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신카이 마코토 역사의 시작 [영화]

글 입력 2018.08.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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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몇 개 본 사람으로서 '너의 이름은.'을 보고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 제작한 영화인가? 하고 의심까지 해봤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영화에는 그가 항상 전달하던 조곤조곤한 이야기와 서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은.'은 상업적으로는 매우 훌륭했지만 기존의 그가 추구하던 작품의 방향과 상이한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웠다.

그래서 최근에 그의 데뷔작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다시 봤다. 이 작품은 그의 데뷔작으로 5분이 채안 되는 짧은 흑백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 틈틈이 시간을 내서 약 1년의 시간을 거쳐 혼자 일궈낸 첫 시작은 그 뒤에 나오는 작품들의 색깔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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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고양이 쵸비의 시선으로 쵸비와 그의 주인인 '그녀'의 1년을 계절별로 나눠서 보여주는데 '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나(고양이)는 그녀에게 거둬들여진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고양이다.'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고양이는 그녀가 자신을 주워서 키우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 그녀에게 속해있음을 자처한다. 고양이는 그녀를 엄마이자 연인으로 생각하고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두 사랑한다. 다른 고양이인 여자 친구 미미가 있음에도 고양이는 주인인 그녀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던 가을의 어느 날, 그녀는 긴 통화가 끝난 후에 고양이인 나의 곁에서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겨서 울고 있다.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고양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다만 여태까지 봐온 그녀를 생각해서 무슨 일이든 항상 상냥하고 현명했던 그녀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닐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장면이 바뀌어 1년 중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왔을 때, 그녀는 새 출발의 의미인 양 긴 머리를 짧게 잘랐고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한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전철 소리 말고는 눈에 모든 소리가 파묻힌 듯 고요하기만 하다. 조용한 세상 속에서 고양이는 그녀와 자신의 세상을 나열하고 '나도 그리고 아마 그녀도 이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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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러한 묘사 방식은 배경을 있는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 놓은 듯 글 자체가 정말 예쁘다. 글로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느낌이겠다. 그리고 신카이의 작품은 본인의 강점인 디테일하고도 현실을 뛰어넘는 배경 작화 묘사에 서정적인 느낌의 텍스트가 어우러져 그만의 고요하고 조곤조곤한 세상을 보여준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들을 태운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서 지금은 겨울이다.
두꺼운 코트에 감싸진 그녀는
마치 커다란 고양이 같다.

눈 냄새에 빠진 듯한 그녀의 몸과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과
먼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과 나의 기분과 우리들의 방...

눈은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다.
그래도 그녀가 타고 있는 전차의 소리만은
쫑긋하게 서 있는 내 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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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스토리가 좋다고 얘기하기는 조금 힘들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만 보기에는 최근에 나온 '너의 이름은.'이 제일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점점 나아지기는 하지만 아직 '포스트 미야자키'로 불리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군더더기 없이 잘 풀어낸 작품인 것 같다. 그녀를 향한 고양이의 애정, 슬픔을 딛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 그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서로 의지하고 있고 그들이 속한 세상은 두 존재를 따뜻하게 품어준다. 잔잔한 음악과 예쁜 작화가 조미료가 되어서 나온 따뜻함일지라도 순간순간의 감정을 독백으로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의 마음에 스며든다.

*

이 성공적인 데뷔작은 지금의 신카이 마코토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미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이지만 조금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리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음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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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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