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민, 찬/반의 영역이 아닌 배경의 영역으로 [사람]

찬/반의 영역은 결국 가진 자의 논리로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글 입력 2018.08.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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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를 떠나는 난민선을 탔다가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아이, 아일란 쿠르디


나는 내가 선택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저 하늘 위에서 학이 물어다 주기 전에 부모를 선택하고 문화와 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니 대한민국이 살기 괜찮을 것 같아서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가 내가 태어나기 전 나를 선택했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태어남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말은 사실 전적으로 나의 의지가 아니었기에 ‘태어남’에 대해서 혹은 “나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은 생각할 수 있으나 성립하기 어려운 말이다. 내가 나로 태어날 수 있는 것과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 혹은 그냥 태어남으로서 주어짐은 그저 생물학적 유전인 ‘사실의 영역’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길러준 것에 대해 감사할 수는 있으나 만약 태어남을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후에 종교적 성격으로 채색된 것일테다. 탄생에 감사함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탄생 이후로 겪을 수 있던 과정과 경험 그리고 감정들에 대한 것인데 내가 내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남은,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우연의 사건이다. 따라서 탄생한 아이의 미래에 대한 사유와 그가 겪을 일생의 과정을 바탕으로 태어남을 미화하는 것은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며 종교의 사상이다. 태어남 자체가 사명이나 소명을 띠지 않는다면 딱히 감사할 일이 아니잖은가.

이와 같은 철학적 회의주의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살아있는 것이지만 철학은 인문학적인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라는 생각을 배제하기도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태어남의 영역은 내 주관의 영역이 아니었듯 태어남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더구나 내 선택의 일이 아니었듯 미래의 아이들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태어남을 문제 해결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철학이 인문학의 한 영역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한 존 롤스에 따라 우리는 원초적 입장인 무지의 베일을 통하여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무지의 베일은 절차적 정의를 보장하는 조건이며 합의 당사자들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게 함으로써 사회적, 자연적 여건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도록 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부터 정의를 위해 파생되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제 1원칙은 "각자는 다른 사람의 유사한 자유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이며 제 1원칙은 제 2원칙에 앞서고 제 2원칙은 다음과 같다.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고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며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의 적용은 어떻게 하면 피자를 정의롭게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서로 다른 법과 제도가 올바르게 보장할 수 없는 자유를 최대한으로 인정하며 정당한 차등과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먹을 사람이 피자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 소통센터장.jpg
박상기 법무부 장관(좌)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 소통센터장(우)


이렇게 우리는 현대 정치의 기반인 자유주의를 살펴보았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는 함께 가는 것이고 위와 같은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코뮤니즘, 즉 공동체주의 같은 논의가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난민 문제 또한 같다. 현실과 괴리된 위와 같은 원칙의 적용은 어려운 것이며 원칙 제시는 앞으로의 사안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할 뿐 그 이전에 이루어졌던 배경에 대해서 사유하기는 부족하다. 난민 문제는 분명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국민의 안전과 이익과 인도주의적 대책이라는 대립은 분명 함께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나 이 둘의 무게를 같게 하여 논의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진 배경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청와대는 제주 난민에 대한 청원(70만명이 요구한 난민법 폐지/개헌)에 대해 8월 1일 법무부 장관과 함께 답변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올해 552명의 예멘인이 난민 신청을 하였고 이는 지난 26년 누적 난민 신청자보다 많은 수로 지난 해 12월 말레이시아-제주 직항 항공편이 생기면서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한 제주로 온 것이다. 4월 30일 제주 무사증(무비자로 한 달간 체류 가능) 입국 후 난민 신청 외국인에 대해 거주지를 제주로 제한하였고 6월 1일 기준으로 예멘을 제주 무사증 불허 국가로 추가하였다. 따라서 더 이상 제주 무사증으로 입국하는 예멘 난민인은 없다. 전체 예멘인에 대해 난민 결과는 9월말에 완료될 것이며 현재 제주도와 시민 단체, 종교 단체의 노력으로 취업, 숙소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제주 경찰서와 함께 228명 대상으로 한국 사회 및 법 질서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남은 신청자에 대해서도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며 현재 제주 내 난민 관련 범죄는 0건이다.

난민법에 따르면 인종이나 종교, 국적, 신분,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을 난민이라 정의한다. 법무부는 허위 난민과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신청자를 방지하기 위해 SNS 제출과 전염병·마약 검사, 범죄경력 조회 의무화를 실시할 것이며 또한 신청인이 난민 검사 기간 중 본국 방문 시 난민 신청 철회 할 것이라 말하였다.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난민 브로커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것이며 심사 또한 엄정해지고 검증이 강화될 것임을 보였다. 난민 대응 공무원, 인력이 부족하여 이에 따라 전문 인력 확보에도 힘을 쓸 것이며 불복 심사 결과에 소요되는 2~3년의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또한 제주 무사증 제도를 없애기에는 관광, 제주도 특별법과 같이 문제가 있기에 무사증 불허 국가를 8월 1일자로 감비아, 소말리아 등 12개국을 추가 지정하였다. 난민 인정 이후에도 재사회화를 위한 의무 교육을 진행하고 난민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자립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후에도 발생할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 난민법을 명문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민국은 1992년에 난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의원의 발의로 난민법이 제정되었으며 2013년부터 적용되고 있다. 난민 협약 가입 후 현재까지 4만 2천 9명이 난민신청을 했고 4%인 849명만이 난민 인정이 되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인도적 체류 허가자 1550명 까지 합쳐 보호율은 총 11.4%이다. 전 세계 난민 협약국의 평균 난민 보유율은 38%이다. 작년 UN 난민 신청건은 190만 건이었고 미국 33만건, 독일 20만건, 평균 난민 보호율이 50%로 인정되었다. 누적 난민인은 터키 350만 명, 파키스탄 우간다 각 140만명 독일은 97만명이다. 국제적 위상과 그리고 협약 탈퇴 시 국제사회 발언권 축소와 국익 손실로 난민 협약 탈퇴와 난민법 폐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난민 협약 가입국 142개국중 협약 탈퇴국은 없으며 대한민국 또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이다. 한국은 인구 천명당 난민 수용 인원이 전 세계 중 139위, OECD 35개국 중 34위이다. 비교적 엄정한 난민 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며 그렇기에 다문화 사회를 위한 통합 정책을 필요로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난민 제도에 있어 UN은 절차에 참여할 뿐 국가의 난민에 대한 권리 행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난민 보호법도 수용이라는 좁은 범위가 아니라 위험 지역으로 쫓아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난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국가 별 차이가 나는 난민 정책에 대해서 쉽게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도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정권의 득세로 난민 정책에 난항을 겪고 있다. [EU, 터키에 4조원 쥐어주며 추악한 난민 뒷거래 벌였다] EU는 난민을 돕는 단체 및 개인을 범죄화하는 헝가리의 조항 발표를 비판하며 법적 제제를 가하겠다고 하나 여러 나라의 여건 차는 쉽게 줄여지지 않을 것 같이 보인다. 그저 어려운 사람을 온정으로 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분쟁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난민에 대해 의사 표명을 하는 것이라고 배우 정우성은 말하였다. 피해를 감수해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숭고한 것이나 그 일은 숭고한 만큼 어려운 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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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캠프에서 정우성의 모습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서구사회에 비해 난민 제도 및 문화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난민은 정부에서 말하는 깔끔한 문장과는 달리 그들의 삶은 여실히 피폐함을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제주도민들이 겪을 난민에 대한 공포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오해 및 경계도 충분히 공감가는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시행되는 정책에는 문제가 야기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책임을 지려하기에 발생하는 비용일 수 밖에 없다. 정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논의와 대화를 진행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정우성의 발언에 공감한다. 누군가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신념이자 혹은 더 나은 사회와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라고 조롱받는 일이 당장 난민들에게는 인생이 달려있는 문제다. 화려하거나 숭고한 일과는 달리 항상 절박하고 치열한 삶의 문제는 불쾌함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불쾌함을 전환하는 일은 어렵지만 필요한 일일 수 밖에 없다.

자국의 안전과 이익 혹은 난민 보다 앞서야 한다는 자국민이라는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순 없다. 동의 하지는 않지만 좌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는 절차와 행정에 비해 난민의 삶은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인도주의, 인권 같은 말에 동의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속의 날 것을 마주하면 아름다운 가상은 더 이상 없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작용한다. 쉽사리 난민이 처한 문제에 뛰어든 사람과 인권이라는 아름다운 가상이 깨어진 곳을 보며 회피해 버리는 사람. 트럼프는 독일이 난민 수용 후 범죄율이 증가했다 하나 메르켈 총리는 오히려 통계를 보이며 범죄율이 감소했음을 보여 반박하는 것처럼 새는 좌익과 우익 두 개의 날개로 날지만 어느 한 쪽에 무게가 실려야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무지의 베일은 조금 더 촘촘해져야 하며 진보를 말하면서 약자가 소수자를 배척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된다.




[김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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