투 끝 시체를 처리한 둘은 아침을 먹기 위해 한 음식점을 찾는다. 그곳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왔던 강도 펌크킨과 허니버니가 점령한 음식점이었다. 줄스는 오히려 그 둘을 제압하지만, 자신의 돈까지 쥐여주며 보낸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등장인물은 많았고, 그 등장인물들이 모두 영화의 주인공인 듯 비슷한 분량이었다. 이야기는 에피소드마다 토막으로 나눠진 거 같지만 그거 나름대로 이어지는 거 같아 원래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 아닌가?’ 하는 의심의 싹은 중반부부터 시작해 이내 마지막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순서, 뒤죽박죽이다!”


빈센트와 줄스.jpg
 

그렇다.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대로가 아닌, 뒤죽박죽으로 전개된다. 시간의 흐름대로 정리해보자면, 2-12-1-13-4-5-3-6-7-8-9-10-11이 맞다. 놀라운 건 이토록 뒤죽박죽으로 뒤섞어놓았는데도 그것 나름대로 말이 되고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이 퍼즐을 맞추려면 영화를 최소 두 번은 봐야 한다. 다시 볼 때 흐름을 더 잘 읽을 수 있고 미처 못 봤던 장면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 소름이 돋는다.

실제로 3번째 에피소드를 다시 봤을 때 보스를 보러 온 줄스와 빈센트의 옷차림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처음엔 미처 그들의 옷차림을 살피지 못했는데, 그 옷은 암스테르담에서 오발로 죽은 사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갈아입은 옷이었다. 평소 양복만 입고 다니는 그들과 상반되는 귀여운 티셔츠와 반바지였는데 영화를 처음 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B급 영화를 표방한 SS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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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달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펄프 픽션>인지. 그리고 이 영화가 왜 B급 영화를 표방한 SS급 영화였는지. 영화를 처음 보기 전, 많은 사람이 그랬다. 이 영화는 B급 영화를 표방한 S급 영화라고. ‘B급 영화면 B급 영화고, S급 영화면 S급 영화지 무슨 B급을 표방한 S급이래.’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비웃었다.

이 영화는 아주 영리하다. 처음엔 중구난방인 이야기 짜임새에 “이건 B급이야! 그러니까 생각 없이 재밌게 보렴.”이라고 감독이 말하는 듯했는데, 보면 볼수록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영화였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던 인물들은 모두 엮여있었고,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있었다. 줄스와 빈센트는 갱의 보스 마르셀러스의 부하였고, 강도 펌크킨과 허니버니가 털으려던 음식점엔 줄스와 빈센트가 있는 음식점이었으며, 미아는 마르셀러스의 처이며, 버치는 마르셀러스와 불법 경기거래를 한 사이였다.

난 영화 초반에 나온 펄프의 뜻을 간과했다. 펄프의 뜻은 이렇게 나온다.


1. 연하고 흐물흐물한 물질
 2. 야하고 섬뜩한 주제를 다룬 잡지 또는 책


뜻을 조금 더 찾아보자 이런 말이 나왔다.


1896년~1950년대 사이에 주로 나오던 펄프 매거진이라는 소설 잡지 종류가 있었다. 저질 종이로 찍어 만든 싸구려 소설 잡지인데, 짧은 단편 모음 형식이었으며 종이 질이 좋은 고급지 잡지가 25센트 하던 데 비해 펄프 매거진류는 10센트밖에 하지 않는 저렴함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런 잡지에 담던 싸구려 단편 소설을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라고 부른다. 내용은 그야말로 장르문학의 종합 선물세트.


중구난방의 에피소드들은 감독이 계획한 짜 맞혀진 퍼즐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종합이야기 세트처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실제로 영화엔 서로 연관되지 않는,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강도, 무차별한 갱들의 살인행위, 강간, 마약, 불법 거래. 생각해보면 모두 불합리한 행위였다. 감독은 이것들로 하여금 당대의 시대를 말해주려는 것이었을까. 펄프 매거진에서 힌트를 얻어서 말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단순하게 전달할 방법.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벙졌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뒤로 갈수록 맞춰지는 퍼즐에 처음부터 계획된 이야기의 치밀성과 짜임을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고전 명작영화로 남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히트작이 되었다.



기적과 우연, 그리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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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건 줄스라는 인물이었다. 특히 줄스가 외우는 성경 구절이었다. 이 성경 구절은 줄스에 의해 처음과 마지막에 두 번 나온다. 처음엔 줄스가 누군가를 죽일 때 읊었을 반면 마지막엔 누군가를 살릴 때 읊는다.


*에스겔 25장 17절*

의인의 길은 사면 열렸으나
악인의 사욕의 길은 막히리라
착한 사람은 축복을 받아
의인을 암흑의 계곡에서 구하고
그는 형제의 보호자며 잃은 아이를 찾은 자라
형제를 해치고 음독시키려는 심한 진노와
큰 분노를 내가 쳐부수리니
복수의 매를 맞고 원수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줄스와 빈센트는 배신한 동업자 중 한 명이 화장실에 숨어 있던 걸 몰라 총에 맞아 죽을 뻔 한다. 하지만 총알은 그들을 스쳐 갔으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일을 줄스는 기적이라 말하고, 빈센트는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한다. 그리고 둘은 이 얘기로 말싸움을 벌인다. 줄스는 이 사건을 신의 섭리로 여기고 갱 일을 은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강도인 펌크킨과 허니버니를 만난 것이다.

줄스는 펌크킨의 총을 빼앗아 제압하지만, 전처럼 죽이지 않고 성경 구절을 읊으며 말한다.


수년 동안 읊었던 구절이야.
사람 죽일 때마다.
뜻은 잘 몰랐었지
그저 악당들 겁줄 때 쓰는 말로 알았는데
내게 특별한 일이 벌어졌어.
내 생각엔 이런 뜻인 것 같아.
넌 악인이고 난 의인이야.
그리고 이 총은 위험에서 의인을 지켜주는 목자야.
이렇게 볼 수도 있어 네가 의인이고
내가 목자라면 세상이 사악한 악인인 거야
그게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야
진실은 넌 약자고 난 사악한 폭군이야.
하지만 난 노력하고 있어. 진정한 목자가 되기 위해


이 장면은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시간의 순서로 따지자면 극 초반에 해당한다. 감독은 왜 시간의 흐름을 뒤엎으면서까지 이 장면을 맨 마지막에 넣었을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여서가 아닐까. 줄스는 총이 위험에서 의인을 지켜주는 목자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줄스는 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펌크킨과 허니버니를 막고 사람들의 희생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펄프 픽션>에서의 총은 누군가를 죽일 때 쓰는 대상이었다.

영화에선 총질을 엄청나게 한다. 총으로 계속 누군갈 쏘고, 죽인다. 줄스, 빈센트, 버치, 마르셀러스 모두 자신이 살기 위해, 보복하기 위해 죽인다. 그리고 이들은 죄책감이 없다. 그런 그들을 당연히 냉혈하고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버치는 점점 누군가를 죽이는데 아무 느낌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 의외의 부분이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 한 마르셀러스를 강간의 위기 속에서 구해준다. 그는 지하실에서 탈출에 성공했고, 마르셀러스가 어떻게 되든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르셀러스를 구해준다면 그가 자신을 다시 죽이려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버치는 칼을 들어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서 마르셀러스를 구한다. 마르셀러스 또한 그러한 버치를 죽이지 않고 도망가게 둔다.

총을 어떻게 쓰느냐는 총을 잡은 자의 선택이다. 줄스 또한 여태까지 총을 남을 죽이는 데 사용했지만 지금 이 시간부터는 그러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기적이든 우연이든 더 이상의 말싸움은 필요 없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선택할 뿐이다. 기적인지 우연인지 모를 기회의 다음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할지.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일을 관두면 건달일 될 것이라는 빈센트의 말에 줄스가 ”난 줄스일 뿐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이라고 말한 것처럼.



미친 듯한 수다 본능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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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내가 이 영화에 신선함을 느꼈던 건, 인물들의 미친 듯한 수다 본능이었다. 그건 이 영화의 특징인데, 쓸데없는 말들을 참 많이 한다. 특히 줄스와 빈센트의 끝없는 말싸움은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 싸워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을 죽이러 가는 때조차도 시간이 남자 다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어 웃기도 했다. 감독은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소재인 범죄 느와르 장르를 코믹적으로 풀어냈다. 그 B급 감성이 어우러져 타렌티노 특유의 독보적인 장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다. 아무래도 인물들의 끝없는 수다가 내 취향이었나 보다. 154분이라는 다소 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였으니!




사진 출처 : 영화 <펄프 픽션> 스틸컷
참고 문헌 : 펄프 픽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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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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